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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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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와 나르시시스트의 대결 - 메이 디셈버2024-04-15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이미지


나르시시스트와 나르시시스트의 대결 - ​메이 디셈버

박예지 2022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배우인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는 연기를 위해  ​20년 전, 남자 중학생과 관계를 맺은 30대 유부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아이를 옥중 출산해서 타블로이드 신문의 첫 면을 나날이 장식했던 그레이시(줄리안 무어)를 찾는다. 그레이시는 자신과 조(찰스 멜튼)의 화목한 결혼 생활을 보여줘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이들을 찾아온 것은 그 무고한 듯한 일상 이면에 있는 진실을 찾기 위해서이다. 엘리자베스의 관찰과 간섭으로 완벽해 보이기만 했던 이들의 일상은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이미지2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커플을 뜻하는 제목의 영화 <메이 디셈버>는 12살 사모아계 소년과의 성관계로 투옥되었던 30대 여성 메리 케이 르투어노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실화에서 선생과 제자 사이였던 설정을 아들의 친구로 바꾸었다. 감독은 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설정을 바꾸고 둘의 관계에 배우라는 존재를 끼워 넣었을까?  미성년자와 관계해 임신을 하고 결혼까지 한 30대 여성의 이야기에 배우라는 존재를 끼워 넣었을까? 엘리자베스는 이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그레이시는 이제 60대이지만 금발에 꽃무늬 쉬폰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여자다. 사건 이후 조와 20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세 명의 아이를 낳고 단란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녀는 환상 속에서 사는 여자다. 그녀에겐 자신의 삶에 대한 단단한 환상의 각본이 있고 그녀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맡긴 배역을 연기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씩 인분이 들어있는 택배가 오고 그레이시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운영에 위기가 오는 등 이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레이시는 그런 것 쯤은 못 본 척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며 자신의 삶을 유지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공격당할수록 자신의 환상 세계를 지키려는 그레이시의 방어기제는 더욱 더 강해졌을 것이다.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이미지3


 엘리자베스는 그런 완벽해 보이는 그레이시의 삶에서 어둠을 캐려고 한다. 그레이시를 훌륭히 연기하기 위해, 엘리자베스에게는 서사가 필요하다. 왜 그레이시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지 그 동기와 역사를 알고자 한다. 그래서 그레이시의 아들이 영화의 음악 감독 자리를 노리고 엘리자베스에게 그레이시가 어렸을 때 오빠들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정보를 흘릴 때, 엘리자베스는 마치 바로 그런 걸 기대했다는 듯이 그 정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후반에서 그레이시의 말로 그 사실은 모호해진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레이시는 그런 과거가 필요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어떤 일을 겪어도 자신이 만든 환상의 각본 안에서 완벽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거가 필요 없는 건 엘리자베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레이시 역할을 제대로 연기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레이시의 삶에 침입하여 그녀에 대해 낱낱이 알려고 하고, 심지어 조를 유혹해 잠자리를 하기도 하는 그녀. 광기어려 보이지만 그녀가 배역을 위해 왜 그런 짓까지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자기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장기의 말처럼 이용하고 그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는 사람.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이미지4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시는 모두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속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완벽한 시나리오를 위해서 다른 삶을 꿈꾸지 못하고 거기에 맞는 역할을 연기하며 살던 조는 엘리자베스의 침입에 의해 흔들리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유혹은 그의 해방을 위한 게 아닌 자신의 목적에 맞는 이용이었지만, 그레이시가 만든 서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욕망의 서사에 편입되는 경험을 한 조는 변하기 시작한다. 

 조는 처음 그레이시를 만났을 때 그레이시의 나이가 된 성인이지만, 아직도 어린 아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권해준 연초를 피다가 기침을 하며 이런 걸 처음 해봤다고 하는 조의 모습은 아들보다 더 어린 미성년처럼 보인다. 새장 안에서 애벌레를 키우며 고치를 나비로 부화시키는 조의 취미는 성숙해져 그레이시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조의 마음을 노골적인 상징으로 드러낸다.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이미지5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를 잘 연기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것이다. 그들은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결이 같은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그레이시가 조에게 쓴 편지를 발견하고 그걸 연기했던 인상적인 독백 이후 엘리자베스가 촬영장에서 연기하는 그레이시의 모습은 어쩐지 좀 얄팍해 보인다. 그레이시는 자기 욕망만을 우선시하며 현실을 기만하는 얄팍한 사람이고, 그런 그레이시를 있는 그대로 따라하는 연기는 얄팍할 수밖에 없다. 모니터 속에서 이뤄지는 엘리자베스의 그레이시 연기는 성찰 없이 또 한 번 반복되는 비극처럼 느껴질 뿐이다. 과연 이 영화 속 영화는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영화 속 감독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지만, <메이 디셈버>라는 결과물을 봤을 때 영화 속 영화 또한 이 사건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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