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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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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1세기 일본 영화의 재조명 <우리 집>2018-11-29
21세기 일본 영화의 재조명 리뷰

 

      기요하라 유이 <우리 집>     

동시다발의 세계

 

심미성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중학생 세리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사라진 아버지의 실종 이유를 그들이 모르듯 관객들에게도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 사이 엄마에겐 새 남자친구도 생겼지만 아빠의 자리를 쉽게 내 줄 생각이 없는 세리는 내심 남자를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세리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 속에서 불현듯 다른 존재의 인기척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리의 집에서만 느낄 수 있다. 오로지 느낌으로 감지할 뿐 그 존재를 다른 언어로 표현할 도리가 없는 그녀는 그것을 유령이라 말한다.

유령의 집 외에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준다. 세리의 집과 동일한 공간(그러나 가구와 가재도구들은 달라져 있다)에 살고 있는 토코라는 여자. 이 이야기에서 공간은 더 이상 세리의 집이 아닌 토코의 집이다. 토코는 페리의 객실에서 눈을 뜨자 모든 것이 낯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 낯선 여인을 혼자 사는 집으로 데려온다. 이 여인은 제 이름이 사나인 것만 빼고 모든 기억을 잃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던 짐가방들 가운데는 포장된 선물 꾸러미 하나가 있었는데, 여인은 그것이 누군가에게서 받은 선물인지 누구에게 주려던 선물인지를 알지 못해 일단 그대로 두기로 하고 토코의 호의에 따라 함께 지내게 된다.

 

    하나의 공간에 별개로 존재하는 두 세계는 기묘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 집은 분명히 세리의 집이기도 하면서, 또 명백히 토코의 집이기도 하다. 두 세계는 완전히 만나지 않고 이따금씩 다른 존재를 감지하는 서로 간의 인기척만이 있을 뿐이다. 토코의 집에선 사나가 이를 감지한다. 두 이야기가 하나의 타임라인 속 다른 시간 상에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두 이야기가 중첩되는 순간을 발견하는 몇 개의 장면들로 추측할 수 있다. 한번은 미닫이 방문 너머로부터 무엇인가를 감각한 세리가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뚫어 구멍 너머를 본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이 구멍은 토코의 방문에도 마찬가지로 뚫려 있다. 구멍을 발견한 사나와 토코는 둘 중 하나가 실수해 뚫린 구멍이겠거니 생각한 채로 넘긴다.

두개의 이야기는 독립된 채로 나아간다. 기요하라 유이 감독은 <우리 집>에 구현된 불가능한 서사 진행을 푸가에서 빌려온 형식으로 설명했다. 둘 이상의 멜로디를 결합해 훗날 화성의 기초가 된 음악인 바흐의 푸가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란히 짝을 이루는 형태가 된 배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집>의 서사를 푸가의 형태로부터 차용했다는 양식적 이해에서 나아가 내러티브상의 당위를 얻기 위해, 어떤 과학적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우주의 크기가 무한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지만, 그 무한성이야말로 얼마나 실로 무한한 가능성을 함의하고 있는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빅뱅 이후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고 있다면 물질을 구성하는 무한대의 경우의 수 가운데에는 동일한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는 동일한 행성이, 그 중에는 동일한 국가가, 동일한 언어가, 동일한 집이 지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평행우주, 다중우주 이론이다. 그러나 복잡한 우주 개념까지 끌어와 말하는 <우리 집>의 이야기가 과학에 대하여 논하려는 데 소기의 목적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진실의 조각만 붙들고 사는지도 모를 우리들의 미지로 가득한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는 두개의 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해 보여줄 뿐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두 세계를 보면 조금 더 명료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평행우주의 개념을 덧대어봐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점은 세리의 세계보다 토코의 세계에서 훨씬 많이 발견된다. 가끔 삐걱거리는 소리와 희미한 환청이 들려오는 세리의 집은 그런대로 현실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세계다. 하지만 토코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문스럽다. 우선 일순간 스스로의 정체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 이른 사나가 그렇다. 그런 사나를 발견한 토코는 어떤가. 토코야말로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얼이 빠진 사나의 얼굴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도움의 손길을 뻗은 토코의 행위는 마치 그녀의 불행을 미리 예견한 사람처럼 자유로웠다. 그 뿐 인가. 매일같이 출근 비슷한 것을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사나에게 알려줄 용의가 없을 뿐 더러 평소와 다른 식사를 준비하는 사나의 성의를 굳은 표정으로 거부하기도 했고, 사나가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마시려는 것조차 금지된 행위 취급하며 병에 담긴 물을 건넸다. 단 한 차례 집밖에서 토코가 외부인을 만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폐건물에서 비밀스럽게 만난 낯선 남자와는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눈다. 거기엔 오염된 물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그녀가 매일 헤진 부위를 기워 내던 어린 아이의 옷에 대한 말도 있었다. 어떤 비밀 조직원처럼 보이는 토코의 행동은 기어이 설명되지 않고 극의 후반부, ‘옳은 일(right thing)’을 한다는 뭉뚱그린 단어로만 토코의 입으로 전해진다.

