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MOVIE
[시네마테크] 그림자와 빛의 거장, 자크 투르뇌르 특별전
Jacques Tourneur Retrospective
2021-11-26(금) ~ 2021-12-19(일)
(매주 월요일 / 12.10.~12.11 상영없음)
상영작(21편)
데이 올 컴 아웃 (1939) / 로맨스 오브 레이디엄(1937)
더 페이스 비하인드 더 마스크 (1938) / 디 인크레더블 스트레인저 (1942)
캣 피플 (1942) /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1943) / 레오파드 맨 (1943)
영광의 나날 (1944) / 위험한 실험 (1944) / 패시지 계곡 (1946)
과거로부터 (1947) / 베를린 익스프레스 (1948) / 이지 리빙 (1949)
내 왕관의 별 (1950) / 화염과 화살 (1950) / 인도 제국의 앤 (1951)
웨이 오브 어 가우초 (1952) / 그레이트 데이 인 더 모닝 (1956)
악령의 밤 (1957) / 공포의 코미디 (1963) / 해저 도시 (1965)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 요금
- 일반 7,000원 / 유료회원, 청소년(대학생 포함) 5,000원 / 우대(조조, 경로 등) 4,000원
- 주최
- (재)영화의전당
- 상영문의
- 051-780-6000(대표), 051-780-6080(영화관)
주요정보
시네도슨트 영화해설
해설: 영화평론가 김은정 & 김필남
일정: 상영시간표 참고
Programmer's Comment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소리가 들려오자 불안에 휩싸인 여성이 아무도 없는 수영장으로 뛰어듭니다.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침범하는 소리가 시시각각 가까워 오고, 수면과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모양을 달리하며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그러다 순식간에 도래한 어둠이 공간을 잠식합니다. 이 장면은 자크 투르뇌르가 공포를 어떻게 시각화하는지 보여 줍니다.
투르뇌르의 스타일은 그가 RKO의 프로듀서 발 류튼과 함께 만든 B급 호러 영화 <캣 피플>(1942),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레오파드 맨>(1943)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은근하고 서두르지 않는 방식을 통해 1930년대 유니버설의 호러(괴수물)와 다른 보기의 방식을 제안했고, 1950년대 해머의 호러가 표방한 괴물과 이방인의 드라마틱한 세계와 다른 숨결을 가진 공포를 선택했습니다.
투르뇌르는 보이는 실체보다 보이지 않는 존재 혹은 볼 수 없는 영역을 믿었고, 두려움과 매혹이 뒤섞인 분위기로 불안과 공포를 형상화합니다. 그의 호러 영화에서 공포의 실체는 눈에 포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명확하고 모호하지만 순식간에 인물을 에워싸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가깝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직접적인 형상을 드러내지 않고 불안과 공포를 암시하는 상상과 환상이라는 불가사의하지만, 매혹적인 세계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서사의 곁가지에서 감정을 유발시키는 행동이나 놀람을 과감하게 버린 대신 주어진 공간과 사물과 빛을 자유자재로 매만지고 세공함으로써 시각적 순수성을 고집합니다. 투르뇌르에게 눈으로 보는 것의 불가능함은 공포와 불안의 순수한 원형을 지키기 위한 신념이었을지 모릅니다.
투르뇌르가 창안한 공포의 형식은 서사의 사건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불안과 공포는 인물의 상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인물을 포섭하는 악의 손길처럼 보입니다. 인물이 감정을 수행하거나 사랑과 헌신이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실패할 때의 결과로 제시되지 않기 때문에 인물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거나 우리를 놀래기 위해 숏의 속도와 리듬을 전환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미 영화에 깊숙이 포진된 불안과 공포가 별안간 힘을 발휘하는 순간 문득 깨닫게 되는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공포의 실체를 시각화하려는 영화사의 다양한 시도와 달리 투르뇌르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볼 수 없는 상태로 놓아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스러운 존재를 직접 대면하거나 충격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에서 멀찍이 떨어져 지속되는 불안과 가중되는 공포로 인해 동요하는 인물이 공간과 사물, 다른 인물과 맺는 관계를 세밀하게 관찰합니다.
투르뇌르는 호러 영화의 장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미스터리, 판타지, 형사물, 모험극,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었고, 장르의 관습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관철시켜 장르의 틀을 갱신했습니다. 인물과 공간과의 관계나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무드를 형성할 때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순간이 나타납니다. 그의 프랑스적 기질과 할리우드적 제작 관습이 충돌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투르뇌르는 빛과 어둠의 날카로운 절단면을 강조하거나 일정한 모양과 부피로 확정짓지 않고, 액체나 기체적인 성질에 매진함으로써 유려하고 유동적인 불안과 공포를 드러냅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황금기에 활동한 감독 중에서 투르뇌르처럼 빛과 어둠이라는 두 영역이 서로에게 스며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확산되다 최후에 남게 되는 어둠의 빈 곳을 바라본 감독은 드문 것 같습니다.
투르뇌르의 아름다우면서도 불길한 징후를 사랑하는 감독들이 있습니다. 페드로 코스타는 자크 투르뇌르가 “악으로 가득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호러, 탐정물, 서부극과 같은 장르를 필요로 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가 창조한 아름다운 것들, 영원에 관한 것들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코스타는 투르뇌르의 영화 두 편을 자신의 방식으로 리메이크했습니다. <용암의 집>(1994)과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의 기이하고 매혹적인 풍경과 낯선 풍습, 떠나온 자와 돌아갈 수 없는 자들의 배회가 떠오릅니다. <타라팔>(2007)과 <악령의 밤>(1957)은 유령과 귀신이 현실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공포와 불안으로 귀환하거나 인간의 영혼과 몸을 침탈하는지 보여 줍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그저 배경에 머물러 있는 대기마저 영화가 된다.”고 감탄했고, 투르뇌르에 대한 책 『황혼의 영화(The Cinema of Nightfall)』를 집필한 크리스 후지와라는 인물과 사물의 관계에 기반을 둔 빛과 그림자의 사용, 구도를 통한 무드, 장치와 조명의 디테일,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스타일 등을 통해 불확정성과 모호함을 강조한다고 언급했습니다.
투르뇌르가 환상과 현실, 전설과 신화, 죽음과 부패, 이방인과 괴물, 사랑과 고통, 성장과 실패, 믿음과 불신, 죽음과 생명, 상상과 이성을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빛과 그림자의 탁월한 설계는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형태의 영화 체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밤의 영역에 속해 있지만 모든 빛을 흡수한 것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서서히 다가오는 그림자의 일렁임만으로 우리는 전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번 투르뇌르 특별전에서는 그간 접하기 힘들었던 단편 영화와 서부극, 심리 미스터리, 누아르, 코미디와 같은 장르 영화 21편을 상영합니다. 프랑스적 미감과 미국적 효율성을 겸비한 위대한 장인이자 장르의 혁신가 자크 투르뇌르의 황혼 녘에 관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박 인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