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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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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프레시 2025년 1월 월요시네마 <서브스턴스>에 관하여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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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 포스터.
피프레시 1월 월요시네마 <서브스턴스>에 관하여 ...
이수원 영화평론가 발제
┃1월 20일 이수원 영화평론가 발제, 20여 명 열띤 토론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국제영화비평가 ‘줌’ 세미나 열어
국제영화비평가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 Presse Cinématographique. 이하 FIPRESCI/피프레시) 한국지부는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8~10시, 줌(Zoom)으로 월요 시네마 세미나를 열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이수원 영화평론가(현 전남대 교수)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2024)에 대해 발제한 뒤 참가자들이 총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줌으로 열린 2025년 첫 월요세미나에는 20여 명이 참여했다. 피프레시는 1930년 전 세계의 전문영화비평가와, 영화기자, 각국의 영화 단체들이 영화문화의 발전을 위해 결성한 단체로, 한국지부는 1994년 창립됐다.
사회자 : 오늘 발제해주실 이수원 교수님은 프랑스에서 영화·영상을 전공하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하신 후 현재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국제이사를 맡고 계십니다. 그럼 <서브스턴스>에 대한 이수원 선생님의 발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구성
<서브스턴스>는 2024년 칸 영화제 각본상, 토론토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주연을 맡은 데미 무어에게 2025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두 번째 장편입니다. 이 영화는 ‘엘리자베스’, ‘수’, ‘몬스트로 엘리자수’라는 중간자막에 의해 대략 3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약물 주입에 따른 엘리자베스의 외양 변화가 동반됩니다. ‘서브스턴스’ 주입은 총 6회 이뤄지는데 엘리자베스가 젊은 수로 1주일 살다가 별 탈 없이 다시 원래의 엘리자베스로 돌아오는 1회차를 제외하면, 그 이후로는 모두 약물 오남용에 의한 엘리자베스의 급격한 노화와 변형을 야기합니다. 그 과정에서 엘리자베스는 젊고 싱싱한 육체를 가진 자신의 ‘더 나은’ 버전인 수와의 심리전, 즉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말을 맞이합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장르, 시대의 반영
장르영화는 상업성, 흥행성과 늘 궤를 같이 해왔습니다. 장르 개념 자체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시스템에서 성공한 영화들의 후속작 내지는 아류작을 만들어냄으로써 보다 쉽게 이익을 창출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익 창출을 위해서는 대중의 욕구에 대한 판단이 중차대합니다. 이때 대중이 욕망하는 것, 나아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대중이 위치한 사회 및 시대와 긴밀히 연관됩니다. 금주법을 배경으로 성행한 갱스터 장르, 동서냉전기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 1950년대 미국 SF 등은 대표적으로 장르가 시대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장르영화로서 <서브스턴스>는 이와 같은 측면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2024-2025년 현재, 시대와 대중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서브스턴스’는 ‘더 젊고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해지는 물질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조에 달한 외모지상주의, 싱싱하고 섹시한 ‘바디’ 숭배에 대한 성찰을 촉구합니다. <서브스턴스>의 이러한 주제는 페미니즘의 시각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의 몸이라는 기준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왕년에 최고의 스타가 50대에 접어들며 에어로빅 강사직에서조차 밀려나는 수모를 겪는 과정에서 코랄리 파르자의 카메라는 남자 상사 하비가 가진 속물성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수의 등장 이후 그녀를 향한 남자들의 물신적 숭배는 더더욱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한정하여 읽을 수는 없습니다. 여성들 스스로 그런 기준을 체화한 게 21세기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중후반부의 핵심 서사인 엘리자베스와 수의 생존 경쟁을 위한 육탄전과, 이어지는 엔딩부는 여성 스스로에 대한 비판, 나아가 자기혐오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감독 코랄리 파르자는 단편을 찍을 때부터 영화산업에서의 젠더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그룹 Collectif 50/50의 창립멤버이자 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 이력 때문인지 페미니즘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여성-남성의 관계와 평등에 대한 고민이 필모그래피 전반을 감싸고 있습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데미 무어라는 배우
