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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미국 작가들 <미드나잇 스페셜>2020-09-25

 

 

<미드나잇 스페셜>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던가

 

이상경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미드나잇 스페셜>(2016)은 명백히 SF 영화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가 나오고 알고 봤더니 그 아이는 우리가 아는 세계보다 고차원적인 우주에 속한 존재로, 결국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영화가 SF 장르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명백히 SF 영화일지언정 전형적인 SF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SF 영화 그중에서 최근의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진 SF 영화들은 사실, 가설, 미신, 전망 등의 다양한 뿌리로부터 발원된 정보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들이 이런 정보들과 얼마나 호응하는가를 자신들의 중요한 승부처로 삼았다. 그 결과 어떤 영화들은 극영화의 구조에 어울리지 않는 내레이션이나 과학 다큐멘터리에나 등장할 법한 자료화면과 인물들의 부자연스런 대사가 발화되지만 장르의 특수성이란 미명하에 관객의 관용을 요청하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영화의 이성과 연결된 탯줄을 끊고 우주의 미아로 유영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끊임없이 과학(또는 그렇다고 주장하는) 이론들을 상기시키며 영화를 채워 나갔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과학적 정보 대신 가족이라는 코드가 도사리고 있다. 말하자면 SF의 외피를 가진 가족 드라마. 그러나 SF 영화가 가족 코드를 내부에 심고 있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으므로 그것이 이 영화를 다른 SF 영화와 구분 짓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따라서 이 영화가 자신을 다른 형제들과 차별화시키는 주된 전략은 가족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하는가, 그 질문을 어떻게 하는가와 연관될 것이다.

 

   SF는 장르적 특성상 현재의 시공간을 삭제함으로써 무한의 자유를 취득하거나 오히려 이를 자신에 기입함으로써 부족한 개연성의 틈을 메우려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도 후자의 전술을 채택한 듯 영화 가장 초반에 텍사스 주 포트워스의 닛산 자동차, 보험사 광고가 암전 속에서 소리로 등장하며 영화적 공간의 시원으로 자리매김 된다. 미국 남부의 텍사스 주와 인접한 루이지애나 주는 영화의 주요 무대이면서 영화의 서사와 스타일적 전개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남부 특유의 느린 호흡, 복음주의적 문화, 가족주의 등의 지역적 특성은 특정 지역의 선택이 영화의 개연성에 알리바이를 부여하려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았음을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지역의 선택은 제프 니콜스 감독이 텍사스 주에 인접한 또 하나의 주 아칸소 출신이며 현재 텍사스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과도 연관될 것이다. 이 지역의 도로, 주유소, 마트, , , 건물, 주택 등은 그곳에 국한된 기후로 작동하고 있으며 느리고 적은 스토리텔링이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보험사 광고에 이은 뉴스는 앨튼(제이든 마텔)이라는 8살 남자 아이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인데, 사실은 그의 생부인 로이(마이클 섀넌)와 로이의 친구 루카스(조엘 에저튼)에 의해서 앨튼이 양자로 있던 목장이라는 종교집단에서 앨튼이 구출되어 이 셋은 도망 중이다. 영화의 절반 이상은 이들의 도주 행각과 그들을 쫓는 집단에 대한 소개에 할애되어 있으나 설명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대사도 적다. 앨튼이 서두에서 밝힌 초능력의 아이라는 사실은 이미 짐작했을 터이다. 그는 발작을 일으킨 후 방언을 행하는데 그의 방언이 이교 집단의 경전에 기술되어 있고 이 집단을 급습한 FBI의 조사와 교도들에 대한 심문으로 아이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나 대사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대사는 기존 대사들과 공통분모를 가지며 극히 조금씩만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 나간다. 때문에 관객들은 일반 영화의 러닝 타임에 상응하는 정보를 얻는데 실패하고 이런 영화적 전략을 수용할 때 영화와 불화하지 않을 수 있다. 여기는 미국 남부다.

 

   적은 정보와 느릿한 리듬을 배경으로 돌출하듯, 장르적 자의식이라 할 만한 몇몇 신들도 등장한다. 밤중에 한 주유소에서 갑자기 섬광과 함께 하늘에서 불꽃이 떨어지고 사방이 흔들리며 뭔가가 추락하는 난리가 벌어진다. 별다른 예고나 설명 없이 이뤄진 이 사건은 현실적 로드무비에 갑자기 난입한 이물질처럼 충격을 준다. 한참 뒤에 이어지는 앨튼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을 추적하는 인공위성을 떨어뜨린 거였는데 이는 서사적 정보량, 이미지, 소리의 커다란 낙차를 활용한 이 영화만의 독특한 문법이다. 이 장면의 예고편처럼 등장하는, 도주하는 이들의 조력자로 보이는 사람의 집 안에서 앨튼이 눈에서 섬광을 내 뿜으며 그 조력자와의 사이에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듯하다가 급히 달려온 로이에 의해 제지당하는 실내 신도 있다. 그 조력자가 왜 그랬는지는 불분명하나 그 조력자는 목장에 향수를 가지고 있고 아이의 어떤 능력을 훔치거나 단순히 다시 눈앞에서 재현되기를 바랐던 것 같으나 로이는 그것을 용인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앨튼을 향한 로이의 눈길은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 또는 그 이상이다. 앨튼이 어떻게 목장에 속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영화적 설명은 없지만 로이는 한 때 자신의 실수나 운명의 장난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앨튼을 위해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직 경찰이었던 루카스는, 초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으로 인하여 자주 아프고 고통 받는 앨튼을 향해 연민을 보내고, 그를 병원에 데려가자고 하나 로이는 그것을 거부한다. 로이는 앨튼을 위해서라며 루카스로 하여금 현직 경찰에게 총격을 가하게도 한다. 티격태격하면서 협력하는 로드무비의 동반자 공식은 이 영화에서도 일정 부분 관철되고 있다.

 

   영화 중후반에 앨튼의 생모이자 로이의 전처인 사라(커스틴 던스트)가 등장한다. 그녀는 아픈 듯 보이는 앨튼을 인간적 연민으로 바라보는 루카스와, 앨튼에게 맡겨진 숙명을 수행하도록 도우는 로이와의 중간 쯤 위치한 존재로 비춰진다. 오랜만에 만난 부부로서 사라는 만약 앨튼이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는지 로이에게 물어본다. 로이의 대답을 듣기 전에 앨튼이 나타나 로이의 대답을 들을 기회는 놓친다. 그러나 그들은, 앨튼이 자기가 속한 곳으로 돌아가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며 이에 대한 대답을 대신한다. 성가족의 부모들처럼 보이는 이들의 헌신으로, 복음주의와 신앙적 열정으로 가득 찬 그 땅의 여정의 끝에서 이들은 자녀와의 영원한 이별을 선택한다.

 

   자신의 8개월 된 아이를 바라보며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감독에 대한 얘기를 알고 나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 아이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백일몽과 운명적으로 아이를 잃고야 말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악몽의 교차는 부모의 믿음과 헌신을 유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부모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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