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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것2022-06-30
탑건 매버릭 영화 스틸

 

 

<탑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것

 

강선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탑건>1986년 개봉했던 토니 스콧의 영화이다. 1986년이라는 개봉 시기가 알려주듯이 미국의 가장 큰 적이 소련이었던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소련과 직접적으로 전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련의 지원을 받는 인도양의 가상 국가와의 교전을 그린다. 재능 있는 파일럿이면서, 그에게 그 재능을 물려준 아버지의 죽음의 진상을 알지 못하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피트 미첼(톰 크루즈)의 사랑과 모험, 성장을 그린 <탑건>은 그러한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젊음과 영웅다움, 또 미국인다움 등을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어놓는다.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친구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선의의 경쟁을 하고 대의를 위해 함께 싸우는 일명 매버릭을 통해, 톰 크루즈라는 배우 그 자신은 미국 청년의 이상적인 초상이 되고,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젊은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때로는 가장 믿었던 동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같이 깊은 절망에 빠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탑건>은 빛나는 젊음 그 자체를 톰 크루즈에게 투영한다.

 

탑컨 매버릭 이미지

 

  그로부터 36년 후 <탑건: 매버릭>이 개봉했다. 여전히 매버릭은 크게 승진하지도 않고 여전히 도전적으로 비행하며 지나가버린 과거의 영웅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과거 <탑건>의 초반부에서 아슬아슬한 공중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처럼, 음속 유인기 실험에 참여하면서 마하10 도달을 극적으로 성공시킨다. 그렇지만 여전히 무모하게 또는 용기 있게 마하10보다 더 나아가려다 음속기를 분해해 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는 늘 그렇듯이 의기양양하다. 늘 안주하지 않는 자신의 선택은 설령 실패하더라도 실패라고만 할 수는 없다. 마하10에 도달했기 때문에 실패라고 할 수도 없는 것처럼, 그의 선택은 늘 진보이고 발전이다. 오직 그는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이 일로 인하여 매버릭은 자신이 배웠던 바로 그 자리에 교관이 되어 돌아가게 된다. 그는 교관이 되어 우라늄 농축시설을 파괴할 수 있도록 파일럿들을 훈련한다. 냉전 시대가 끝난 지금, 이제 배경은 테러지원국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가상의 국가를 내세운다. 가상의 테러지원국에서 UN에서 반대하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하려고 하므로, 이를 파괴하기 위해 정예 요원이 필요하다는 설정이다. 매버릭이 훈련해야 하는 파일럿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그가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구스(앤서니 에드워즈)의 아들도 속해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 구스의 아들, 루스터(마일스 텔러)와의 생사를 넘나드는 교전 속에서의 동지애를 가지게 된다. 더 이상 젊지 않지만, 매버릭은 여전히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대의를 위해 싸우면서,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나아가는 아름다운 인간의 표상으로 남는다.

 

탑건 매버릭 이미지

 

  영화가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름다운 환상이다. <탑건>이 개봉했던 1986년보다 현재는 더 많은 매체가 더 직접적이고 그럴듯한 이미지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런 완벽한 환상은 오직 영화만이 줄 수 있기도 했다. <탑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과거의 영화들은 관객들이 잠시 팍팍한 현실을 잊고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아름답고 즐거운,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환상들을 찍어내었다. 거기에는 아군과 적군 사이의 모호함도, 선과 악의 모호함도,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도, 늘 배신당하기만 하는 우정도 없다. 모든 것은 선명하고 주인공은 아름다우며 우리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 된다. 톰 크루즈는 그렇게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탑건: 매버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전히 그는 건재하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으로 충분할까? 영화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성을 불러일으키는 환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 톰 크루즈가 그런 것처럼 영화라는 매체도 그렇게 건재하다는 것, 그것이면 될까?

  <탑건: 매버릭>에서는 단지 파일럿에 대한 이야기에서 멈추는 것 같지 않은, 갑작스럽게 돌출되는 대사가 등장한다. 제멋대로인 매버릭에게 해머(에드 해리스)가 하는 말이다. 그는 매버릭에게 끝이라는 건 피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결국 매버릭과 같은 파일럿들은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매버릭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매버릭의 이 말은 <탑건>36년 만에 부활하면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과거에 영화가 줄 수 있었던 모든 꿈을 되살아나게 하고자 했는데, 언젠가는 이 모든 꿈들이 유효하지 않게 될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아니라는 것으로 들리는 것이다. 영화처럼 선과 악은 더 이상 분명하지 않고, 미국만이 또는 백인의 아름다운 청년만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시대도 지났겠지만, 아직은 꿈을 꿀 수 있기에 영화는 건재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탑건 매버릭

 

  이것만으로 충분한가? 우리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오늘은 아니라는 것, 영화는 여전히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환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에 관해서 말이다. 해머가 말하는 것처럼 영화가 멸종되어버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과거의 환상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그래서 과거의 환상에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그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누구도 답을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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