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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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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네마 2020 -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2020-05-18
세계영화사의 위대한 유산, 월드시네마 2020 2020.5.19.화~6.10.수 매주 월요일 상영없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와 떠나는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김지연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지난해, 혹은 올해 프레데릭바드, 어쩌면 마리앙바드, 칼슈타트, 바덴살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어려운 질문이다. 알랭 레네에게 과거란 현재 속에 지속하는 시간으로, 그러한 인식은 몇몇 작품에서 주로 역사적 사건과 결부되었다. 누군가 상처 받고 여전히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종결된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카메라는 풀들이 높게 자라 이제 폐허처럼 보이는 현재의 수용소를 서성였고(<밤과 안개>(1955)), 어디에 있어도 과거의 영향 아래 자유롭지 못한 삶들을 바라보았다(<히로시마, 내 사랑>(1959), <뮤리엘>(1963)).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는 시간의 선형적인 흐름을 믿지 않고 사건을 인과 관계로 다루지 않는 영화다.

 

  우리가 난처해지는 이유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지 반세기가 더 지났어도 고전적 영화 보기의 관객이고, 그 태도를 이 영화에서 역시 고수해서다. 그것은 각 플롯들이 서로 유기적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만 유효하다. 그러므로 이 관습을 거부하는 영화에서 추려 낼 수 있는 사실은 몇 마디 문장에 불과하다. 여자와 남자가 사랑에 빠졌다. 여자에게는 파트너가 있었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은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1년 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여자는 남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남자는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끈질기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앙상한 사실들마저도 때로는 의심할 순간이 온다.

 

  앞서 말했듯, 남자가 여자에게 호소하는 과거 또한 이를 소환하는 현재의 시간으로 수렴된다. 모든 것이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렇게 의식의 흐름을 따르므로 자동 기술 방식은 논리를 거부하고 초현실적이며 의미가 있을 수도 공허할 수도 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나 생각의 편린들과 함께 의식은 가지를 뻗어 나간다.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의 구분은 그렇게 효용을 잃고 현실과 환상은 평등하게 다루어진다. 사실이란 엄밀히 따지면 개별 의식이 받아들이는 주관적 차원일 뿐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으며 그마저도 변형될 소지가 있다. 그 결과 숏들은 분절된 채 나열되고, 세부가 달라진 하나의 숏들이 반복될 수 있다. 물론 한 숏 내에서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도 포기한다.

 

  영화는 상당 부분 누보로망 소설과도 기치를 공유한다. 하지만 시각화는 고스란히 알랭 레네의 영역이다. 이를테면 불확실한 것들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 두는 방식이 그렇다. 영화는 그 성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내부의 배치와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 감정을 표현하는 장소인 사람들의 얼굴은 무표정하고, 그들의 몸짓은 극도로 양식적이다. 그래서 셋뿐인 주요 인물들의 성격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 명료한 것은 인물이 세계를 감각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감각들의 열거로만 구성된 이 영화야말로 인식의 실재에 가장 근접한 리얼리즘 영화가 아닐는지.

 

  그러는 동안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매혹이 된다. 스스로 의지를 가진 제3의 인물처럼 천장을 살피고, 회랑과 홀을 지나, 사람들 사이를 미끄러져 다니며 서사와 무관한 듯 무관하지 않은 듯 움직이는 알랭 레네의 트래킹 숏은 탐미적이고, 영화에 긴장감을 견인한다. 그림자 없는 나무들, 그와 달리 서 있는 사람들에게 드리운 긴 그림자, 한 숏 안에서 세 각도로 보이는 하나의 인물, 원근을 무시하는 배치들은 초현실주의와 큐비즘을 오간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배열은 끊임없이 불화한다. 음악회에 없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어디에서 들려 올까? 당신이 보는 사람들의 대화 장면은 그들의 목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 내레이션과 대화들을 배신하는 후반부 여자의 침실 이미지는 난감함과 별개로 아름답다.

 

  직선으로 된 프랑스식 정원, 길을 잃을 수 없는 곳에서 영원히 길을 잃은 사람들.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두 눈을 뜬 채 꿈을 꾸게 하는 영화, 스크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극장 바깥까지 따라 나오는 영화, 그렇게 해서 관객의 숫자만큼 다르게 읽힐 영화. 그 영화의 이름은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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