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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 겐지 60주기 특별전' <치카마츠 이야기>: 김성욱 영화평론가 2016-05-21(토)  - 시네마테크

치카마츠 이야기


5/21 <치카마츠 이야기> 


* 강  연 : 김성욱 영화평론가

* 장  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사실 미조구치 겐지 감독을 어떤 감독들과 비교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이 있는데, 일본 내에서 초기에는 일본의 존 포드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체로 20년대나 30년대 초반에는 사극이나 활극에 가까운 영화를 많이 찍었기 때문에 일본의 존 포드로 제작자들이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존 포드와 연결되는 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서구에서는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영화를 볼 때, ‘일본의 장 르누아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장 르누아르라 해도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작가적인 위치랄까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동시대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얘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워낙 이야기된 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가적 위치에 대한 얘기는 뺐고요. 제가 처음에 제안을 받으면서 어떤 영화를 틀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을까 고심을 했었어요. 그동안 못 봤던 영화들 중에서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제가 처음에 미조구치 감독의 영화를 보고 굉장히 큰 놀라움을 얻었던 작품이 이 <치카마츠 이야기>라는 작품입니다. 90년대에 비디오로 미조구치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봤던 건 <우게츠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 뭐 이런 이야기가 다 있나, 우리나라로 이야기하면 텔레비전에서 하는 괴담 시리즈 전설의 고향같은 소재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고요. <우게츠 이야기>를 보고 나서 <치카마츠 이야기>라는 영화를 보게 됐는데, 정말 굉장한 영화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치카마츠 이야기>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작가 혹은 영화감독이라는 사람이 영화라는 것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대한 궁금증이랄까,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던 작품 중에 하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중에 <치카마츠 이야기>에 대한 몇 편의 글들을 따로 읽게 됐지만,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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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마츠 이야기 01


사실 이 영화는 무슨 이야기인가 했을 때, 첫 번째 순간으로 보자면 통상적으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과 열정에 사로잡힌 연인들의 수난의 이야기(수난극)로 많이 이야기되고요. 근데 또 한편으로 보면, 이 영화의 첫 번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거의 구도도 비슷하고, 대신 내부와 외부에 변화들이 있습니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게 되면 달력을 전매했던 표구사 또한 오랫동안의 권세를 마감하고 폐허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두 남녀의 죽음, 형장으로 끌려가는 하나의 이야기와 또 다른 하나는 배경적 세계, 그들이 머물고 있었던 이 집도 마찬가지로 일종의 폐허가 되어서 두 개의 이야기가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별개의 이야기라 말할 수도 있고, 또 한 편으로 보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두 남녀의 연애 결과가 결과적으로는 집안을 망쳐버렸다고 이야기해야 될까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화의 서두에 두 명의 남녀가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그 남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죠. ‘저 집안은 이제 쑥대밭이 됐겠구나.’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자신은 몰랐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두 남녀의 연애라는 사건과 또 동시에 이런 식의 집이 혹은 그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공간 자체가 완전히 폐허가 된다는 이 두 가지가 이 영화에서는 맞물려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연애적인 사건에 휘말려 있던 두 남녀의 경우는 집이 망하는 것에는 하등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거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하등의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망해버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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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마츠 이야기 02