<서브스턴스>를 논하는 데 있어서 주연을 맡은 데미 무어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1962년생인 데미 무어는 이 영화로 2025년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사랑과 영혼>(1990)으로 세계적인 할리우드 배우의 스타덤에 오른 뒤 연기력을 인정받고 1990년대 리즈시절을 풍미한 할리우드 스타이지만, 영화보는 눈은 없는 편이어서 그후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거듭된 이혼, 전신성형 의혹 등 사생활과 관련된 구설수에 오르내리느라 연기자로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서브스턴스>로 처음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데미 무어의 캐스팅은 이 영화가 작품성에서나 흥행에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전부터 데미 무어는 ‘몸’과 관련된 이미지를 대중의 인식에 강하게 각인시킨 배우입니다. 1992년 만삭일 당시 유수 잡지의 커버로 누드 프로필을 선구적으로 시도했다든지, 에서 한 손 팔굽혀펴기를 선보인 것은 유명합니다. 그래서 더욱 ‘바디’와 몸의 노화를 대상으로 삼은 이 영화에 안성맞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가는 여성(특히 배우)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요즘 빈번해진 성형이 반영하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일상화된 현상입니다. 데미 무어는 마돈나와 유사하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젊고 싱싱하고 건강한 육체를 추구해온 대표적인 저명인사입니다. 16세 연하남 애슈턴 커쳐와의 세 번째 결혼(2005)은 영화계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회자되는 바에 따르면 커쳐와의 결혼 이후 약 5000만 달러(7조원)의 성형비용을 지불해 얼굴은 물론 몸을 바꿔왔다고 합니다. 2019년에는 자서전 Inside Out을 발간했는데, 그 책에는 온갖 바람의 유혹에 노출된 미모의 연하 남편을 잡아두기 위한 고군분투가 그대로 녹아있다고 하며, 코랄리 파르자는 이 자서전을 읽고 그녀의 캐스팅을 확정지었다고 합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SF, (바디)호러, 고어
<서브스턴스>에는 SF, (바디)호러, 고어 등 장르의 혼성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장르 요소들은 파르자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엿보입니다. ‘아우디’로부터 지원받아 만든 단편 <리얼리티+>의 SF적 요소 및 보다 멋진 몸과 얼굴, 외모에 대한 욕망, 그리고 첫 장편 <리벤지>에서 남성들에 대한 복수라는 서사적 요소 모두 <서브스턴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브스턴스>에서는 생명공학기술의 활용이 SF적 요소에 해당되지만, 그 외에는 표면적으로 점차 호러의 방향성을 띱니다.
바디 호러는 신체 변형의 끔찍함을 소재로 하는 장르로, 이 영화에서는 엘리자베스의 등골에서 수가 탄생할 때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고어는 영화의 말미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무대 등장 이후 5분 내외가 고어의 측면이 극대화되는 부분입니다. 감독 스스로 인정했듯, 이 영화는 여러 호러 고전들을 인용하며 그에 대해 오마주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서브스턴스>의 정체성 내지는 뿌리를 지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좀비오>(스튜어트 고든), <싸이코>(알프레드 히치콕), <플라이>(1986,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샤이닝>(1980, 스탠리 큐브릭), <캐리>(1976, 브라이언 드 팔마)를 들 수 있습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시청각 연출과 시선의 강조
<서브스턴스>는 대사에 의한 직접적인 설명보다는 꾸준한 사운드 효과를 포함한 시청각 연출로 서사를 끌고 나감으로써 효율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줍니다. 일반 오락영화, 특히 액션에서 두드러지는 빠르고 긴박한 편집 대신 (수의 쇼 장면만 제외하면) 상당히 긴 테이크와 익스트림 CU의 효과적 사용이 돋보이는데, 그럼으로써 설명을 나열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롤로그 숏은 매우 단순하게 ‘서브스턴스’ 주입의 효과를 예고합니다. 깨뜨린 계란의 노른자에 주사기로 약물을 투입하면 그 노른자가 2개로 증식되는데, 이후 영화가 진행되면서 노랑색이나 개체분열과 시각적으로 연계되면서 세포증식(분열)에 의한 개체 증식이라는 약물 작용에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숏은 영화의 마지막 숏과 동일하게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새겨진 주인공의 ‘스타’를 버즈아이 뷰로 촬영함으로써 수미쌍관 형식을 띱니다. 첫 숏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옛 스타의 빛이 바래가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했고, 마지막 숏, 즉 엘리자베스가 얼굴 부위만 남은 채 스타로 찾아가 결국 완전 소멸하는 숏은 끝날 줄 모르는, 과거 리즈 시절에 대한 그녀의 집착을 표현합니다.
비교적 긴 테이크들은 관객의 관찰과 주목을 유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처음 수가 탄생할 때와 마지막으로 급격한 노화를 겪은 엘리자베스의 외양을 보여줄 때 등 몸의 변신이라는 주제를 관객이 관찰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빈번한 익스트림 클로즈업 역시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비로 대표되는 남자들의 속물성과 추잡함을 희화하여 표현하기도 하고, 엘리자베스의 내적 동요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영화의 주제와 직결되는 장치로 카메라 렌즈의 강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때 카메라는 방송국과 대중의 시선, 즉 ‘나를 얼마나 봐주는가’라는 흥행성을 상징합니다. 카메라 렌즈는 수의 첫 쇼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이때 여러 차례 정면을 응시하는 고정 숏이기에 수의 섹시함에 대한 관찰이라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그녀의 두 번째 쇼에서는 카메라가 여러 대로 증가하며, 수의 성공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 렌즈는 영화 말미에서 수가 엘리자베스를 때려죽인 뒤 장면이 전환되자마자 방송국을 상징하며 등장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늘 카메라의 시선 아래 있는 배우입니다. 그녀를 향한 외부의 시선은 그녀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지배합니다. ‘서브스턴스’ 주입 후에는 전광판이나 이미지상에 존재하는 수의 시선(곧 자기의 시선)의 지배를 받고, 결국 그에 굴복합니다. 후반부에서 더 이상 약물을 주입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터미네이션’ 약물을 수에게 주입하다가 중단하고 다시 그녀를 살려내는 장면은 시선에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합니다.
