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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거장의 예외적 영화들

[시네마테크] 거장의 예외적 영화들

Their Unexpected Films

2019-08-16(금) ~ 2019-09-01(일)


상영작

교차로의 밤 (1932, 장 르누아르) / 내가 죽인 남자 (1932, 에른스트 루비치)

바다의 침묵 (1949, 장-피에르 멜빌) / 라임라이트 (1952, 찰리 채플린)

아나타한 (1953, 조셉 폰 스턴버그) / 폭풍의 언덕 (1954, 루이스 브뉘엘)

해리의 소동 (1955, 알프레드 히치콕) / 동경의 황혼 (1957, 오즈 야스지로)

기디언 경감 (1958, 존 포드) / 몽상가의 나흘 밤 (1971, 로베르 브레송)

브리지 (1973, 클린트 이스트우드) / 스트레이트 스토리 (1999, 데이비드 린치)

장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요금
일반 6,000원 / 유료회원, 경로, 청소년 4,000원
주최
(재)영화의전당
후원
주한프랑스대사관, 주한프랑스문화원, Institut francais
상영문의
051-780-6000(대표), 051-780-6080(영화관)

시네도슨트 영화해설

해설: 박인호 (영화평론가)

일정: 상영시간표 참고



Program Director's Comment

영화사의 공인된 거장을 말할 때, 우리의 머리에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그의 고유한 영화적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요소들은 가장 흔하게는 특정 장르일 수 있으며(존 포드의 서부극,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 장 피에르 멜빌의 범죄 드라마), 어떤 캐릭터이거나(찰리 채플린의 가난한 떠돌이, 조셉 폰 스턴버그의 정념의 여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과묵하고 폭력적인 남자), 특정 공간이나 무대 장치이기도 하며(오즈 야스지로의 일본식 가옥, 에른스트 루비치의 문), 때론 특정한 스타일이나 표현 기법일 수도 있습니다(루이스 브뉘엘과 데이비드 린치의 초현실주의적 시공간). 이런 요소들은 우리가 그들의 개별 영화들을 볼 때, 그 거장의 세계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신호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 목록 안에는 특유의 영화적 인장이 없거나 때로 상반된 요소들이 담긴 이례적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을 만날 때, 우리는 ‘아니, 그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라며 의외성의 즐거움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호기심을 진정으로 자극하는 것은 한 감독의 예외적 영화들이 단순히 그의 여타 작품들과 다르다는 평면적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그 예외성이 종종 그 감독의 고유한 영화 세계를 우회 혹은 아이러니의 길을 경유해 되짚어 더 깊이 부각시킨다는 점일 것입니다. 결실의 계절을 앞두고, 이런 점을 떠올리면서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는 너무도 유명한 거장들의 예외적 작품을 만나는 특별한 기획전을 마련했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라임라이트>와 에른스트 루비치의 <내가 죽인 남자>는 코미디 영화의 두 신(神)이 빚어낸 우울한 드라마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0세기 영화의 가장 위대한 희극인 채플린이 삶의 황혼녘에 짙어 가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생을 반추하듯 만든 <라임라이트>에는 회한과 연민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내가 죽인 남자>는 루비치의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일종의 자기 치유 시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깊은 자책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 프랑스 거장의 특별한 작품도 흥미진진합니다. 조르주 심농의 추리 소설을 영화화한 장 르누아르의 <교차로의 밤>에 대해 장 뤽 고다르는 “르누아르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영화”라고 말합니다. 발자크와 도스토옙스키와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만난 듯한 기묘한 분위기와 캐릭터들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이 영화가 “단 하나의 위대한 프랑스 탐정 영화”라고 고다르는 단언합니다. 장 피에르 멜빌의 데뷔작 <바다의 침묵>은 이 프렌치 누아르의 거장이 만든 작품이라고 짐작하기 힘든 실내극이자 심리극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폐쇄 공포증적 기운을 만나고 나면, 그의 후기 범죄 영화들이 지닌 감금의 모티브의 연원을 비로소 감지하게 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야>가 원작인 로베르 브레송의 <몽상가의 나흘 밤>은 브레송 특유의 절망의 모티프가 완전히 부재하고, 시각적으로는 현란하다는 점 때문에 개봉 당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후대에 불안하고 양가적인 청년기 심리의 시각화에 성공한 걸작으로 재평가됩니다. 


세 미국 거장의 작품은 그 자체로도 걸작들입니다. 존 포드의 <기디언 경감>은 놀랍게도 현대 대도시, 그것도 런던에서 촬영된 범죄 드라마입니다. 90분의 시간에 30개의 에피소드와 50여 명의 대사가 있는 인물을 담은 이 영화는 숨가쁜 리듬과 영화적 요소들의 조화라는 면에서 완벽한 영화이자, 태그 갤러거에 따르면 포드의 유일한 희비극(tragicomedy)입니다. <해리의 소동>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잔혹성과 냉담한 유머가 공존하는 희귀한 작품입니다. “시체를 담뱃갑처럼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아이디어였다고 히치콕은 말합니다. <아나타한>은 태평양의 한 외딴 섬에서 실제로 벌어진 기괴한 사건을 영화에 담아낸 조셉 폰 스턴버그의 마지막 걸작입니다. 평생 원초적 열정을 탐구했던 스턴버그가 이력의 마지막 시기에 만든 기괴하고 아름다우며 대담하고도 독창적인 작품입니다. 


루이스 브뉘엘이 멕시코 시절에 만든 <폭풍의 언덕>은 고전 문학을 각색한 그의 희귀한 영화로서 브뉘엘의 주요작으로 잘 거론되지 않지만 재평가가 필요한 작품입니다. 원작의 무대인 영국 요크셔를 멕시코의 황야로 옮겨 오면서 브뉘엘은 에밀리 브론테의 원작을 메마르고 황량한 공간의 시학으로 번안합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의 황혼>은 일상성, 조화와 빛, 가벼운 유머와 섬세한 애상이라는 전후 오즈 영화의 주조(主潮)를 깨고, 죽음과 범죄, 어둠, 냉혹한 환경을 전경화한 드문 작품이며, 오즈 영화 세계의 진경을 되짚어 알려 주는 후기 걸작입니다. 


오늘날까지도 활동 중인 두 노장의 작품도 상영합니다. 초현실적 시공간과 이미지가 지닌 잠재력을 탐구해 온 데이비드 린치는 제목부터 노골적인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인 가족 멜로드라마의 세계를 펼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드문 멜로드라마 <브리지>는 그의 걸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 막 연출 세계에 입문한 젊은 이스트우드가 좌충우돌하면서도 육중한 감정의 축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걸작은 이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이례적인 12편의 영화들은 작품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이 거장들의 세계가 지닌 영화적 정수를 그 세계의 풍요로움과 함께 재음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귀중한 관람 체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허 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