이 영화의 라스트 부분, 초반부의 장면은 일반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크레인 숏을 쓰고 있어요. 이 영화에서는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에서 자주 반복적으로 표현됐던 크레인 숏이나 롱테이크가 길게 반복되어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영화들을 보게 되면 혹은 중기 혹은 사극 영화를 보게 되면 그런 스타일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의 크레인 숏으로 그 시대 상황으로 얘기하자면 불륜을 저지른 두 남녀가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장면이 보이고 있는데, 또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지켜봤던 사람들은 나중에 그 영화의, 또 한 편으로 이 사건의 주인공들이 되죠. 그 사건에 관련되어진 사람들이 됩니다. 영화의 초반부 장면과 후반부 장면은 거의 비슷한 구도를 이루고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단적으로 구경꾼이었던 사람들이 당사자가 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지켜봤던 사람들이 실제로 행위자가 된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요. 구경꾼이라고 하는 설정, 또는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란 설정 자체가 이 영화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아주 강렬한 사랑 이야기 못지않게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안에는 뭔가를 바라본다, 지켜본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고요. 또 특별히 바라보는 사람으로서의 구경꾼이라는 존재, 또는 훔쳐보는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가 이 <치카마츠 이야기>에서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바라보고 있던 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죠. 이 둘의 얼굴 표정이 너무 밝게, 너무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말만 비춰보자면 희망차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뭔가에 대한, 엔딩에 담겨져 있는 이상한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 둘의 관계, 그러니까 남녀의 불륜이라는 사랑이야기와 집안이 망해버리는 이 두 개의 이야기의 작동,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굵은 이야기 구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이 무너져 간다는 것은 그 시대 안에서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 전체에서 보자면 그들이 저지른 결과로서의 또 다른 사건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이들은 그러한 결과에는 무관심한 상태로 있습니다. 동시에 이 영화가 진행이 될 때 오상의 남편도 마찬가지로 오상이라는 이 여자의 가출에는 별로 무관심해요. 오히려 그것은 쉬쉬하면서 찾고 싶었던 것은 모헤였죠. 모헤가 떠났다는 사실에 훨씬 더 분개하고 있거나 모헤를 잡아들이려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두 남녀가 집을 떠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서 가장 어리둥절해 하고, 가장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도피하는 두 남녀겠지만, 사실상 영화에서 그보다 더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오상의 남편과 오빠, 하나 더 붙이자면 엄마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오히려 이 주변의 사람들이 훨씬 더 혼란스러움과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설정 안에는 물론 돈과 관련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시대적 설정 안에서 보자면 돈과 지배적, 계급적 관계 이 두 가지가 영화 속에서 연결점을 갖고 있습니다. 별개라고 할 수도 있고, 어쩌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 두 가지 사건들이 왜 벌어지게 됐느냐 하는 게 이 영화 초반부의 가장 흥미로운 구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남녀는 왜 가출하게 됐는가, 혹은 두 남녀는 왜 사랑에 빠지게 됐는가 하는 것이 아주 전통적인 의미에서 두 남녀의 연애적 감정이 싹튼다는 설정이진 않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보면 굉장히 복잡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섞여져 있어요.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동생이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남편이 여자(오타마)와 장난질을 친다 또는 수작을 부린다, 그런데 이 여자는 모헤와 결혼할 계획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모헤와 이 여자 간에 뭔가 이상한 관계가 형성되죠. 그리고 모헤는 오상이 돈이 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몰래 돈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몰래 도장을 찍다가 발각되어서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고백을 하게 되는 거죠. 또 고백을 하는 상황에서 고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이 모든 일이 다 오상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고, 그때 또 여자(오타마)가 나서게 되면서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죠. 그리고 그날 저녁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게 되죠. 남편이 자꾸 나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으니 침실을 바꿔서 남편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자고 두 여자가 모종의 전략을 꾸미게 되는데, 그게 실패로 끝나면서 이 둘은 도주를 하게 되는 거죠. 물론 이 두 명이 집을 나가서 도주하게 되는 계기가 서로 다른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두 남녀가 집을 나가게 되는 과정 안에서 집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은 실제론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어요. 어떤 것은 오해에서 비롯됐고, 어떤 것은 실제로 거짓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또 어떤 전략이 잘못된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이 두 남녀가 집에서 떠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말하자면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들이 이 내부에 설정되어져 있어요. 그리고 이런 과정들 안에서 모헤와 오상이라는 여자가 서로 간에 어떤 정념을 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는 어떤 다른 영화들을 보더라도 그렇게 심리학적 설명을 많이 하는 그런 작가는 아닙니다. 이야기의 설정, 이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방금 말씀 드린 여러 개의 어떤 사건들이 서로 극적인 연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에서 발생하게 되는데요. 그건 사건과 이야기 안에 있는 것이지만, 관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야기는 여러 가지의 계기들을 갖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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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마츠 이야기 04


