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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거장전 2018 <그림자 열차>2018-06-19
review 6월 시네마테크 기획전 21세기 거장전 2018 cineastes in the 21st century 2018.6.19(화) ~7.11(수)

 

 

기억의 시간, 혹은 훼손의 시간 : 호세 루이스 게린의 <그림자 열차>

 

구형준 부산영화평론가협회

 

과거와 현재, 기록과 재연

 

  <그림자 열차>(1997)를 거칠게 설명하자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제라르 플뢰리에 의해 촬영되고 최근에야 복원된 1920년대 필름 푸티지들이 있으며, 두 번째로 게린에 의해 재연되고 촬영된 현재의 플뢰리 저택 풍경과 재연 배우들의 정지(를 연기하는)이미지들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린에 의해 편집되어 기존의 내용과는 다른 방식으로 몽타주된 1920년대 필름 푸티지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 종류 영상들은 초반부와 중반부, 후반부로 나뉘어 차례로 보여지지만, 그 구분점이 옴니버스 영화처럼 명확히 나뉘어져 있는 것은 아니며, 과거의 푸티지 영상이 현재 촬영된 영상들 사이에 삽입되기도 하고, 재연 이미지들과 원본 이미지들이 몽타주 되는 방식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과거의 기록(복원된 필름)과 그 기록 속 풍경의 현재, 그리고 그 기록의 재연, 또한 그 기록을 질료로 하는 재구성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섞이고 뭉쳐지거나 풀어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영화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나열되고, 조작되고, 재연되면서 구성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기록과 재연, 몽타주를 다양한 방식으로 오가는 형식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 우리는 이 영화의 구성 속에서 70년의 시간에 내재된 세월의 흔적들을 볼 수 있으며, 1920년대의 영상과 1990년대의 영상 사이에 존재하는 기술적 거리(컬러와 사운드, 영상의 질감과 필름의 훼손 등)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림자 열차>는 공간에 서려있고 박혀있는 (70년이라는)시간의 흔적, 카메라라는 기술 조건의 변화가 초래하는 기록의 변화들을 이런 저런 방식을 통해 영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설명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초기영화의 본질, 훼손

 

  처음의 질문에 좀 더 상세히 답하기 위해 약간의 우회를 해보자. 오프닝 자막의 말미에서 영화는 복원된 필름들에 대해 “이러한 활동사진이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초기영화를 연상케 한다 imagenes rudimentarias pero vitales, que vienen a rememorar la infancia del cine”고 기술한다. 하지만 이 서술에는 ‘초기영화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플뢰리에 의해 기록된 푸티지를 보며 막연하게 그 속에서 ‘초기영화적’인 것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기영화적인 것이란, (톰 거닝이 말하는)이미지의 순수한 운동이 지닌 활력일 수도 있고, 무성영화이기에 가능한 이미지의 음악적 활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자 열차>는 초기영화의 이러한 성질들보다도 좀 더 기술적이고 매체적인 본질, 즉 훼손에 주목한다.

플뢰리의 푸티지는 가능한 최대치의 복원을 했지만 70년의 세월을 지나온 필름이 훼손 상태를 완전히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푸티지에는 여러 가지 훼손이 서려있으며, 이러한 훼손은 그 자체로 70년을 반증하는 시간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훼손’은 그 자체로 필름이라는 영화의 조건이 내재하고 있는 본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영화가 디지털로 제작되기 이전에는 모든 필름들이 이와 같은 훼손을 피해갈 수 없었으며, 우리는 모두 객관적 기록으로서의 영화를 보면서도 동시에 제각기 다른 ‘훼손’으로 이루어진 개별적인 필름을 봤었다.

그리고 필름의 본질이면서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 이러한 ‘훼손’이 가장 두드러지는 영화들이 바로 초기영화들일 것이다. 즉 <그림자 열차>가 말하는 ‘초기영화적’인 것이란 영화 이미지의 순수한 운동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훼손되고 불완전한 결여를 지닌 필름의 표면일 수 있는 것이다.

 

훼손을 통한 기억의 재구성

 

  그리고 이 영화가 말하는 ‘초기영화적’인 것이 물리적인 훼손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라면, 앞서 언급한 영화의 몇 가지 특징들이 좀 더 확장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림자 열차>는 과거의 기록과 그 기록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종류의 몽타주와 재연 장면, 그리고 그 기록을 토대로 한 현재의 풍경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과거에서 비롯된 여러 파생된 이미지의 근간인 플뢰리의 영상은 훼손되어 있다. 즉 현재에 이루어진 이런 저런 과거의 재구성은 모두 훼손된 기억, 불완전한 이미지, 결여를 지닌 공간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의 중간에 삽입되는 영사기 소리와 사운드 대신 삽입된 음악, 필름 표면에 난 스크래치와 소실된 필름에 대한 표현은 결국 모두 영화의 시선이 언제나 훼손을 경유하고 있으며, 이 모든 재구성이 결여를 가진 이미지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즉 불완전한 기억을 토대로 공간과 이미지와 사운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들을 수 있는 것과 들을 수 없는 것, 인지할 수 있는 것과 인지할 수 없는 것들의 사이를 오가면서 과거 속의 현재를 재구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림자 열차>가 행하고 있는 기억의 재구성이다.

 

  <그림자 열차>는 단순히 시간의 흔적과 기록의 기술적 변화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불완전한 과거의 조각을 통해 현재를 사유하고, 작은 기억에서 출발해 유연하고 생동감 있는 현재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다. 우리가 객관적 기억을 가질 수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듯, 영화가 가진 훼손은 때때로 우리를 무한한 세계로 안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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