이상 간략하게나마 제 발제를 마칩니다.
Q&A
Q.1. 제목 <서브스턴스>에 관한 코멘트를 좀 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발제자 : 사전을 다시 찾아보긴 했는데, 물질, 근본, 본질 등의 의미더라고요. 저는 본질에 대한 성찰을 하는 영화라고 받아들였는데 혹시 다르게 해석하신 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회자 : 저는 이 영화가 중의적이라고 봤어요. ‘서브스턴스’가 약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물질’이라는 뜻도 있잖아요. 그리고 결국 우리의 육체가 어떻게 보면 서브스턴스잖아요, 물질이기도 하거든요, 육체 자체가. 여성의 육체를 둘러싼, 그리고 또 그것을 변형시키는 약물이라는 점에서 중의적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플로어 : 물리적인, 손에 쥐는 게 아니고, 서브스턴스는 본질이니까, 한 정신에 두 개의 몸이잖아요. 사실 데미 무어가 본질인데 그것이 갈라지는 데 대한 은유이기도해요. 이것이 페미니즘 영화냐, 라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젊어지고 섹시해지고 싶은 욕망은 남자들도 다 갖고 있죠. 우리가 굉장히 아름다운 남자 간호사와 어떤 노파를 만나잖아요, 서브스턴스 약물을 소개해준 동일인이죠. 남자들이 갖고 있는 미에 대한 욕망도 똑같은 거다, 라는 거죠. 영화가 약간 숨겨놓고 있는데요, 프레드가 수와 성관계를 가진 남자와 같은 인물일 수 있어요. 젊은 남자가 늙은 여자를 보고 경멸하듯이 가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사실 어렸을 때 엘리자베스를 짝사랑했던 남자일 가능성이 암시돼요. 암시가 굉장히 많은데 지금 말씀드리진 않겠고, 엘리자베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어글리한 모습을 보고 결국 데이트에 못 나갈 때 그 시점에 프레드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을 수 있거든요. 둘 다 안 나왔을 수가 있죠. 우리는 엘리자베스와 수를 보지만, 주변 남자들도 갖고 있는 욕망에 대한 것도 영화가 슬쩍슬쩍 보여주고 있어서 참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하비’라는 이름은 하비 와인스타인이죠. 놀림거리로 만들죠. 앤디 마가렛 퀄리가 맥도웰 딸이잖아요, 그런데 데니스 퀘이드와 과거에 앤디 맥도웰이 데이트하던 사이라고 하더라고요.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발제자 : 지금 말씀하신 주변 남자들에 대한 코멘트를 영화 볼 당시에는 별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제가 감독의 두 번째 단편 <리얼리티+>를 봤다고 했잖아요, 그 영화의 주제가 그래요. 옆집에 살고 있는 두 남녀가 스스로 못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둘 다 기술의 도움으로 잘 생기고 완벽한 몸매로 만나거든요. 그러다가 일반적인, 자신의 본 모습일 때 사랑이 이루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지금 해석하신 관점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자 :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영화의 미장센의 핵심이 거울상이라고 생각해요. 첫 장면도 계란 2개가 나란히 있는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복제된 것처럼 나란히 있잖아요. 그러다가 수와 엘리자베스가 거울상처럼 나란히 있는 것이고, 남자들도 나란히 있죠. 예를 들면 젊은 간호사도 식당의 늙은 남자와 사실 한 사람이고, 이런 식으로 이 영화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거울상적인 이미지처럼 나타나는 거죠. 이상한 게, 보통 거울상적 이미지는 굉장한 나르시시즘이거든요, 자기 자신에 대한 매혹 같은 거죠. 그런데 영화에서는 완전히 반전시켜서 안티-나르시시즘, 즉 서로를 너무 싫어하고 혐오하고 미워하는, 그런 대결구도로 자아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저는 굉장히 의미있다, 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도 이상적인 자아를 자기 마음에 품고 있는 한, 현실의 나를 혐오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싫어하거나... 이 육제에 사실 만족할 수 없는 거거든요. 이런 식으로 현대적인 자아와 자아의 관계의 한 측면도 잘 드러낸 영화라고 봤어요.