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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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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사랑, 인생, 예술의 삼위일체 - <작은새와 돼지씨>2022-09-02
작은새와 돼지씨 이미지

 

 

사랑, 인생, 예술의 삼위일체

- <작은새와 돼지씨>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작은새와 돼지씨 스틸

 

 

1.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는 얼핏 보기엔 쉽고 단순해 보이는 영화다. 이해가 안 간다거나 난해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막상 이 영화의 내용을 언어로 풀어서 설명하기엔 결코 쉽지 않은 영화다. 굳이 한 줄로 이 영화를 설명하자면 온 가족이 예술가인 가족의 과거와 현재, 그들이 만드는 예술 작품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말도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김춘나, 김종석 부부의 이야기와, 딸인 김새봄 감독까지 포함한 가족의 이야기, 그들이 만들어내는 예술 작품들과 그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각각의 요소로 따로따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뒤섞여 있고 합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가족의 힘이며 사랑의 힘이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은 이 영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 그야말로 팀플레이, 가족이라는 원 팀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아파트의 경비원인 김종석 씨가 경비원 유니폼을 입고 손전등을 들고서 아파트 여기저기를 순찰하는 장면 위로, 그의 시 그림자라는 시가 그가 휘갈겨 쓴 글씨로 화면 위에 나온다. 시가 계속 이어지면서 그가 경비실에서 종이에 볼펜으로 그 시를 써내려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김새봄 감독은 그 시를 기존에 있는 폰트로 영화에 표시하지 않고 굳이 김종석 씨가 손으로 쓴 글씨를 한 줄 한 줄 영화에 그대로 새겨 넣는다. 여기서 시의 문학적인 가치나 글자의 가독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이건 아버지의 삶이자, 아버지의 글씨이자, 아버지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노동과 글씨체와 시가 돼지씨라는 시인이자 김종석이라는 중년의 남자,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한 인물의 초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는 작은새김춘나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택의 베란다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 김춘나 씨의 가사 노동 장면 뒤로, 자신이 가꾸는 화초를 색연필로 그리고 있는 화가 작은새김춘나 씨의 장면이 이어진다. 그들의 예술은 삶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걸 찍는 김새봄 감독은 영화의 연출자인 동시에 그들의 딸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숨기지 않는다. 이 사랑의 힘이 이 영화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다. 이걸 영화적 효도라고 불러도 될까?

 

작은새와 돼지씨 스틸

 

2.

부모의 이야기를 딸이 영화로 찍는다. 그러면 뭐가 문제가 될까. 없다. 이 문제없음이 곧 문제다.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를 보고 있으면 영화 내내 큰 갈등이나 고난, 위기의 요소 없이 영화가 평화롭게 흘러간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도 화목하고 김춘나 씨와 김종석 씨 모두 인격적으로 결함이라고 할 만한 부분도 전혀 없다. 중년의 나이지만 두 사람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사람들이다. 김종석 씨가 젊었을 때의 모습에 비해서 살이 많이 찌기는 했지만 그게 영화 속에서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면 예술가들 특유의 고뇌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서예를 하거나 시를 쓰면서 괴롭지 않고 행복해 보인다. 자신의 예술로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거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프로의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자신의 예술을 갱신하려는 욕심도 없다. 이미 그들은 자신의 예술 활동을 통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도 문제될 게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위기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인생에 고난이 없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다만 그것은 과거의 일로만 짧게 언급된다. 그들 부부가 슈퍼를 운영하며 집주인과 다투던 일, 치매를 앓던 김종석 씨의 어머니를 모시다가 보내드린 일 등...

대신 영화는 그들의 현재의 행복을 더 많이 묘사하는 것으로 심심함을 돌파하려 한다. 부부 간에 발톱을 깎아주고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주는 장면, 김춘나 씨가 김종석 씨의 얼굴 마사지를 해주는 장면들은 소소한 웃음을 준다. 무엇보다 후반부에 그들의 전시회와 시 낭송회가 열리는 장면에서 그들은 진정 행복해 보인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김종석 씨의 일갈처럼 이것이 인생이로다!”라고 할 만한 장면이다. 예술의 의미니 삶의 의미니, 프로니 아마추어니 그런 거 모르면 어떤가. 행복하면 그게 최고 아닌가.

 

사족: 한때 부산의 초읍동에 오래 살았던 주민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더 반갑게 느껴졌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민도서관과 어린이대공원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저 두 장소의 존재만으로도 초읍동은 문화적인 면에서는 부산 내 최고의 동네 중 하나라고 자신할 수 있다. 김춘나 씨와 김종석 씨도 내 말에 동의하실 것이다. 김씨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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