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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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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코폴라와 드 팔마의 21세기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론2018-09-13
코폴라와 드 팔마의 21세기 리뷰

 

 

외골수 드 팔마, 여전한 언터쳐블

- 브라이언 드 팔마의 21세기 영화들에 대해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영화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의 경력을 돌아보면, 어떻게 50년 넘게 영화를 찍으며 현역으로 남을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의 동년배인 무비 브랫(Movie Brats) 세대의 감독들과 비교해 보면 그의 경력이 얼마나 험난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드 팔마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처럼 박스오피스의 제왕이 되지도, 마틴 스콜세지처럼 작가의 반열에 오르며 평론가들에게 찬양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1970년대에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잘 나갔듯이, 자신의 시대라고 할 만한 전성기를 누린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늘 다수의 평론가들에게 히치콕의 모방자, 여성혐오자, 폭력과 서스펜스에 중독된 변태 등등의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드 팔마는 영화계에서 끝내 살아남았다. 그의 무기는 결국, 테크닉이었다. 철저히 계산된 촬영과 편집, 사운드의 활용만으로 영화의 완급과 관객의 긴장감을 조절하는 드 팔마의 솜씨는, 실패작으로 불리는 영화에서조차 다시 보고 싶은 명장면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드 팔마는 이제 한물간 감독일까? 그의 21세기 영화들을 보며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팜므 파탈>(2002)<패션: 위험한 열정>(2012) : 여성들 간의 연대 혹은 배신

 

    드 팔마 영화는 크게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드 팔마의 스릴러 영화와 드 팔마가 다른 장르에 도전한 영화. 첫 번째 계열은 히치콕의 영향 아래 있는 이상심리와 에로티시즘, 범죄와 살인을 다룬 스릴러풍의 영화들이다. <시스터즈>(1973), <캐리>(1976), <드레스드 투 킬>(1980), <필사의 추적>(1981), <바디 더블>(1984), <카인의 두 얼굴>(1992)이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이 계열의 영화들은 늘 여성혐오에 대한 논쟁을 야기했으며 드 팔마에게 히치콕의 모방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만들었다. 영화 속 여성은 대부분 희생자의 역할을 맡아 남성에 의해 살해되곤 했다. <팜므 파탈><패션: 위험한 열정>도 이쪽 계열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영화에선 여성들만의 관계가 중요하며 여기에 남성이 개입하지 못한다. 남성들은 조력자, 관찰자, 혹은 여성들을 괴롭히는 악당의 역할로 밀려난다.

    <팜므 파탈>은 영화 <이중 배상>(1944)을 보는 여자 주인공 로르의 모습으로 시작해 에로틱 스릴러의 분위기를 예고하지만, 막상 영화는 케이퍼 무비와 사기극을 다룬 범죄 영화에 가깝다. 로르는 희생되는 필름 느와르 속 팜므 파탈이 아니라 남성들을 속인 채 도주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진짜 중요한 장면은 따로 있다. 한 여자가 권총으로 자살을 하려 한다. 우연히 로르는 그걸 목격하게 된다. 꿈으로 한 번, 그리고 현실로 다시 한 번. 로르는 누구와도 연대하지 않는 악녀지만, 자살하려는 여자와의 만남은 여자의 미래를 바꾸고 결국 자신의 미래마저 바꾸게 된다. <패션: 위험한 열정>은 회사 내에서의 여성 간의 연대와 경쟁, 질투와 배신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관객들은 살인 장면이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드 팔마는 그 여성들의 심리를 공들여서 묘사하며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보여준다.