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Q.2. : 저는 사실 영화를 못 봤는데요. 오늘 발표만 들었을 때 궁금했던 겁니다. 요즘 호러영화가 다른 대중 장르들과 혼종되는 게 쉬운 장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호러 역시 큰 틀에서는 판타지에 속하는 것이니까 어떤 장르에 결속되기 쉽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최근 호러영화가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내러티브 관습을 완전히 바꿔서 다른 성격의 하위 호러 장르로 가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파묘>도 처음에는 추리 장르의 전략을 노리다가 후반부는 크리쳐물처럼 흘러가잖아요. 그럼 아까 설명하실 때 후반부는 고어물의 특징이 훨씬 많이 드러난다고 하셨는데, 아마 그게 전략적 배치겠지만, 뭔가 이런 내러티브 관습에 있어서 앞과 뒤 또는 특정 부분, 부분들을 좀 언밸런스하다고 할까요, 좀 일관성이 떨어지지만 전략적으로 다르게 가져가는 것들이 최근 들어서 국내 외 영화 여러 편에서 나타는 것 같은데, 혹시 이 <서브스턴스>를 보시고 나서 그런 일련의 흐름들이 최근 생긴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인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발제자 : <서브스턴스>에서는 내러티브 관습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파묘>에서는 얘기하신 것처럼, 갑자기 거대 사무라이가 등장해서 크리처물 비슷하게 가죠. 그런데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오컬트이기도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크게 보면 호러 장르의 하위 장르로 다뤄지던 것들이에요. 그럼에도 <서브스턴스>의 고어 사용처럼 극단까지 가는 경우는 최근에 못 본 것 같아요. 사실 아예 처음부터 좀비영화 같으면, 처음부터 좀비영화를 부각시켜서 끌고 가잖아요. 몇 년 됐지만 <반도>도 그렇고요. 요즘은 장르혼합이, 워낙 포스트모던한 시대이니까, 당연하기까지는 아니지만 굉장히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약물 때문에 SF장르의 비중도 있죠. SF의 사회비판 기능은 끝까지 가는 것 같고. 약물의 효과 및 남용은 SF의 측면인데, 시청각적으로는 비중이 적죠. 바디 호러적인 측면은 엘리자베스의 등을 가르고 수가 나올 때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몸을 끔찍하게 변형하는 게 바디 호러죠. 사실 바디 호러도 우리나라 영화에서 작정하고 만든 영화 아니면 많이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몬스트로-엘리자수가 탄생하고, 그건 바디 호러에 해당하는데, 고어의 경우에는 마지막에 그녀가 무대에 섰을 때부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수가 엘리자베스를 때려죽일 때에도 고어의 측면이 있긴 하죠. 그러나 논의의 여지는 있고. 마지막 부분이 피로 도배하는 고어에 해당해요. 내러티브 면에서 다소 생뚱맞아보일 수 있는 측면이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글쎄요, <파묘> 같은 영화에서는 나타나지만, 최근 우리나라 영화에서 혐오감을 유발하는 하위 장르를 섞는 것은 아직 정착되는 수준에 이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장르 혼용 현상은 넓게 존재하지만, <서브스턴스>처럼 극단적인 하위 장르와의 혼용은 일상화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Q.3. : 제목 관련 이 영화가 왜 ‘서브스턴스’일까, 라고 했을 때, 이런 측면이 보편적으로 제목을 ‘서브스턴스’라고 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뭐냐 하면, 어떤 젊음이나 생명, 사실 젊음 자체가 역동적인 생명에 대한 신비화, 이상화, 이런 욕망이 젊음에 대한 추동에 나타나 있을 텐데요... 사실 마지막에 고어처럼 피가 쏟아지는 장면으로 끝난다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가는 게 사실 고어물 자체가 약간 공포를 넘어 혐오까지 가는 거잖아요, 신체손궤를 통해 혐오까지 주는 건데, 이상화되고 신비화된 젊음에 대한 욕망을 그냥 물질화해버리는, 신체를 절단해서 파편화하거나 피로 보여주거나 하는 거죠. 혹시 그래서 ‘서브스턴스’라는 제목에 대해 중의적이라든지, 다른 의견도 여러 선생님들이 다양하게 주셨는데, 젊음에 대한 욕망 자체를 전복시키는 방식으로서 고어가 선택되고, ‘서브스턴스’라는 제목을 쓰진 않았을까 한 번 추측을 해봤습니다. 그런 해석도 가능할까요?