처음에 불륜을 저지른 두 남녀가 사형대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죠. 거기에서 두 남녀가 그것을 지켜보면서 자기들의 속내를 털어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로 남편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이 장면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있어요. 그리고 남편이 빠지고 나면 모헤를 보게 되죠. 모헤는 감기에 걸린 사람이에요. 재밌는 게, 실제로 초기에 시나리오를 썼을 때 각본가가 원래 전래적으로 내려왔던 두 개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와서 <치카마츠 이야기>로 구성했다고 하는데요. 각본가가 모헤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굉장히 고민했다고 해요. 이 사람은 어떤 종류의 인간이며 어떤 행태를 벌이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어떤 인물 설정을 만들어야 할지를 고심하다 최종 결론에 도달한 게 감기에 걸린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감기에 걸린 사람은 뭐냐면 누워 있는 사람인 거죠. 누워 있는 사람은 뭐냐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죠. 문제의 모든 발단은 그가 일어나면서 발생하게 돼요. 우리가 초반부의 장면을 보면 그 표구사에서 모헤를 깨워야 되겠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조수가 달려가서 모헤를 깨우게 되고,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하게 되죠. 감기에 걸렸던 모헤가 나오면서 오상이라는 이 여자의 오빠가 찾아왔던 것을 보게 되고, 나중에 이 여자의 엄마가 또 찾아왔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역시 돈 문제라는 것을 간파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위의 장면에서 보면 이 여자가 처음에 감기는 괜찮아졌냐고 말을 꺼내는 순간, 되돌아오는 모헤의 답변은 엄마가 찾아왔다는데 혹시 곤란한 일이 있으신지, 어떻게 도움을 드릴까 라고 하면서 이제 사건이 벌어지게 돼요. 그 설정 자체는 아까 얘기 드린 건 몇 가지의 사건들과 계기들을 얘기한 거지만, 실제로 이 사건과 계기들이 이 영화상에서 작동되어져 갔던 것들은 또 이런 방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근본적으로는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가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모헤는 감기가 걸린 사람이라는 거죠. 일하지 않는 사람, 일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던 사람. 근데 그 무엇 때문에 그가 일어나게 되고 일을 해야 되고, 그러면서 무언가를 보게 되면서부터 점차적으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처음으로 오상이라는 여자를 보게 되는 장면도 오상의 오빠가 찾아오면서부터 벌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두고 미조구치 겐지의, 특히나 <치카마츠 이야기>에서의 사건 전개가 전적으로 이 내부적인 동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바깥에서 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좀 다른 식으로 얘기 하면, 외부에서 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그 어떠한 힘들이 그들을 그런 식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버렸다고 하는 그 바깥, 외부라고 하는 것이 이 영화 안에서는 실질적으로는 사건의 가장 중심적인 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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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마츠 이야기 05


