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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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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1세기 거장전 2018 <머리 없는 여인>2018-06-22
21세기 거장전 2018 리뷰

 

루크레시아 마르텔 <머리 없는 여인>

 염색되지 않는 것들

 

 심미성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머리 없는 여인>(2008)에 대한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태도는 일관되게 모호하다. 어떤 영화는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고, 어떤 영화는 물음을 남긴다. 그러나 마르텔의 영화는 이 두 가지 부류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는 인상을 준다. 모호함으로 시작해 모호함으로 이끌다가 모호하게 끝맺는다. 이 불가해한 영화의 끄트머리를 쥐기 위함이라면 몇 가지 잔상들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개를 데리고 도로 가를 쏘다니는 아이들의 번잡한 뜀박질이 보인다. 그런 다음엔 금발머리의 여자가 차를 몰고 가다 떨어진 물건을 줍던 중 둔탁한 마찰을 겪는다. 이내 카메라의 프레임은 <머리 없는 여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그녀의 얼굴 부분을 제외한 모습을 비춘다. 이후로는 이 여인이 시달리는 ‘누군가를 죽였다’는 불분명한 죄의식이 남은 영화의 서사를 채운다. 서사는 여인이 정말로 사람을 치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를 치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흘러간다.

 

사건 이후 이 여인 베로가 보여주는 이상 행동들이 죄의식으로부터 발현한 행동인지를 판별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영화의 도입, 그러니까 베로의 등장 시점과 일치하게 자동차 사고 장면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베로의 모습들은 모호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어딘가 얼이 빠져있는 모습은 본래 그녀가 다분히 공상적인 성향의 인간일 수 있다는 짐작도 가능케 하며, 그녀 주변에 있는 일련의 소소한 정보들을 잊은 듯한 모습은 그녀가 원래 건망증이 심했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판단이 더딘 사람이라거나 본래 말 수가 적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동반한다. 모든 것이 그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채로 영화가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 모호함이다.

 

영화의 제목에 되레 눈길이 간다. ‘머리 없는 여인’이라는 표현에 보다 더 명징한 함의가 있다. 다분히 상징적이기도 한 제목은 이 흐릿한 영화에 일말의 열쇠를 쥐어 주고 있다. 베로는 영화가 시작된 순간부터 금발이었으나 이것이 그녀의 타고난 머리색은 아니다. 영화의 말미에 검은 머리로 염색한 그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원래 어떤 색인지 잊어버렸어. 아마 회색이 다 됐을 거야.” 그녀가 자신의 본래 머리색을 잊고 있다는 점과, 짐작은 하지만 애써 다른 색으로 뒤덮어버렸다는 점은 교통사고를 대하는 그녀의 심정과 상통하는 듯 보인다. 게다가 시종 엷은 미소를 띤 이 여인의 표정은 무의미로 벌인 축제처럼 느껴진다. 그 얼굴로부터 어떤 것도 읽을 수 없기에 ‘머리 없는 여인’이라는 제목을 ‘얼굴 없는 여인’으로 불러도 무관할 것 같다. 그녀가 안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은 미소 띤 가면에 제법 가려져 있다가도 이따금씩 새어 나온다. 비슷한 이야기는 정원 관리사가 마당을 정리하며 내뱉은 한마디에서도 별 것 아닌 양 서술된다. “여기가 분수나 풀이었는데 메꿨나 봐요.” 가리려 해도 새어 나오고 마는 은유들은 사태를 점차 포박해가고, 여인을 점점 더 머리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녀는 남편에게 차사고가 있었음을 털어놓고 밤중에 사고 현장을 찾아간다. 불안한 모습의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남편은 개를 친 것일 뿐이라고 거듭 말한다. 그녀도 개의 사체를 발견한 듯 보이지만 굳이 내려서 확인하지는 않는다.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주행하라고 말할 뿐이다. 죄의식이 출발한 장소에 방문하기는 했지만 정작 제대로 보지 못한다. 불명확한 죄의식에 휩싸인 그녀를 더욱 끔찍하게 괴롭히는 것은 모호함이 사실로 판명 나는 지점이 되고 말 것이다. 정말인지 아닌지 누구도 모를, 어쩌면 그나마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은 그녀 자신뿐인 진실과 마주할 자신이 없는 여자는 자발적으로 모호함을 택한다. 주변 인물들은 겁먹은 그녀를 향해 그건 개였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이 말은 효력이 없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단언이지만 그녀는 결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로는 도로를 지나가다가 수로가 막혀 구급대원들이 출동한 현장을 본다. 불쾌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 짐승이나 사체가 수로를 막은 모양이다. 베로가 들른 화원에서도 어떤 말이 우리 귀에 날아와 꽂힌다. 화원에 일하던 아이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것. 여자가 낸 사고와 사라진 아이는 관련이 있을까. <머리 없는 여인>은 그런 판단에 이르기에 거리낌이 없을 만한 단서를 주지만 이것은 장면의 배치라는 트릭에 지나지 않는다. 관객에게는 단서로 도착할지언정 그녀에게는 스쳐 지나갈 뿐이다.

 

<머리 없는 여인>은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영화다. 이토록 단선적인 서사는 거듭 마주할수록 더 많은 사건들과 얽혀 복잡 다양한 구간을 형성한다. 이 영화는 계급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여지도 상당하거니와, 중년 여성이 봉착한 위기 혹은 타자에게 가해진 일면적 태도들에 집중할 수도 있다. 모호함으로 흐르는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시네마가 수렴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결국 목격하는 자들이 상정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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