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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샹탈 아커만 특별전 <갇힌 여인>2018-08-21
Review 8월 시네마테크 기획전 샹탈 아커만 특별전 CHANTAL AKERMAN RETROSPECTIVR 2018.8.21.(화) ~9.9.(일)

 

 

<갇힌 여인> : 공간의 정치성

 

이동윤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공간의 정치성

 

    샹탈 아커만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힌다. 이것은 단지 관용적 표현이 아니다. 그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인물의 행위들을 보고 있으면, 아커만이 지향하는 영화적 방향이 일반적인 서사나 인물의 묘사에서 발생되는 감흥과 추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공간의 정치성이라 불리만한 것들이다.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잔느 딜망>(1975)에 산적하면서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그녀의 동선 안에서 머무르며 수없이 반복되는 공간들과 <, , , 그녀>(1974)에서 폐쇄되어 있는 작은 방 한 칸에서 한 여성이 가구를 옮기는 반복되는 행위들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개인이 마주한 현실을 보여준다.

    인물에 대한 필사적인 객관화와 공간의 전방위성을 영화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아커만의 영화 만들기는 잘 알려진 대로 마이클 스노우나 앤디 워홀의 아방가르드 사조에 영향 받은 결과물들이다. 허나 스노우와 워홀이 복잡한 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한 것과는 반대로 아커만은 공간의 추이를 파악함과 동시에 인물의 일상을 과도할 정도로 반복한다. 인물이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 공간 안에 인물을 우겨넣어 추이를 확인하려는 이 시도들은 인물들이 대부분 머무르는 영역인 내부 공간에 무료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혹은 그 행위들에 얕은 균열이 생겨나며 체제와 지위, 계급과 현실을 매개하고 있다.

 

 

공간 외부로의 시선 

 

    이러한 점에서 아커만의 후기작 <갇힌 여인>(2000)은 아커만이 지향하는 공간의 정치성을 보다 원숙하게, 다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 검은 밤바다-푸른 낮 바다의 이미지가 점프컷 되어 과감하게 제시된다. 이 대조적 배치는 아커만의 영화에서 종종 발생되었던 점프컷의 배열들과 유사한 충격을 준다. 아커만의 영화가 집에서 나와 바깥 외부로 시선을 돌릴 때, 그 공간들의 배열은 매우 원칙적이며 민주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배열들 사이에 쇼트의 크기 차이가 동일한 공간을 전혀 다른 시선과 느낌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예컨대 <집에서 온 소식>(1977)을 잠시 경유해서 이야기해보자. 내레이션으로 삽입되는 엄마의 편지를 배경으로 뉴욕의 지하철과 역사(驛舍), 상점과 골목길을 끊임없이 반복하던 영화가 종국에는 카메라 앞에서 전경을 펼쳐낸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과 별반 차이가 없던 뉴욕의 거리는 그 단 한 번의 익스트림 롱 쇼트로 인해 뉴욕이라는 공간의 고유성을 획득한다. 동시에 아커만이 작은 공간의 내부세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것처럼 (심지어) 뉴욕의 거리가 거대한 세계의 내부처럼 느껴진다.

    다시 <갇힌 여인>으로 돌아와서, 6mm 필름으로 찍은 것처럼 거친 입자가 그득한 영상의 정체는 주인공 시몽이 그의 연인인 아리안을 찍은 영상이다. 그는 그 영상을 틀어놓고 나는 정말 당신을 사랑해.”라고 읊조린다. 그리고 그는 아리안을 상영하고 있는 작은 스크린 앞에 선다. 시몽 또한 영사기에 투영되어 검은 형체로 스크린 좌측 하단에 위치한다. 이 이미지는 매우 기묘하면서도, 이 영화가 주장하는 이미지의 본질로서 나중에 다시 언급될 것이다.

 

 

실체와 비실체

 

    영화는 프루스트의 원작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소유욕과 의심을 다룬다. 영화의 주된 공간은 시몽이 머무는 거대한 저택과 시몽이 아리안을 감시하기 위해 오고가는 외부의 여기저기들이다. 시몽은 아리안이 동성친구인 앙드레와 연인관계임을 확신하고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 집착은 시몽의 시점쇼트로 발현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제목인 갇힌과 시몽이 행하는 행위의 역학적인 관계에 있다. 애초에 소유는 인간 사이에는 성립이 불가능한 행위일지 모른다. 인간이 무언가를 쟁취하는 것은 특정한 사물이거나 그가 쌓아온 평판에 근거하여 성립할 수 있지만, 인간 자체를 쟁취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환한다면 이는 실제세계에선 환상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시몽은 아리안을 소유하여 가두길 원한다. 그렇기에 자고 있는 아리안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육체를 구속한다. 내적인 상태가 아닌 외적인 육체를 자극하여 소유하는 것은 가장 1차원적이지만, 시몽은 성행위를 통해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탈피하고 그녀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의 실체는 파국으로의 결말을 향하고 있다. 시몽의 소유욕이 가닿는 곳은 실체와 비실체의 경계 아래 영향 받는다. 앞서 언급한 오프닝의 스크린 장면에서 시몽은 아리안을 6mm 필름 안에 가둬두고 그녀를 그렇게나마 완전히 소유하려한다. 하지만 그 역시 아리안이 투영되는 스크린 옆에 자신의 실체가 소거된 비실체의 일부로 존재할 뿐이다.

 

    덧붙여 시몽과 아리안이 왜곡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샤워를 하는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여기서 유리는 서로의 형체를 얼마간은 확인할 수 있으나 그 모습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사물이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에서 아리안 역시 왜곡된 유리 속에 존재하는 피사체로써 오프닝의 필름 속 실체가 아닌이미지와 유사해진다. 시몽은 팔을 뻗어 그녀의 육체를 잡으려하지만 유리는 투영체임과 동시에 그의 행위를 가로막는 장애물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그녀의 육체를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스크린과 유리라는 장치 내부의 허망한 움직임들은 바다라는 거대한 외부의 힘 앞에서 단 한 번에 무너져 내린다. 아리안은 반복되는 내부에서의 집착보다 단 한 번 외부로 더 멀리 나아가는 선택을 통해 영원한 자유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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