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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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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성적표의 김민영> : 삼행시를 닮은 영화2022-09-19
성적표의 김민영 스틸

 

 

<성적표의 김민영> : 삼행시를 닮은 영화

 

김나영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이재은, 임지선 감독이 공동연출한 <성적표의 김민영>은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정희(김주아), 민영(윤아정), 산나(손다현) 세 친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충북 청주에 있는 한 여고의 학생으로 수능을 100일 앞둔 시점에 학생과 자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삼행시 클럽의 해체를 선언한 참이다.

 

성적표의 김민영 스틸

 

   삼행시는 미리 정해진 제시어의 각 글자를 첫 글자로 하는 문장을 만들어 각 문장이 연결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보통 삼행시에서 요구되는 것은 문장들의 단순한 완결성이 아니라 예상을 벗어나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재치다. 삼행시가 대개 유머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성적표의 김민영> 역시 성장 드라마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의외의 순간에 드라마의 관습을 비켜나가는 장치들, 특히 유머의 순간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삼행시와 닮은 면이 있다. 영화 전반의 유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성적표의 김민영>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유머와 변칙적인 리듬에 있다. 삼행시라는 가벼운 형식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진지함, 그리고 정희가 읊는 해체 강령의 내용과 영화에서 보이는 이들의 모습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데서 영화는 웃음을 유발한다. 한편으로 이들이 삼행시로 만들어내는 메시지에는 때때로 이들의 마음에 대해 잠시 웃음을 거두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던 민영이 영원히 제가 이대로 살아가진 않을 거예요.”라고 말할 때, 민영의 삼행시가 전달하는 의외의 지점은 역으로 삼행시라는 형식에서 기대되는 유머를 배반하는 바로 그 진지함에 있다. 영화를 여는 삼행시 클럽해체 선언 장면은 그런 면에서 <성적표의 김민영>이라는 영화의 기조를 탁월하게 압축했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스무 살의 감정과 고민은 너무 가볍게 치부되지도, 지나치게 무겁게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성적표의 김민영 스틸

 

   수능 이후 친구들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성적표의 김민영>이라는 제목처럼 민영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 같던 영화는 정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학 진학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탐색하기로 한 정희와 달리 두 친구는 각각 미국과 다른 지방의 대학에 진학하는데, 영화는 여기서 한 번 더 예상을 벗어나 진행된다. 달라진 환경으로 인해 세 친구의 우정에도 변화가 생기고,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정희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전개되리라는, 그러니까 성장 영화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에 바탕을 둔 예상과 달리 영화가 전체 러닝타임의 약 3분의 1지점을 지나고 난 후 영화는 정희가 민영의 집에 놀러 간 12일간의 이야기만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서울에 머무는 민영에게 놀러 오라는 제안을 받은 정희는 캐리어 가득 짐을 싸 들고 민영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학창시절 사소한 것에 엉뚱한 열정을 쏟아내던 민영의 모습을 기대했을 정희 앞에서 민영의 관심은 온통 대학에서 받은 첫 성적표에 쏠려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 제목이 김민영의 성적표가 아니라 <성적표의 김민영>인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결국 민영에 대한 정희 나름의 이해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을 보면 지금의 제목을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성적표의 김민영앞에는 정희가 쓴이라는 표현이 생략된 셈이다.

 

성적표의 김민영 스틸

 

   12일은 변해버린 친구를 이해하게 되기에는 짧은 시간 같으면서, 민영의 작은 집이라는 공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처럼도 여겨진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두 친구 사이의 화해나 불화의 결말 한쪽을 선택하는 대신 정희가 불완전하나마 타인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삼행시를 닮은 영화를 근사하게 매듭짓는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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