발제자 : 매우 흥미로운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10분, 아니 사실 5분 정도에서 고어가 심각하게 드러납니다. 그때는 가짜 피 3만 갤런이 터져 나오는데, 몬스트로-엘리자수의 몸이 회전하면서 기관총처럼 피를 쏴댑니다. 관중석으로 쭉쭉 뿌리죠. 피와 살덩이들이 많이 강조되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신 싱싱하고 꾸며지고 완벽한 그런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마지막에는 엘리자베스가 물질로만 남아서 스타 쪽으로 기어가 그 위에 안착한 후에 곧이어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젊고 싱싱한 몸, 인간의 유형적 형태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플로어 : 저는 이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 여성관객성의 관점에서 관심있게 봤어요. 여성의 욕망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몸이 자본주의사회에 이용당하는, 소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두 여성으로 분화된, 특히 수가 보여주는 젊은 여성의 신체를 강조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이 가부장사회에서 남성에 의해 여성의 몸이 소비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전시했거나, 또는 남성관객들이 그것을 정당화해서 바라보면서 쾌락을 느낀다든지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욕망에 맞춘 것... 결국은 주제가 나이들어가는 것에 관한 거거든요. 여성이 주인공이잖아요? 여성이 나이들어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영화가 <이브에 관한 모든 것>이 떠올라요. 메기라는 노배우가 아주 풋내기 배우 지망생을 받아들이는데 나중에는 완전히 전도되어서 그 이브가 노배우를 잡아먹는,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젊은 이브라는 사악한 여자를 그렸어요. 그런데 1950년대 고전영화기 때문에 사악하게 볼 수 있겠지만, 현대적 입장에서는 그게 수라고 보여지거든요. 그런데 물론 또 엘리자베스에요. 여성관객이 매우 동일시될 거라고 느껴져요. 수의 바디에. 아름답고 젊은. 25살에 자본주의사회에서 성공한다는 것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존재 자체, 본질, 저는 서브스턴스가 그런 의미, 존재 자체라고 보거든요. 파리가 술잔에 빠지는 장면이 있거든요. 자기가 끝났다는 거죠. 돈을 더 이상 못 버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끝났다. 그런데 자기의 유일한 살아가는 무기는 젊고 싱싱한 바디인데... 사실은 아이러니인데, 두 몬스터를 보는 거에요. 무리해서 몬스터가 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도 보이지만, 실제 인물을 비유한 프로듀서 하비의 클로즈업된 탐욕적인 모습이 몬스터라고 생각되거든요. 이 몬스터가 인간을 삼키는 그런 메타포가 큰 구조 안에 들어있는 영화거든요. 그렇게 봤을 때 가부장사회에서 남성들에 희생되는 여성의 모습, 그리고 여성이 무리해서 비극에 빠지는 이야기, 이렇게 저는 읽히지 않아요. 마지막도 비극적이지 않아요. 그 여자 웃잖아요. 그리고 몬스터로 변한다는 것은 굉장히 과장된 표현이고, 사실은 많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지점인데, 나이든다는 것은 권력을 잃는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정치적인 담론이 들어있다고 봐요. <이브의 모든 것>에서도 두 여자가 서로 경쟁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에서는 타자를 설정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재미있는 게 나 자신에 대한 욕망이란 게 무엇인가, 권력을 잃고 싶지 않은 거에요. 그런데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저는 상당히 많은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봐요. 관객들이 많이 공감할 거에요. 왜? 그런 욕망이 있거든요. 자신이 성공하고자 하는 그런 근본적인 밑바닥의 욕망을 보여주죠. 그런데 그것이 도덕적인, 정신분석학적인 면에서 보면 스스로 벌을 주는 거라고 보여져요. 그것이 괴물이 된다든지, 하는 걸로 나타나죠. <존 말코비치 되기> 같은 영화도 떠올라요. 말하자면 내면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SF적인, 공포영화지만, SF적인 발상을 갖고 있죠. 사실은 모든 SF가 무의식을 다루고 있다고도 봐요. 외계라는 것이 우리가 가보지 못한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한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존 말코비치 되기>가 SF류의 특이한 공포영화다. 여성이 쾌락을 느끼고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사유를 하면서 재미있게 보는 것이지 결코 자본주의사회에서 여성의 바디가 어떻게 된다든지 이런 해석은 갖지 않았어요. 또 남성관객이 보는 시각하고 여성관객이 보는 시각이 있을 텐데, 저는 감독이 여성관객성에 맞춰서 만든 영화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어요. 두 여자로 나뉘지만 사실은 하나고 그것은 사실 나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래서 수를 잔인하게 묘사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봐요. 지우고 싶은 모습이거든요. 최대한도로 잔인하게 고어형식으로 보여줬다고 보는 거고. 그런 마음의 상태가 있잖아요. 그러나 그것은 사실 질문이죠. 권력을 지향하는 건데 그게 계속 젊음을 추구하는 거거든요. <이브의 모든 것>에서도 이브를 나쁜 여자로 묘사하지만 사실은 나쁜 여자가 아니죠. 자기가 성공하고자 하는 젊은 여인일 뿐이고, 권력, 권한은 젊은이한테 넘어가야 되는 거에요. 그런 면에서 바디가 나이먹어서 더 이상 활용되지 못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끝없이 권력지향적인 속성을 가진다 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그러나 괴물이 되더라도 자기가 그런 것을 추구한다는 만족으로 웃는 모습, 그런 게 매우 재미있었어요. 