어쩌면 토코는 우주의 비밀을 알아챈 사람일 수도 있고, 우주까지 가지 않더라도 남모를 진실(혹은 조각난 진실)을 품고 무엇인가에 항거하는 조직에 가담한 사람일 수도 있다. 상상과 추측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분명한 건 없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인물인 사나가 그러하듯 토코의 세상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사나는 유일한 지인인 토코가 없는 집밖에서 어떤 남자를 알게 된다. 일자리를 구하러 처음 들른 카페에서 사나를 주시하던 한 남자가 말을 걸어오는데 첫마디가 당황스럽다. “그동안 내내 지켜봤어요. 당신을 마주치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사나가 모르는 표정을 짓자 남자는 이내 다른 사람과 혼동했다며 수습한다. 자신을 나츠키라고 소개한 이 남자는 칠흙같이 어두워 보이는 우주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무수한 빛이 있다는 알 수 없는 이야기도 늘어 놓는다.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사나는 친절한 나츠키를 그 후로도 알고 지낸다. 정확히는 나츠키가 다소 소름끼치는 태도로 사나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사나가 기억을 잃기 전에 정말로 알았던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나츠키의 반응이 우리가 가정하는 정상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정말 이 두사람은 평행우주의 다른 지점, 아니 같은 지점에서 다르게 만난 적이 있기라도 한 걸까. 평행선을 그리며 진척되어 가는 동안 두개의 이야기는 결정적인 중첩의 순간을 다시 겪는다. 잘 알지 못하는 남자 나츠키가 사나의 집에 허락없이 방문하고(스스로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엉뚱하게도 사나는 남자의 무례보다도 경계심을 잔뜩 드러낸 토코에게 언성을 높인다. 이 와중에 나츠키는 사뭇 예의 바른 언행과는 어울리지 않게 집 안쪽으로 자꾸만 발길을 이끈다. 급기야 방이 있는 위층을 향해 그가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낸 순간, 집 전체가 정전된다. 이 시퀀스에 이르렀을 때, 토코의 집과 세리의 집이 교차로 편집되어 보여 진다. 집으로 귀가한 세리의 집도 토코의 집처럼 정전 상태다. 세리는 실종된 아빠가 돌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가지고 위층으로 향한다. 토코의 집에선 두 여자가 사라진 나츠키를 찾아 위층으로 향한다. 만날 수 없던 두 세계는 정전으로 물리적인 시야가 차단된 지점에 이르러서야 칠흙 속에서 서로 다른 세계를 더듬는다. 두려움과 함께 차오르는 긴박감은 기어이 세리가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꽃병을 집어 던지자 절정에 다다른다. 나츠키의 몸에 날아온 꽃병이 쨍그랑 소리를 내고 바닥에 해체된다. 물론 세리의 꽃병도 산산조각이 났다. 두 세계를 가로막던 미지의 장벽이 찰나의 순간에 해체됐다가 다시 봉합된다.

 

    놀라운 영화적 상상이 시청각을 자유자재로 교란하며 마법같은 순간을 빚어냈다. 이어지는 장면은 세리의 집. 얼마 전 열 네번째 생일을 맞았던 세리가 집 한쪽 구석에서 발견한 선물 꾸러미를 풀어 보는 쇼트로 <우리 집>은 막을 내린다. 주인을 몰라서, 혹은 어떤 직감때문에 열어 보기를 미뤘던 사나의 선물 상자는 마치 제 주인을 찾은 듯 세리에게 도착했다. 세리는 정말 이 선물의 주인일까. 만약 그렇다면 선물의 발신인은 누군가. <우리 집>이 직조한 환상적인 공간 내에서는 모든 전제가 가능해진다. 선물의 발신인은 사나일 수도, 비밀스러운 토코일 수도, 실종된 아버지의 자리에 대입시켜도 어색함이 없는 나츠키일 수도 있다.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에서라면, 불가능한 추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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