    여성들이 영화의 전면에 나서는 것 외에도 이전 드 팔마의 스릴러와 이 두 영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꿈이 이야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팜므 파탈>에서는 예지몽으로, <패션: 위험한 열정>에서는 거듭되는 악몽으로 나타난다. 이는 영화의 현실성과 개연성을 흔들어버린다. 마치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 잘 짜인 구조의 스릴러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실망감을 안길 수도 있다. 아무튼 드 팔마는 자신의 모티브와 테크닉을 반복하지만 많은 부분을 변주하며 자신이 창조한 스릴러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블랙 달리아>(2006)<리댁티드>(2007) : 희생당한 여성과 추악한 미국의 초상화

 

    앞서 언급한 드 팔마 영화의 두 계열 중 두 번째에 대해 말할 차례이다. 살인과 범죄를 다룬 스릴러 외에도 드 팔마는 다른 장르에 계속 도전했다. 갱스터 장르의 <스카페이스>(1983)<칼리토>(1993), 갱스터 장르와 경찰 액션물의 충돌인 <언터쳐블>(1987), 첩보 액션 스릴러 <미션 임파서블>(1996), 코미디 <우리는 듀엣>(1986), 전쟁영화 <전쟁의 사상자들>(1989) 등의 영화들이 그렇다. 이 계열에서 드 팔마는 장르의 공식을 따르면서, 드 팔마 특유의 테크닉을 아낌없이 과시한다. 그리고 과거 고전 영화에 대한 인용과 패러디, 오마주를 시도하며 그 시절 영화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기도 한다.

    <블랙 달리아>는 앞서 언급한 드 팔마 영화의 첫 번째 계열과 두 번째 계열의 결합이라고 할 만한 영화다. 혹은 두 번째 계열의 영화 속에 첫 번째 계열의 영화를 내장하고 있는 영화다. 실화인 미제사건 블랙 달리아 사건을 토대로 쓴 제임스 엘로이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드 팔마의 영화적 야심으로 가득하다. 필름 느와르의 세계를 바탕으로 <쥴 앤 짐>(1962)의 삼각관계, 드 팔마의 <바디 더블>을 연상케 하는 레즈비언 포르노 필름, <현기증>(1958)의 추락사 장면을 경유해서 끝내는 <차이나타운>(1974)의 추악한 가족사로 귀결된다. 하지만 과욕이 문제였을까. 모두들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엘로이의 방대한 원작을 제대로 각색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을까. 드 팔마의 테크닉으로 영화는 유려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영화는 힘이 없어 보인다.

    <리댁티드>는 유튜브 시대에 다시 쓰는 <전쟁의 사상자들>이라고 할 만하다. 베트남전에서 이라크전으로, 아날로그 필름 극영화에서 디지털 카메라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시대와 형식은 변했으나 내용은 그대로다. 길어지는 전쟁, 기약 없이 늦춰지는 전역으로 인한 권태,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적개심 속에서 성욕을 해소할 수 없어 미쳐가는 군인들은 죄 없는 양민 중에서 한 소녀를 강간한 뒤 살해하고 만다. 양심을 가진 병사는 이를 막으려 하고 고발하려 하지만 군은 은폐하려 한다. 드 팔마는 직설화법으로 이 역겨운 현장을 고발한다. 두 영화 모두 한 마디로 끔찍하게잘 만들어졌다. 두 번 다시 볼 엄두가 안날 정도로 괴로운 이 영화들에는 드 팔마의 분노가 담겨있다. <리댁티드>에서 드 팔마는 캠코더, CCTV, 헬멧에 부착할 수 있는 소형 적외선 카메라, 자료 사진들을 이용해 이 참상을 포착한다. 이는 다큐멘터리, TV뉴스 인터뷰, 인터넷 사이트의 스트리밍 동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진다. 전쟁의 참상을 극영화로 만들 때, 서스펜스나 감상주의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관객은 그 모든 걸 그저 장르영화의 쾌락으로 소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드 팔마는 <리댁티드>에서 서스펜스나 감상주의 같은 영화적 장식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서 전쟁영화가 아닌 진짜(처럼 보이는) 전쟁의 참상을 날것 그대로 관객에게 들이미는 것이다. <리댁티드><전쟁의 사상자들>보다 더 나아간 점은 이것이다. 여기엔 더 이상 엔니오 모리코네의 장엄하고도 비통한 음악도 없고 드 팔마 특유의 유려한 카메라워킹도 없고 고통 그 자체인 전장의 현실만 있다. <리댁티드><블랙 달리아> 모두 소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추악한 미국의 초상을 고발한다. 이는 <필사의 추적>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미션 투 마스>(2000) : 화성보다 더 아득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