이 영화에서 심영섭 선생님께서 거울 얘기 하셨는데, 미장센에서 거울 당연히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고 나르시시즘으로... 저는 기본적으로 가운데로 모아지는 대각선의 회랑구조, 아까 <샤이닝> 얘기도 나왔죠? 그것이 굉장이 반복돼요. 혼자 있을 때 뒤에서 앞으로 걸어가거나 앞에서 뒤로 가는 장면, 그것이 말하자면 뭔가 심오한 메타포가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굉장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요. 텅빈 한 가운데에서 뭔가 포획되어있는 것이라고도 보여지고, 문학적으로 ‘욕망의 계단’, ‘욕망의 사다리’ 같은 표현 많이 쓰잖아요? 어떻게 보면 통로의 이미지인데, 그게 굉장히 쓸쓸하게, 어둡고 비극적으로 보일 때도 있고, 젊은 수가 막 걸어나올 때에는 아주 또 다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미장센이라서, 영화 전체를 함축적으로 담고...결국은 나이먹는다는 것, 시간의 흐름에 대한 비유일텐데, 굉장히 인상적인 미장센이었다고 생각해요. 한 번밖에 못 봐서...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사회자 : 정재형 선생님 얘기를 들으니까 이 영화가 욕망의 소실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로가 결국 끝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소실점이거든요. 시선이 끝까지 가면 확장이 되지만 소실점에서 사라지죠. 그런 식의 미장센이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애브젝트’라는 개념, 추잡하고 욕지기 나는, ‘애브젝트’라는 개념을 갖고 신디 셔먼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육체를 정액 속에 집어넣는다거나 토사물 안에 얼굴을 집어넣는 것 같은 퍼포먼스를 많이 했었거든요. 초창기에 그녀는 ‘여배우’ 시리즈를 많이 했었어요. 본인이 마릴린 먼로를 재현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많은 여배우를 재현했죠. 신디 셔먼은 본인만 재현, 사진을 찍거든요. 나중에는 ‘애브젝터’ 시리즈로 자기가 토사물이나 정액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 그런 것들을 했었어요.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얘기하는, 경계를 흐려서 우리가 오히려 주체성을 획득하는, 사회적인 시선이나 이런 아름다운 미학적 합의에서 벗어는, 그래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지는, 그런 현상을 애브젝트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었거든요. 그래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이 잘 맞는, 논문 한 편을 써도 재미있을 것 같은, 그런 영화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회자2 : 이 영화는 굉장히 많은 패러디와 오마주로 이뤄져 있잖아요. 저는 <이브의 모든 것>은 생각을 못 해봤는데 매우 적절한 것 같아요. 저는 데이비드 린치를 많이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이레이저 헤드>나 <엘리펀트맨> 마직막의 괴물, 동물 같은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있었고, 시각적 장치로써 오마주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영화구조는 <모홀랜드 드라이브>를 차용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젊음과 늙음이 아니고 굉장히 관능적인 여자와 굉장히 청순한 여자가 서로를 시기질투하기도 하고 서로를 사랑하기도 하고. 결국 여자가 갖고자 하는 관능미와 청순미를 두 개로 이미지화한 것처럼, 젊음과 늙음을 쇼비즈니스 세계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또 여성의 육체가 인간의 모습으로 흐르는 것이, 여성관객성을 말하셨지만, 여성관객도 시각적 쾌락을 원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1970년대 페미니즘적인 굉장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보다는 대중적인 언어로써 많은 여성들에게 호소하는 면에서 재미있는 시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가 많은 시네필적인 레퍼런스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 일례로 히치콕이 갖고 있던 <싸이코>의 하나의 정신 두 개의 몸 같은 것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처럼 굉장히 많은 참조점이 있는,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플로어 : 저의 경우, 남성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영화가 보여지는 있는 그대로를 우리가 왜곡하지 않고 볼 수 있느냐, 라는 것을 남성관객에게 질문하는 듯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사회자2 : 이수원 선생님 혹시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에 대해 코멘트 해주실 것 있나요?
발제자 : 저는 사실 남자관객의 관점은 다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은 했는데, 말씀하신 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재형 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이들어가는 것 자체에 대한 코멘트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했었거든요, 여자 남자를 떠나서. 요즘은 나이드는 것을 죄까지는 아니지만... 실제 우리 생활에서도 권력을 뺏기고 찬란히 빛나던 시절에서부터 뒤안으로 밀려가는 건데, 그런 것에 더해서 육체까지 포함해서 외모적으로도 뭔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코멘트하는 사회가 된 것 같아요. 별 것 아니어도, 전반적으로 저 사람 외모가 많이 변했다든가... 사실 노화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거기에 대해서 여배우라는 직업은 더 그렇게 느끼겠지만, 여자, 남자를 떠나서 사회가 노화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어요.
