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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특별강연 : 정성일 영화평론가 2015-11-18(수)  - 시네마테크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특별강연


11/18 <연연풍진>

강 연 : 정성일 영화평론가

장 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2시간 넘게 진행 된 이번 강연은

강연의 진행 흐름상 강연의 일부만을 요약하기에는

강연전체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불명확할 것 같아,

상영작 <연연풍진>에 대한 강연부분만 정리되어 있습니다.



연연풍진 01


(정성일) <연연풍진>은 단순하게 보면 가난 때문에 헤어진 두 연인 이야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무대는 대만이 경제 부흥으로 성공한 1970년대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 영화의 첫 시퀀스와 마지막 시퀀스일 것입니다. 저는 심지어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부르고 싶습니다. <연연풍진>은 처음 시작하는 기차가 가는 장면과 마지막에 구름이 가는 두 개의 시퀀스를 연결하기 위해서 만든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연연풍진>이라는 영화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 <연연풍진>의 처음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의 이야기가 시간적으로 5년간에 걸친 이야기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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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 두 소년, 소녀가 기차를 타고 그런 다음에 소년이 나는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어요.”라고 포기하고 나면 그 다음 장면이 타이페이로 건너가지만 그 사이에 시간이 순간적으로 2년이 건너 뛴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타이페이의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집니다. 그러고는 군대에 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3년이 다시 흘러갑니다. 말하자면 영화는 시작해서 끝날 때 사이에 5년간의 시간이 흘러가는 데도 불구하고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 시간의 길이를 이상할 정도로 잘 느끼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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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연풍진 02


이 영화 전체가 196쇼트로 이루어진 가운데 35개의 쇼트가 인물이 없는 풍경이나 사물의 쇼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 161개의 쇼트 중에서 37개의 롱 쇼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129쇼트만이 인물과 이야기의 쇼트인 셈입니다. <연연풍진>은 인물과 이야기를 쫓아가는 데 있어서 전체 쇼트 중에 60%만으로 영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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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에서 첫 번째 장면의 시작은 굴에서 어떤 점 같은 것이 보이다가 점점 가까워 오면 기차가 이 굴을 빠져나온, 바깥으로 나온 기차라는 걸 보여줍니다. 굴에서 나온 기차가 다시 굴로 들어가고 굴에서 나온 기차가 다시 굴로 들어갑니다. 이야기가 시작하면 카메라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흔들리는 카메라는 미래를 알 수 없는 소년 완과 소녀 후엔 두 사람의 삶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함께 탄 기차라는 운명, 거절 할 수 없는 운명, 하나의 세계, 하나의 방향을 향해서 가고 또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 영화에서 여기가 광산촌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굴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 이 두 소년 소녀가 겪는 매우 특별한 감정일 것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소년, 소녀는 그러한 삶에서 시작할 때 벗어나고 싶었고 다시 굴속으로 들어갔다 나옴을 반복합니다. 이 영화는 이들의 삶의 반복을 이 첫 장면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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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는 온갖 우여곡절 끝에 소년은 군대를 제대하여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만나 인삼과 고구마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고구마가 인삼보다 키우기가 훨씬 힘들어.”라는 할아버지의 말로부터 어떤 교훈을 끌어낼지는 각자 여러분들의 몫일 것입니다. 이때 첫 장면에서 영화가 카메라가 흔들리면서 시작했다가 마지막 장면에 카메라가 고요하게 서 있습니다. 이때 카메라는 마치 이 소년의 슬픔에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혹은 그들의 마음처럼 흔들렸던 이 카메라가 마치 세상이 거기 멈춰서 있는 것처럼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그런 다음 단 한 번도 이 영화는 산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본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산 위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봅니다. 그때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면서 그 마을 사이로 빛이 하늘로부터 지나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이치가 지닌 어떤 무관심함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연연풍진 03 


허우 샤오시엔은 절대적으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정신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영화에서 디지털로 덧칠한 영화가 아닌 이런 장면을 찍으라면 첫째 운이 좋아야 하고 둘째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그는 무작정 기다리는 걸 선택해서 이 장면을 찍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허우 샤오시엔은 여기서 영화라는 과정의 예술이라는 방법론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습니다. 이때 핵심은 구름이 지나가면서 세상의 빛을 그렇게 스쳐지나가고 있는 그 순간을 영화가 찍는다는 것, 그것은 예술적 의지 바깥에 있는 장면인 것입니다. 온갖 미장센, 연기지도, 방법으로 찍을 수 있겠죠. 하지만 구름이 지나가면서 빛을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연출자의 예술적 의지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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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예술적 의지 바깥에 있는 이 장면으로 마지막 순간에 영화를 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 두 소년, 소녀에 대해서 무심해 보이는 세상의 이치 같은 것을 드러내 보여줄 때, 소년과 소녀의 삶에 대해서, 삶과 세상 사이의 무심한 관계를 단 한 순간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허우 샤오시엔은 매번 이런 장면을 찍을 때, 매달려 있는 시침이 덜커덕 간다든가 아니면 기차가 지나간다고 해서 그 표지판이 덜커덕 내려온다든가 어떤 경우에는 무작정 기다림을, 어떤 경우에는 아주 짧은 기다림 또는 예정된 기다림을, 하지만 명백한 건 그 기다림을 찍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이 기다림의 태도 그 자체가 세상에 대한 어떤 애티튜드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연연풍진 04


여기에 두 개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산이라고 하는 시간이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흘러가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멈춰서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구름, 빛과 같은 시간, 즉 운동하는 시간, 흘러가는 시간이 있습니다. 두 개의 시간 사이에 우리들이 말하자면 그 간극 사이에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말하자면 이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핵심은, 기차 소리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고구마가 인삼보다 키우기 힘들지.” 하는 순간에 기차소리가 들려오죠. 영화의 맨 처음 장면은 어땠습니까. 그 기차소리라는 사운드 소스 안에 소년, 소녀가 타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기차소리와 소년, 소녀의 삶이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안정하게 그 터널을 지나가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돌아온 이 소년이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을 때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때 이 기차소리 사운드 소스는 지금 이 소년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그 기차소리와 이 소년의 삶은 이제 무심하게 찢어져버린 것이고 더 이상 상관이 없는 것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허우 샤오시엔이 <연연풍진>에서 세상을 산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내가 함께 그것에 올라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과 내가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 삶이라는 것을 마지막 순간에 지나가는 구름과 산과 기차소리와 소년을 갈가리 찢어버린 다음 우리에게 그것을 마지막 시퀀스로 안겨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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