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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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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왕 퀘이커의 딸 오시가 광분하는데, 이유인즉, 백작과 결혼한 구두약왕의 딸 때문이었다. 퀘이커는 딸에게 왕자를 사주겠노라 약속한다. 오시가 신부수업에 열중하는 동안, 중매쟁이는 빚이 많은 누키 왕자를 배필로 점찍는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은 누키는 보좌역이자 친구인 요제프를 먼저 보내 상황을 살피기로 한다. 요제프를 누키 왕자로 착각한 오시는 번갯불에 콩을 볶듯 결혼식을 올려 버린다. 재치 넘치는 영화적 기법과 풍자적 유머가 어우러진 루비치 코미디의 걸작.
ⓒ Friedrich-Wilhelm-Murnau-Stiftung (Germany)
* <굴공주>는 무성영화이지만, 관람 편의를 위해 음악이 함께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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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
독일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에른스트 루비치는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아버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선택한다. 1911년, 독일의 유명 연극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극단에 들어가 코미디 연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 루비치는 연기보다는 연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주로 현실도피적인 코미디와 대규모 시대극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혁신적인 촬영법으로 찬사를 받은 <마담 뒤바리>(1919)와 루비치에게 확고한 명성을 안겨 준 <인형>(1919), <굴 공주>(1919) 등이 있다. 해외에서의 평판이 점점 커져갈 즈음인 1922년, 루비치는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20년대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루비치는 마침 할리우드에 당도한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뮤지컬 장르를 통해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러브 퍼레이드>(1929), <몬테카를로>(1930) <미소짓는 중위>(1930) 등 일련의 성공적인 뮤지컬 영화를 통해 파라마운트사의 대표감독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사운드의 신비로움이 대중들에게 힘을 잃어갈 즈음 루비치는 로맨틱 코미디로 눈을 돌렸고 이윽고 이것은 ‘루비치 터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의 대명사가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메리 위도우>(1934),<모퉁이 가게>(1940),<사느냐 죽느냐>(1942) 등으로 루비치 특유의 세련된 연출과 묘한 성적인 긴장을 엿볼 수 있다.포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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