사회자2 : 채팅 질문입니다. 주제랑 상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찟는 것을 보면서 출산에 대한 감각과 성형수술의 고통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로어 : 이 영화가 월요시네마 대상작으로 선택된 뒤 내용을 모르고 가서 봤을 때 너무 보기 힘들었어요. 한 번 보기도 힘든 영화를 두 번씩이나 보고, 이 안에서 많은 레퍼런스를 발견하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는 사실 관능미 있는 젊은 육체와 늚음에 대한 것이 보여진다고 했는데, 저는, 젊은 육체를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잖아요? 거기에서도 역겨움이 느껴졌어요. 몸 자체를 그렇게 아름답다고 여기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느끼면서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거기에서도 역겨움이 느껴져서, 이거는 도대체 뭔가,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말 보기 힘든 영화였어요. 제가 장르에 대한 편식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저는 ‘돈 주고 이 영화를?’ 이런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아가지고...도대체 이런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까 실은 궁금해서 오늘 접속을 하게 되었어요.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 계기가 조금 궁금했어요. 이런 영화를 저 같은 편식쟁이에게는 어떻게 마음문을 열고 다가갈 수 있을까... 여러 말씀 중에서 캐치되는 부분은 있더라고요. 감독이 말하려고 했던 의도나 숨겨진 의미들을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일단 시각적으로 너무 혐오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난사하고, 아름다움마저도 혐오하게 만드는 이런 느낌들이 저는 영화를 보고 매우 불쾌하고 밥을 못 먹었어요. 떠오를 때마다 좀 그래요. 마지막 별의 장면에서는 메두사도 떠올랐어요. 얼굴만 있고 머리카락 같은 것만 남은.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그림이라던가... 정말 아름다움의 극과 극을 달리는 영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왜 이런 영화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사회자2 : 잠시만 채팅방에 의견 올라왔습니다. “저는 1주일을 주기로 역할을 바꿔야 하는 규칙이 재미있었어요. 그것만 지키면 두 개의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못 하잖아요?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담배를 끊으려고 하는데 엄청 힘든 거에요. 하루에 몇 개비를 허용하는 규칙을 스스로 정했는데 어기면 몸이 너무 힘든 거에요. 마치 1주일 규칙을 넘기면 괴물로 변하듯이 딱 그런 기분. 몸과 마음을 상대하는 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 영화였어요.” 너무 훌륭하신 해석을 해주셨어요. 1주일만 지키면 모두가 행복한데 말이죠. 아까 출산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저는 모녀관계에서도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물고뜯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거든요? 사실 엘리자베스가 수를 질투하지만 수를 위해서 자신의 늙어감을 포기하는 모습이 나타나거든요. 그런 느낌도 받았는데, 지금 의견은 다 몸을 통제하면 된다는 것을 아는데 그걸 못하는, 욕망, 나약함, 정신의 허약함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셨습니다.
또 다른 채팅상의 코멘트가 있네요. 물질, 스타, 페미니즘 등등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굉장히 중의적인 영화라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을 집단지성을 통해 답을 구할 수 있을지 공유해봅니다. 엘리자베스가 새로운 인생을 사는데에는 단 하나 1주일 규칙, 그것만 침해하지 말라고 나오는데 왜 1주일이었을까요?
위 질문과, 앞서 이 영화가 이렇게 불쾌한데 왜 훌륭한 영화라고 평론가들이 평가하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답 듣겠습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발제자 : 네. 제가 발표 초두에 처음부터 이 영화를 마음에 뒀던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원래는 제가 1월 발제가 예정되었기 때문에 기존 12월 개봉작들은 1월 들어서 간판 내려버리면 못 보게 될까봐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개봉일자들을 살펴봤을 때 이 영화가 1순위는 아니었어요. 그 와중에 <노스페라투>가 개봉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장르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은 있는데, <서브스턴스>처럼 막 심한 영화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노스페라투> 같이 고전과 관련된 그런 종류를 좀 좋아해서 이 영화가 날짜가 맞으면 선택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가 발제 1주일 전 개봉이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시빌 워>도 생각하긴 했어요. 영화를 선택한 데에는 저의 취향도 있긴 했지만 개봉일과 월요시네마 일정이 많이 작용하기도 했는데, 사실 저도 어쩌면 월요시네마가 아니었으면 한 번 보고 그쳤을지도 몰라요. 그후에는 인터넷으로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었을 테죠. 그런데, 저를 너무 이상하게 보지는 말아주셨으면 하는데, 두 번째 극장에서 보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영화가 시각적으로 혐오스러운 점이 많다 보니까 시각에 민감하니까 지금 의견주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보기 힘들고 역겨움을 느끼게 하는 점이 많고 심지어 수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도 그것조차 역겨워서 식사도 못하셨다고 했는데, 영화에 대한 굉장히 ‘좋은’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마라켓 퀄리 인터뷰를 보니, 그녀는 원래 댄서인데, 그녀의 몸도 다 보정을 한 것이더라고요. 엉덩이에도 뭔가를 넣는 등 보정을 엄청 한 상태에서 그렇게 선정적인, 바디를 강조하는 그런 쇼장면을 처음 찍고 나서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역겨웠던 거에요. 그렇게 연기해서 남한테 몸을 전시하는게 쇼장면인데, 자신도 직업댄서로서 그것을 못 이겨서, 너무 강해서 울었다는 거에요. 말씀주신 감상이 그런 면과도 맞닿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런 피도 많이 나오고 잔인하고, 어쩌면 보기 힘든 영화를 볼 때 약간의 예방주사 같은 게 있어요. <좀비오>를 만든 스튜어트 고든이 GV에서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 영화에서 가짜 피를 만들 때 이 빨간 색과 저 빨간 색을 섞어서 특별한 색을 만들었다든지, 하면서 그 피가 진짜 피가 아니라고 함축하며 피 만드는 과정을 열심히 설명하더라고요. 또 다른 호러의 거장은 부패하는 신체를 찍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그 준비, 작업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런 영화를 볼 때, 감독이 무조건 이런 것을 사용하는 게 아니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하는데, 장르적으로 표현하다보니 도구가 그렇게 된다, 라고 보고요. 모두 가짜 피이고 혐오스러운 장면들도 특수효과로 만들어졌다, 라고 생각하면 조금 나을 것 같아요. 그래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간 영화라고 하면 퀄리티가 바닥이라고 볼 수는 없거든요? 물론 데미 무어가 출연해서 간 측면도 일부 있겠지만요. 그렇게 접근하면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영화만 갖고 월요시네마에 선택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해요. 주제를 굉장히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혐오감을 많이 주지만 의도된 것이다, 라고 봅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사회자2 : 1주일에 관한 질문에 대해 채팅에 답이 올라왔네요. “1주일이 사회적인 시간이죠. 노동과 쉼이 있는 시간, 무대에 서는 직업은 쉰다는 작업이 중요해요. 1주일이 중요해요.” 라고 분석을 잘 해주셨습니다.
