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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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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애프터 미투>: 계속 말하기 위하여2022-10-28
애프터 미투 스틸

 

 

 

<애프터 미투>: 계속 말하기 위하여

 

김나영 시민평론단

 

  2017, 할리우드의 매우 영향력 있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오랜 기간 영화계 내 여성들에게 가해온 성폭력이 공론화된다.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고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상에 당신이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면 이 트윗에 대한 답으로 미투(me too)’라고 써달라(If you’ve been sexually harassed or assaulted write ‘me too’ as a reply to this tweet.)”라고 남긴 것에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미투 운동이 하나의 범국가적 운동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된다.

 

애프터 미투 스틸

 

 

  한국의 미투 운동은 2018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과 2차 가해 등을 폭로하면서 촉발된다. 이미 2016ㅇㅇ계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문화 예술계를 비롯해 분야를 막론하고 만연해 있던 성폭력과 여성 혐오 문화에 목소리를 내왔던 여성들의 움직임은 서지현 검사의 공론화를 통해 소셜 네트워크를 넘어 한국 사회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애프터 미투 스틸

 

  <애프터 미투>는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네 명의 감독이 미투 운동을 주제로 만든 네 편의 작품을 통해 미투 이후를 말하는 옴니버스 작품이다. <애프터 미투>라는 제목에서 기대되는 것은 미투 운동의 전개를 전반적으로 개괄하고 이후 어떤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지, 남은 과제는 어떤 것인지 살피는 형태의 다큐멘터리일 텐데, 영화는 옴니버스라는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시간 순서에 따라 잘 정리된 형태를 따르는 대신 다양한 국면에서 미투 운동을 들여다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영화의 전략 때문에 미투 운동 전반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했던 관객에게는 영화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거나 한 가지 메시지에 집중해서 전달하는 방식에 비해 산만하고 영화의 힘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투 운동이 운동의 주도 세력 없이 전국에서, 다양한 나이대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애프터 미투>의 이와 같은 형식이 미투가 전개된 양상과 유사하기에 미투에 관해 서술하기 적합한 형식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애프터 미투>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굵직한 사건들보다 미디어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서울 용화여고에서의 스쿨 미투를 다루는데, 스쿨 미투는 학교 내 성폭력을 고발한 청소년들의 움직임에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교내 성폭력의 암묵적이고 유구한 역사와 악습을 끊어내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 이에 연대하는 기성세대 여성들의 움직임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한 개인의 삶에서 성폭력이 미치는 영향과 그 경험을 발화하는 행위가 단지 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상처 입은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상처를 극복하고 삶을 회복시켜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재현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문화 예술계 내 성폭력 고발 운동의 활동가로 지난 몇 년간 다른 여성들을 도운 이들이 겪었던 현실적 고충, 예술가와 활동가 사이에서의 고민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운동으로서의 미투가 지속되기 위한 현실적 조건을 살핀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성관계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거북함, 데이트 폭력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에서도 성폭력과 성적 착취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미투를 통해 논의되기 시작한 여성 성폭력의 문제가 권력의 문제를 넘어 왜곡되고 남성 편향적인 성()문화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미투가 촉발한 논의가 확장될 영역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애프터 미투 스틸

 

  여성을 향한 만성적 폭력이 여성들에 의해 공론의 장에 등장하게 된 한편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민감한 주제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페미니즘이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거나 여성 우월주의를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백래시가 진지한 주장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광경 앞에서 미투 이후 여성들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애프터 미투>는 미투 이후에도 계속되는 여성들의 말하기를 보여줌으로써 이 질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1) 최초의 미투 캠페인은 2006년 인권 운동가 타라나 버크에 의해 제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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