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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회고전 <토킹픽처>2017-11-16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회고전 <토킹픽처> 스틸컷 이미지

 

 

진정한 시.청각적 매체 <토킹 픽처>

김병철 동의대학교 교수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세계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작품을 활발하게 연출한(가장 왕성하게 작품을 창작하던 시기는 1990년대 이후이기는 하지만) 거장답게 그의 작품세계는 유연한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제나 형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작품만으로 그를 이해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작은 부분으로 전체를 추측하는 맹인모상盲人模象의 오류를 범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베이라 감독의 2003년도 작품 <토킹 픽처 Um Filme Falado>는 많은 비평가들과 연구자들이 올리베이라 감독의 대표적인 특징들이라고 부른 요소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토킹 픽처>는 유람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한 모녀의 여정을 따라 진행된다. 젊은 역사교수인 호사 마리아는 어린 딸 마리아 조아나와 함께 봄베이에 있는 남편을 만나러 간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바로 목적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유람선을 타고 리스본을 출발하여 프랑스의 마르세이유, 이태리의 폼페이, 그리스 아테네, 터키 이스탄불, 이집트 수에즈, 예멘의 아덴을 경유한다. 그들은 이 곳에서 유적지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호사 마리아는 조아나에게 문명과 역사 그리고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이들은 배 위에서 선장과 선장의 손님들(각각 프랑스, 이태리, 그리스 출신의 여성들)과 어울리며 언어와 사랑 그리고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모녀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모녀가 유적지를 방문하여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전반부와 선장 및 선장의 손님들과 주로 대화를 나누는 후반부로. 모녀는 봄베이에 있는 남편/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고 영화 속에서 몇 번이나 밝히지만, 실제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행동한다. 남편/아버지로 향하는 여행이 아니라 남편/아버지가 부재한 여행처럼. 목표를 상실한 채 부유하는 듯한 이 내러티브 구조는 앞서 이야기한 올리베이라 감독의 몇 가지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대화, , 언어가 갖는 중요성이다. 호사 마리아와 조아나는 경유하는 유적지에서 언제나 그 역사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서 긴 대화를 나눈다. 영화는 그 자체로서 스펙터클이 될 수도 있는 유적지를 아름답게 혹은 장엄하게 보여주는데 치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배경으로 나누는 대화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영석은 올리베이라 감독의 이러한 방식을 일컬어 토킹 픽처라고 칭한다.※ 이는 이 작품에서 따온 것으로서 시각 이미지를 최소한의 느린 움직임이나 부동성으로 고정시키고 그 위에 음향 이미지인 말의 역량을 풀어놓아 이 둘을 동등하게 작동하게끔하는 이미지의 구성 방식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발화행위에 자율성을 부여하여 사운드가 이미지에 종속된 것이 아니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영화를 진정한 의미의 시청각적인 존재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돌, 연쇄, 해체. 특히 <토킹 픽처>의 경우 보이는 이미지가 역사의 퇴적물인 유적이기 때문에 이 결합은 역사에 대한 상대적인 재평가와 의미부여라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박영석,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문학과 역사의 구성방식 : 말과 이미지의 상호작용과 불순성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60-61

 

모녀는 리스본을 출발하며 바스코 다 가마에 대해 언급한다. 이들의 여정이 마치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와 유사한 것처럼. 하지만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항해했고, 실제로 도착했던 것에 비해(, 명확한 목적성) 모녀의 목표인 남편/아버지에게 가는 것은 명목상의 목표에 가깝다. 차라리 그들의 여정과 행동을 살펴볼 때 그들은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서구문명의 근원 혹은 현재 서구 문명이 직시하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들이 방문한 장소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인 마르세이유, 서양 문명의 근원이지만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관광지인 그리스 아테네,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다 지금은 이슬람 문화권이 되어버린 이스탄불, 바스코 다 가마의 여정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이집트의 수에즈, 고중세의 주요 통상항이었던 아덴. 이 장소들은 문명의 흥망이 이뤄진 곳이며, 서양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충돌/교체가 이루어진 곳이다. 모녀의 대화는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어 전쟁, 문명의 충돌로 이어지며 결국 현재 유럽이 누리고 있는 이 문명이 어떤 위기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이야기(특히 이슬람과의 종교적, 문화적 갈등)로 나아간다.

 

문명의 근원과 충돌, 갈등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유람선의 선장(폴란드계 미국인)은 영어를 사용하고 3명의 손님인 프랑스인, 이태리인, 그리스인은 각각 자신의 모국어로 이야기를 한다. 4개 국어가 서로 교차되지만 모두들 서로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이때 테이블에 초대된 호사 마리아가 포르투갈 어를 말하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문화권의 권력(현재적 힘뿐만이 아니라 근원이라는 위치를 부여받은 이태리와 그리스의 경우처럼)에 따른 언어의 위계. 올리베이라가 그려내는 언어와 풍경은 문명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인 동시에 현재의 위기와 문제를 공시적으로 포착해내는 위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영화 <토킹 픽처>는 사운드(언어)와 이미지(유적)를 병치시키고 충돌시킴으로서 당대의 문명에 대한 거대한 지형도를 그려낸다. 이 지형도는 목적을 잃고 방황하면서도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모색하는(호사의 딸 마리아 조아나라는 캐릭터는 아이이며 여성이라는 점에서 위기와 희망을 동시적으로 표현하는 알레고리적 특징을 보여준다) 올리베이라적인 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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