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전당

* 시네도슨트 영화해설 *

해설: 영화평론가 박인호

일정: 상영시간표 참고

Program Director's Comment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또 많은 영화들이 개봉되지만, 적지 않은 보석 같은 작품들이 극장으로 향하지 못한 채 잊혀지거나 여전히 창고에 머물러 어려운 개봉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네마테크 최대 연례 기획전인 ‘월드시네마 XIV’를 앞두고 최근 2년간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수작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을 마련했습니다. 분투하고 번민하는 동시대 영화의 최전선을 이 기획전을 통해 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거장들의 신작을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온 여성 감독 샹탈 아커만의 유작 <노 홈 무비>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늙고 병들어 곧 사라질 어머니의 기억을 아커만은 아름답고도 가슴 저린 영상에 담았습니다.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겨울노래>는 이제 팔순이 넘은 이 노장이 여전히 무표정한 톤 안에 예민한 촉수로 세계와 인간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코미디입니다.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칠레 전투>를 만든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신작 <자개단추>는 칠레 민중의 기억과 역사, 신비로운 자연의 풍광을 담은 뛰어난 다큐멘터리입니다. 

두기봉의 <삼인행>은 이 홍콩영화의 마지막 거인이 그 창의성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탄복할 만한, 무용과 같은 천의무봉한 액션과 정교한 카메라 워크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상찬을 받은 브루노 뒤몽의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은 한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실종사건을 소재로 코미디와 로맨스를 버무린 기묘한 수작입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은판 위의 여인>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이 거장은 해외(프랑스)에서의 첫 작업인 이 영화에서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어조로 유령적인 것의 무게를 포착합니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찬란함의 무덤>, 라브 디아즈의 <떠나간 여인>, 왕빙의 <타앙-경계의 사람들>은 현재 아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거장들의 맹렬한 분투를 보여주는 수작들입니다. 다큐멘터리적인 방식과 태도가 어떻게 모종의 한계에 부딪힌 21세기 영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는지를 이 최신작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신성 세자르 아우구스토 아세베도의 <대지와 그늘>, 미지의 프랑스 거장 필립 그랑드리외의 <밤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제는 거장이라 불러도 좋을 알베르 세라의 <루이 14세의 죽음>은 2015년과 2016년에 거의 모든 영화 매체들이 베스트 목록에 올린 화제작들입니다. 언어화할 수 없는 이미지의 힘과 매혹을 이들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멕시코의 자경단 영웅의 삶을 담아낸 매튜 하이네만의 <카르텔 랜드>는 극영화보다 더 극적인 기묘한 다큐멘터리이며,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은 고전적인 장인정신으로 현대적인 분열증을 위트 있고도 날카롭게 그려낸 2016년 최고의 코미디로, 이들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비평적 상찬을 받은 수작들입니다. 

이번에 상영될 14편의 신작들을 통해 동시대 영화의 다양한 면모, 그리고 위대한 시네아스트들의 치열한 고민과 걸출한 성취를 동시에 확인하시길 빕니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허 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