 

    <미션 투 마스>는 드 팔마 영화의 두 번째 계열 중에서도 가장 낯선 SF물이다. 아마 감독 크레딧에 드 팔마의 이름이 없었다면 그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드 팔마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평화롭고 낙관적인 세계관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엔 음모와 범죄와 살인이 없고 사회 비판도 없다. 대신 우주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유년기에 과학자를 꿈꾸던 어린 시절의 드 팔마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드 팔마는 그의 친구들인 스필버그나 루카스에게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를 만든 스탠리 큐브릭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미션 투 마스>는 제목이 곧 내용인 단순한 줄거리의 영화다. 게다가 아이디어가 신선하다고도 볼 수 없다. 우주가 배경인 영화에서 대부분 익히 봤던 장면들이 영화에 계속 펼쳐진다. 소리의 파장으로 미지의 물체와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은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8)에도 있었다. 익숙한 그림과 익숙한 아이디어의 연속을, 드 팔마는 그동안 갈고 닦은 영화 장인의 기술로 정면 돌파한다. 호러 영화, 재난 영화의 서스펜스와 부부 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의 코드를 적극 끌어들인다. 여기에 드 팔마 특유의, 이곳저곳을 흐르듯 움직이는 카메라는 우주선의 느린 원의 움직임과 결합해서 배우들과 같이 관객도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는 느낌을 받게 한다. 영화는 느리지만 계속 새로운 위기와 장애물을 던지고, 마침내 관객의 넋을 잃게 만드는 신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 영화가 말하는 우주와 생명에 대한 입장에 동의하느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드 팔마가 보여주는 영화적 리듬의 완급 조절과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체험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거기에 정신을 잃고 우와... 감탄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미션 투 마스>는 상영 당시 수많은 평론가들의 부당한 혹평에 시달렸고 흥행도 신통치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재발견되고 있는 중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 세계는 이제 단순히 영화 장인, 테크니션, 스릴러 영화의 달인, 히치콕 영화의 적자 같은 단순한 수식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영화 인생이 어디로,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예상해 볼 수는 있겠다. 그는 아마도 그가 찍어온 스릴러들과 다른 장르 영화들의 계열을 계속 오가면서 영화를 만들 것이다. 때때로 두 계열이 합쳐지거나, 하나의 계열이 다른 계열에 영향을 주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 첫 번째 계열의 스릴러물은 계속 변주의 변주를 거듭할 것이다. 두 번째 계열의 장르영화들은 드 팔마가 시도해 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장르의 영역으로 들어서거나,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장르영화의 길을 더 다듬는 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드 팔마 특유의 테크닉인 분할 화면, 카메라 움직임은 여전할 것이고 과거 고전 영화들에 대한 인용과 오마주와 패러디 역시도 계속 이어지면서 영화 장인, 영화 덕후의 모습을 계속 보여줄 것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드 팔마는 관객들이 팝콘을 먹으면서 느긋하게 멍하니 볼만한 영화들 대신 더 낯설고 더 머리를 써야 하고 더 스크린을 뚫어지게 봐야만 하는 영화들을 보여줄 것이다. 그 때문에 오해와 혹평도 시달리고 흥행에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드 팔마는 늘 그래왔듯 그가 만든 제목의 영화처럼 그야말로 untouchable, 그저 그의 길을 간다.

 

추신 : 드 팔마의 차기작은 <도미노>란 제목의 스릴러다. 덴마크의 경찰이 자신의 파트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스카페이스>를 본 후부터 드 팔마의 오랜 팬임을 자처하는 제작자 미셀 슈네맨은 우리의 야망은 <프렌치 커넥션>(1971)과 같은 고전의 스릴러물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차기작은 헐리웃을 강타한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가 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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