아까 초반에 말씀 드린 건 이 사건이 전개되어지는 스토리적인 맥락이고요. 실질적으로 이 영화가 작동하는 구조는 전적으로는 이 인물의 외부에서 주어지게 되는 그 무언가의 이끌림에 따라서 인물들이 뭔가를 하게 되는 거죠.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굉장히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3년 전인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여배우 카가와 쿄코가 왔었습니다. 부산은 들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서울, 광주에 같은 해는 아니지만 카가와 쿄코가 왔었는데요. 그 배우가 <치카마츠 이야기> 상영을 하고 GV를 했어요. 카가와 쿄코 배우의 말을 빌자면, 자기의 영화 인생 안에서, 연기 인생 안에서 <치카마츠 이야기>는 정말로 자기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영화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하실 것 같긴 하지만, 제가 봤을 때도 <치카마츠 이야기>는 이 분의 영화 안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미조구치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었을 때, 카가와 쿄코 씨가 이런 이야기들을 했어요. 하나는 미조구치 감독은 배우들에게 연기를 어떻게 해달라는 주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감독이라고 해요. 현장에서 감독은 연기를 한 번 해보라고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고, 굉장히 힘들었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연기를 이렇게 하라는 주문이 전혀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자기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 했는데 그때 여기에 나온 모헤 등 많은 배우들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해요. 또 다른 하나는 반사를 하도록 하세요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고 해요. 영화적으로 이야기하면 어떤 한 인물이 뭐라고 하면 거기에 대응해서 어떤 행동을 하라는 그런 말이죠. 영화에서 얘기하면 그건 액션-리액션 같은 거죠. 누군가가 액션을 하면 거기에 따라서 뭔가를 하는 것. 미조구치는 리허설을 할 때조차도 어떤 주문을 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해요. 그래서 배우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해 굉장히 어려워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미조구치는 반사를 하세요.” 혹은 당신은 반사를 하지 않았네요.”라든가, 혹은 그 연기는 그렇게 좋진 않네요.” 그런 정도만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고. 그러면 어떤 식으로 해야 되는지를 배우는 계속 생각하게 됐고, 촬영되어진 장면은 그러한 것들의 결과 안에서 나온 장면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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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 겐지의 연출이 갖고 있는 스타일, 양식들에 대해서 되게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전적으로 계획된 것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큰 의문을 품게 되는 거죠. 작가가 조금 더 전적으로 구성하고 카메라가 이렇게 움직인다는 것을 다 전제하고 한 것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큰 의문과 수수께끼, 비밀 이런 게 미조구치 겐지의 경우는 연출 스타일 안에서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오즈는 굉장히 분명하게 배우들을 어떻게 위치시키고, 화병을 어떻게 놓고, 카메라를 어떻게 낮게 놓고, 어떻게 촬영한다는 그런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던 거죠. 게다가 오즈에 비하면 미조구치는 크레인 숏이라든가, 긴 이동촬영도 많고, 롱테이크도 굉장히 많은데, 어떻게 이게 다 사전에 배우들의 연기, 움직임 같은 부분들을 다 컨트롤하지 않고 이럴 수가 있을까. 이거는 좀 납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죠. 그 점이 굉장히 특이한 방식이에요. 그냥 연기를 해보세요.”라든가 반사를 하세요.”, “당신은 반사를 하지 않았네요.” 같은 미조구치의 방식은 미조구치가 배우들 혹은 영화라는 것 안에서 궁극적으로 담아낸 그 어떤 결과물들로 이뤄지게 됐을까 하는 것이 영화를 볼 때 대단히 궁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실제로 미조구치 영화가 작동하는 것은 이런 이야기의 구성이라든가 혹은 주제와 관련된 부분들은 아닌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그 두 남녀가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줄거리 상에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 드렸는데, 거기서 이런 일, 저런 일이 벌어지고, 거짓도 있고, 책략을 했는데 그게 실패를 하게 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이 끝나 버리면서 둘이 집 밖으로 나가게 됐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 이 모든 인물들을 움직이게 만들어 버린 것은 결과적으로 얘기 하자면 그 바깥에서 이들을 끌어당긴 그 무언가, 모헤를 일어나게 만들고, 오상이 뭔가를 하도록 만든 건 오빠 때문인 거죠. 이 두 가지의 작동이 외부에서부터 이 두 인물을 끌어당기면서 전적으로 이 이야기들이 이뤄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식으로 얘기하자면 잠자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에 응대하고, 표구사의 사장이 뭐라고 하는 것에 응대하고, 그 다음에 왜 도장을 이런 식으로 찍고 있지 하는 것에 응대하는 행위로서, 모헤의 인생역전이랄까, 아주 작은 사건이지만 이 사건들이 연속으로 계속 이뤄지게 되고, 또 한 축으로는 오빠가 찾아오고, 엄마가 찾아오고, 여자가 자기에게 무슨 고백을 하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응대해 나가면서,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오상의 그 역정에, 그 여자가 겪게 되는 사건이 전개되어 나가는 거죠. 그러니까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것까지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사실은 내적인 움직임의 동력이 있었다고 말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겁니다. 그 점에서 이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혹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죠. 사실 굉장히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우게츠 이야기> 같은 경우도 그렇고, <산쇼다유>도 그렇고, 뭔가 자연적 배경 안에서 인물이 걸어가거나, 뭔가 흐릿해지는 순간이라든가 그런 장면들이 있는데요. 이 영화에서 보자면 두 인물, 그러니까 외부가 없는 거죠. 외부 사람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조각배를 타고 두 남녀가 움직여가는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좀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그 전까지 모헤도 그렇고, 오상도 그렇고, 미조구치 겐지적 인물이라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남자는 남에 의해서 깨어나서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되고, 그에 따라서 어떤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인물이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것에 의해 바깥으로 내몰리게 되고, 자신의 내적인 동력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그 어떤 반응의 행동으로서 계속적으로 점철되어져서 이런 식으로 운명적, 도피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이 두 사람이 그러한 행위들 안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나가게 되는 순간이 지금 보시는 배 위에서 벌어지는 순간입니다. 이 둘은 그렇게 내몰린 상황 안에서 자살하기로 결심을 하잖아요. 그 순간 남자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나는 당신을 지금까지 사랑해 왔다고 고백을 해요. 이게 밑도 끝도 없이 느껴지는 것은 이 남자가 여자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그 어떠한 근거, 사례가 그 전까지 장면에서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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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와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 생략되어지는 것, 이것은 미조구치 영화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사례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남자는 그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얘기해요. 어차피 죽을 테니까 내 마음을 그대로 고백을 하자면 당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죠. 그 순간, 이 여자는 갑자기 이렇게 죽을 순 없다고 이야기를 하죠. 처음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우리가 여기서 죽을 이유는 없다. 갑자기 생에 대한 엄청난 의지를 보여 주게 돼요. 사실 이 장면 이후로 이들은 최종적으론 죽음으로 끌려가게 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측면 안에서 굉장히 강렬한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영화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한 여자가 마님의 저런 환한 미소를 본적이 없다는 말을 할 때, 그 얼굴에 피어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하는 어떤 충돌성이 이 순간부터 비롯되어서 이뤄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이들은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는 거죠. 거기에 따라서 나도 이럴 순 없다는 것으로 대응을 하게 돼요. 그 점이 이 영화 안에서, 혹은 미조구치의 영화 안에서 굉장히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는 자신의 속내나 심리라는 것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무언가에 끊임없이 끌려가거나 거기에 응대해 갔던 사람들이 이 순간이 되면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는 거죠. 따라서 이 두 남녀의 관계가 처음으로 이 영화상에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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