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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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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서머 스페셜 2018 <사랑과 무정부>2018-07-19
Review 7월 시네마테크 기획전 서머 스페셜 2018 Dureraum summer special 2018.7.18.(수) ~ 8.19.(일)

 

 

<사랑과 무정부> :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의 얼굴

 

조동국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사랑과 무정부>(1973)는 기이할 정도로 고양된 체 들판을 가로지르는 남자의 이미지로 시작된다. 리나 베르트뮬러는 어떠한 맥락도 관객에게 제공하지 않고서 첫 장면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선택을 했다. 영화는 강변을 향해 가지를 뻗은 나무에 걸쳐진 남자의 시체를 거치고 나서야 그가 무솔리니의 암살을 기도했던 반파시스트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남자는 그 과정에서 남부 이탈리아의 농부들과 교류하였는데, 그들 중 하나였던 토니는 남자의 유지를 잇기로 결심한다.

 

    토니는 남자의 죽음을 기묘한 방식으로 언급한다. “진흙을 머금은 시체는 왕과 같았어요 더 이상 죽음을 기다리는 농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암살기도에 실패하는 날 아침, “벌레가 된 기분이라며 광기를 드러내는 영화의 종반부와 이어진다. 그러니까 토니는 살아있는 동안 특별한 이름을 얻지 못하며, 그렇게 하려고 시도를 하지도 않는다. 그가 매혹된 것은 동료의 시체이며, 첫 장면을 지나 남자에게 이름 (‘숭고한 성인이자 저격자’) 이 붙는 순간이다. 한편 앞서 언급했다시피, 남자는 죽기 전 뭐라 규정짓기 어려운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비춰지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 남자의 모습은 전체주의는 물론이고, 그것의 대립 속에서도 좌표지어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토니가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은 로마 근교의 유곽에서 접선책 살로메를 만나면서인데, 코트를 걸치고 역광 속에 서 있는 토니는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아이콘처럼 보인다. 곧이어 아직 영업시간이 되지 않았으니 급하면 혼자 해결하라는 둥의 야유가 퍼부어지고, 살로메는 거사를 치르기 전에 욕구부터 풀라며 그를 충동질한다. 토니와 살로메가 이미 죽은 아나키스트를 회고하며 결의를 다지는 장면은 생략된 둘의 정사 이후에야 이어진다. 3의 인물 트리폴리나는 대단히 인상적으로 연출된 접대부들과의 연회 장면에서 토니와 눈을 마주치며 등장한다. 이후 영화는 각각 무정부주의적 대의와 사랑을 체화한 살로메와 트리폴리나의 사이를 토니가 오가면서 진행되는데, 두 인물도, 두 인물 사이 토니의 모습도 분열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뛰어난 연기 탓이기도 하겠지만(이 영화로 주연을 맡은 지안카를로 지아니니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기본적으로 토니라는 인물이 무언가에 의해 자아가 유보되어있는 불안정한 인간으로 묘사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토니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는 관객에게 이미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반면, 어째서 그가 트리폴리나와의 관계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는지에 대해 영화는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역사가보다는 관음증적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소구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 모르지만, 무솔리니 암살을 앞두고 토니와 트리폴리나가 함께 보내는 이틀을 다룬 시퀸스는 <사랑과 무정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몇몇 이미지를 남긴다. 시퀸스를 이루는 몽타주의 두 번째 숏에서 토니는 푸르게 칠해진 벽을 뒤로하고 서있다. 모자로 더운 공기를 밀쳐내면서 큰 눈을 끔벅이는 토니의 모습은 베르트뮬러 스스로가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을 두고 언급한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을 떠올리게 한다. 카메라 밖에서 단장을 마친 트리폴리나가 걸어 들어오며 시작되는 장면은 햇빛이 비치는 카페에서 그들이 농부와 창녀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끝나지만, 토니의 동기는 관객에게 명확히 전달된다. 그러나 살로메의 대사로 언급되었듯이, 그의 동기는 압제자에 대한 증오에서 그 자신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벌레로 규정짓는 틀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광기로 바뀐 듯하다.

 

    영화는 종국에는 저격자는 사라지고 사상만이 남을 것이라는 염세적인 인용으로 마무리된다. 리나 베르트뮬러는 사상저격자를 일치시키는 손쉬운 방식이 선택하지 않고, 인물의 욕망과 동기를 탈색시키지 않는 가운데 관객에게 단단한 실체를 남긴다. 결국에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당신을 애인으로 소개했다는 여자의 말에 그랬다면 참 좋겠군요.”라고 말하는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의 얼굴이다. <사랑과 무정부>에서 사라지는 것은 저격자가 아니라 그에게 붙는 짧은 이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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