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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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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창밖은 겨울>: 과거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2022-12-05
창밖은 겨울 스틸

 

 

<창밖은 겨울>: 과거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김현진 시민평론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창밖은 겨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는 환절기를 통과하는 이야기다. 이는 이미 지나가버린 인연과 다가올 새로운 인연 사이의 시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사랑의 공백기. 연애 세포들의 슬럼프와 재생성의 이야기. 요즘 말로 환승연애.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석우(곽민규)는 고향 진해에서 버스 운전기사 일을 시작한다. 어느날 버스터미널에서 MP3 플레이어를 줍게 되고, 버스터미널에서 매표소 업무와 유실물 보관소 업무를 겸하는 영애(한선화)에게 MP3 플레이어를 넘겨준다. 시간이 지나도 MP3 플레이어의 주인은 물건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 물건은 고장이 난 상태. 석우는 MP3 플레이어를 수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전전한다. 영애가 같이 동행한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MP3 플레이어의 주인은 석우의 예전 여자친구였고, 영애는 그녀가 물건을 터미널에 놔두고 가는 걸 목격했다. 그들은 MP3 플레이어를 고치는 여정을 통해서 각자 자신들의 아픈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창밖에는 어느새 겨울이 와 있다.

 

창밖은 겨울 스틸

 

석우와 영애는 모두 과거에 미련이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석우가 독립영화를 그만두게 된 것은 같이 영화 일을 했던 전 여자친구와 관련이 있다. “이제는 아침방송 들으며 출근하는 남자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말. 이 말은 안정적인 남자를 원한다는 이야기다. 안정적인 직업과 수입이 있는 남자. 영애는 학생 때 탁구선수였으나 탁구를 지독하게 연습시키던 아버지에 질려서 탁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석우와의 교감을 통해 다시금 탁구채를 취미로나마 다시 잡게 된다. 석우 역시도 영애와의 교감을 통해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가족들과 같이 볼 수 있게 된다. 석우의 어머니가 졸혼을 선언하는 것도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면 현재를 잘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영애가 석우와 함께 복식조로 출전한 진해구민 탁구대회에서 하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여기에 집중해요.” 정리할 과거는 정리하고 현재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영화 <창밖은 겨울>은 또 한편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밀려 다 사라질 것만 같았던 옛날 것들에 대한 애착도 함께 보여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건전지를 넣어야 하는 구형 MP3 플레이어, 영화가 담긴 DVD, 버스의 동전함, 지포 라이터 같은 소품은 물론이고 작은 버스터미널, 오래된 문방구, 이용원, 인판사(인쇄소) 같은 진해의 거리 풍경은 우리에게 과거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창밖은 겨울>은 과거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담는다.

이야기의 개연성 측면에서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아쉬운 부분을 굳이 꼽자면 영애가 왜 석우의 MP3 플레이어를 수리하는 것에 순순히 동행을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냥 남의 일이구나 하며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을 굳이? 굳이 뻔한 답을 하자면 석우가 마음에 있어서, 라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그럼에도 영애가 너무 쉽게 석우의 조력자가 된다는 건 좀 아쉽다. 석우는 정말로 운이 좋은 남자가 아닌가. 물론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창밖은 겨울 스틸

 

<창밖은 겨울>은 멜로드라마나 로맨스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두 청춘남녀의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되어야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석우와 영애는 그 순간에 도달한다. 그 흔한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는 고백 하나 없이. 그 흔한 스킨십 하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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