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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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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불안의 소리들을 넘어서 - <둠둠>2022-09-22
둠둠 스틸

 

 

불안의 소리들을 넘어서 - <둠둠>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우리 모두는 저마다 크든 작든 불안을 안고서 살아간다. 여기 영화 <둠둠>의 인물들도 각자의 불안을 품고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다. 주인공 이나(김용지)는 재능 있는 클럽 DJ지만 딸을 출산하고 미혼모가 되고나서부터 생계를 위해 텔레마케터로 취직했다. 이나는 아는 교인 부부에게 딸을 맡겨놓고서 일을 나가지만 부부는 곧 이사를 가고 싶어 하며 이나에게 딸을 다른 부모에게 입양 보낼 것을 권한다. 이나의 엄마 신애(윤유선)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불안장애로 인해 이나에게 계속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엄마는 지하실에 대피소를 만든다. 계속되는 엄마의 메시지 알림음, 네일건의 둔탁한 못 박는 소리가 이나를 괴롭힌다. 이나의 선배 DJ 준석(박종환)은 자신만의 작은 클럽을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테크노 디제잉을 지켜나가려고 한다. EDM, 혹은 케이팝 아이돌의 댄스 음악을 만드는 일이 훨씬 돈이 된다는 걸 알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관 때문에 타협할 수가 없다. 모두가 각자 다 다른 이유로 불안한 시대다. 영화 <둠둠>은 자신의 불안을 이겨내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둠둠 스틸

 

 

제목처럼 <둠둠>은 소리에 대한 영화이며 소리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다. 감독이 영화 내내 사운드디자인이 매우 섬세하게 설계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디제잉을 위해 사용되는 테크노 음악들은 물론이고, 이나가 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가거나 골목길을 달릴 때 들리는 다급한 발자국 소리, 신애가 지하실에서 네일건을 쏘는 소리, 신애가 딸에게 하는 잔소리 혹은 저주 섞인 말들, 텔레마케터들이 사무실에서 저마다 고객들을 응대하는 말들 등등이 이나의 심리를 대변하거나 혹은 이나에게 심적인 부담을 안기는 역할을 한다. <둠둠>은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전혀 아니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과 어우러지는 소음들이 이나와 이나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준다. 정원희 감독은 이미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걸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헤드폰을 끼고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던 DJ가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끼고 텔레마케터를 하게 된다는 설정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둠둠>은 자신의 소리를 창조하던 여자가 원치 않는 소리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을 다룬 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압박감의 소음 반대편에는 미니멀한 비트가 반복되는 테크노 음악이 자리하고 있다. 정원희 감독은 비주류라고 부를 만한 클럽 DJ들이 회의감에 빠지고 절망하면서도 자신들의 클럽과 음악들을 지켜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독 본인도 독립영화계에서 그들처럼 버틸 수 있기를 소망하는 지도 모른다.

 

둠둠 스틸

 

<둠둠>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서사다. 특히 후반부는 뭔가 갑자기 여러 가지 일들이 스리슬쩍 해결되고 봉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한 영화 속에서 너무 많은 주제들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도 아쉽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건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다. 장편영화 출연이 처음인 배우 김용지는 감정을 터트리지 못하고 대부분 꾹꾹 눌러 삼켜야만 하는 주인공 이나 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낸다. 이나의 가장 큰 짐이라고 할 만한 엄마 신애 역은 베테랑 윤유선이 노련하게 연기한다. 차갑고 뻔뻔한 모습, 광기어린 모습,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연약한 모습까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제는 독립영화계의 스타 남자배우라고 불러도 무방할 박종환의 존재도 든든하다.

 

둠둠 스틸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을 언급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정원희 감독이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다. 특히 이나의 엄마 신애를 그저 단순히 딸의 앞길을 막는 빌런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끝끝내 그녀의 처지를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고 이나가 그녀를 어떻게든 구원하게끔 만든 점이 좋았다. 마음이 힘들고 불안한 사람들은 자기 마음과는 다르게 말이 험하게 나오고 행동이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스스로가 그걸 알면서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면 아픈 사람이니까. 정원희 감독은 그런 사람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감독의 다음 영화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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