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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모어> 경계 너머의 아름다움2022-06-30
모어 스틸이미지

 

 

<모어>

경계 너머의 아름다움

 

김나영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드랙 아티스트 모지민에 관한 다큐멘터리 <모어>의 가장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는 모지민이 큰 공연에 캐스팅되어 자신을 배우로서 훈련 시켜나가는 과정이다. 이에 더불어 영화에 의해 연출된 드랙 퍼포먼스, 그리고 그의 주변, 그의 가족과 과거 학창시절을 기억하는 이들과의 만남, 특히 연인 제냐와의 이야기, 이렇게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영화의 세 가지 축을 잇는 것은 모지민의 내레이션이다. 그는 자신을 털 난 물고기(毛魚)이자 MORE로 규정한다. 털 난 물고기라는 모순을 함축한 존재, 독특하고 괴상한 존재, MORE라는 과잉의 존재, 기준을 무시해버리는 존재가 바로 모지민이다.

 

모어 스틸이미지

 

   <모어>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당연히도 모지민의 존재감 자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화려한 드랙 공연이 펼쳐지고 무대를 압도하는 그의 표정, 퍼포먼스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곧이어 무대 뒤에서 천 원짜리 팁을 받고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모어>가 흥미로운 것은 모지민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다면성을 무대 위와 무대 밖의 모습을 분리해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앞선 두 장면 이후 그가 지하철을 타는 장면은 더욱 인상적이다. 엄청나게 긴 속눈썹을 붙이고 짙은 화장을 한 채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그의 모습을 담은 장면에서 무대와 일상은 분리되지 않는다. 일상의 고단함과 무대의 화려함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이는 젠더 이분법의 경계,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통념적 기준이 한 사람 안에서 지워지는 모습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오프닝이다. 피로에 전 그의 얼굴 위 긴 속눈썹이 지하철 난방 바람에 나풀거린다. 기이하게 아름답다.

 

모어 스틸이미지

 

   <모어>는 형식적으로 모지민의 인물성과 조응한다. <모어>는 다큐멘터리와 퍼포먼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인터뷰와 관찰이 중심이 되곤 하는 일반적인형태의 다큐멘터리와 다른 구성을 보여준다.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장소는 바다부터 도심 한복판, 농촌의 트랙터 위 등 퍼포먼스의 장소로 어울리는 곳부터 이질적인 곳까지 다양하다. 모지민의 무대 밖퍼포먼스는 무대와 무대 아닌 곳의 경계를 없애고 무대의 영역을 넓힌다. 이 장면들은 사실의 기록과 연출의 혼합이라는 방식 속에서 연출된 부분으로 구별된다기보다 차라리 모지민의 신체가 지닌 역량이 장소의 성질을 바꿔 놓는 순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적인 장면처럼도 느껴진다. 이는 앞선 단락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 사람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적이고 다면적인 지점이 분리된 두 장면이 아니라 한 장면 안에서 드러난 것과 마찬가지로 연출과 기록이라는 두 형식이 하나의 장면 안에 공존하는 형태로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음악 역시 퍼포먼스만큼이나 <모어>의 특징적인 부분이다. <모어>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음악은 퍼포먼스의 배경음악이 되면서 동시에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에 알맞게 조응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랑의 명랑한 목소리와 충돌하는 노랫말이 만들어내는 그 이상한 멜랑콜리가 모지민의 입과 몸을 통과해 재표현될 때, 혐오에 고통받아야 했던 기억과 <! 대한민국>이라는 희망에 찬 음악이 공존할 때 그 충돌이 일으키는 효과는 때로는 증폭이고 때로는 아이러니한 웃음이다. 그리고 바로 충돌 그 자체가 모지민이라는 인물과 공명하는 재현 형식이다.

 

모어 스틸

 

 

   영화가 자신이 담아내는 인물을 닮기 위해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모순을 껴안고, 더 크게 충돌한 것의 결과는 아름답고 특별한 감흥을 준다. 이때의 아름다움은 통념과는 다른 아름다움이어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정상성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우리 각자는 비로소 더 많은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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