또 다른 의견 채팅에 올라왔네요. 수술한 환자를 병원에서 돌본 적이 있는데 매우 취약한 몸 자체를 경험한 것이 떠올렸다고 합니다. 인간 존재란 얇은 표면 아래 피와 살이 전부일 수밖에 없고 수술을 해봤으면 인간육체가 고기덩어리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의견입니다.
제가 첨언하자면 아는 아프리카TV BJ가 있는데, 이런 분들은 몸을 쓰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했더니 굉장히 불쾌해하더라고요. 의외로 몸을 쓰는 사람들이 그렇더라고요. 제가 갖고 있는 즐거움을 얘기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박수치면서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노골적인 표현? 그런 관능적이고 에로스적인 그런 것에 대해 우리가 거리감을 둔다든지 스스로 윤리적인 판단을 해왔는데, 이 영화는 그런 것들을 모두 허물어뜨리면서 원초적으로 보여주는게 오히려 시선을 사로잡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플로어 :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앉아서 후회를 많이 했어요. 저는 보통 영화를 볼 때 미학적이거 비판적인 시선으로 기대감을 갖고 극장에 들어가는데,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요. 하지만 조금 전 정재형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영화에 대한 초점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끝없는 권력과 야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 그러면서 한 가지 떠오르는 게, 한국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영화비평가 선생님들이 <서브스턴스>라는 영화를 두고 이런 평론하시는게 너무 아름답습니다. 또 한 가지 리마인드 시키는 것은 지금 한남동에 계신 여자분께서 이 영화를 꼭 봐야하지 않을까, 결과가... 대통령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그렇게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인간의 내면 속에서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욕망을 갖고 굉장히 정의로운 척하면서 우리를 모두 속이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렇게 파멸의 국면에 서서, 마치 비맞아서 겁에 질려서 지하실 구석에 버들버들 떨고 있는 모습을 연상헤 되네요. 그분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굉장히 혼돈스러웠는데 정재형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플로어 : 제가 아까 얘기의 연장선상에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마지막에 피가 막 터지는 장면이 클라이맥스인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는 피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여성의 생리를 상징한다고 봐요. 아까 출산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런 이미지들이 여성성을 나타내는 거거든요. 여성들이 피치 못하게 갖는 조건들, 혼인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하고, 그런 남성이 갖지 못한 경험이 이 영화에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고 봐요. 그것을 은유화시킨 거라고 봐요. 그런 많은 출산, 임신의 이미지가 있고 태아의 이미지도 있어요. 그래서 피 장면 같은 경우 대표적으로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에서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를 씌우기 위해서 돼지피를 쏟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이 극대화돼서 <서브스턴스>의 장면을 낳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당시 1970년대로 돌아가서 보면 지금과 같은 공포에 상응하는 굉장히 쇼킹한 장면이었죠. 돼지피가 위에서부터 막 떨어져서. 왜 돼지피를 썼느냐? 바로 그 여자의 사악함을 상징하죠. 마녀, 사악함. 그것이 바로 남성의 그동안의 시각인 거죠. 생리라든가 애를 낳는다던가.. 아까 심영섭 선생님께서 좀 어려운 이론을 갖고 오셨는데,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천함, 여성의 몸에서 분비되는 아주 비천한 것이 정말 비천한가, 이런 건데 남자들은 대개 비천하다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사악함에까지도 연결시키고. 이런 시각을 이 영화가 마지막 장면에서 불식시켜요. 왜냐하면 각선미를 자랑하는 글래머러스한 댄서들이 도열해있는 무대와 관객 사이에 이 여자가 얼굴만 치장한 채 거짓된 모습으로 나타나죠. 나중에 밝혀지게 되지만 남자들이 속죠, 그게 많은 함의를 가진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의 함축된 모습이거든요. 여성을 그렇게 잘 빠진 육체의 미, 그런 아름다움으로 생각하는 것, 여자는 아름다워야 한다, 라는 것. 남자에게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그것을 깨버리는 거죠. 정반대의 이미지를 충돌시키면서 여성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는 피의 난사, 사실 저는 생리를 암시했다고 봐요. 남성들의 보수적인 시선에서는 그것을 아주 불쾌하고 불결하게 바라보죠. 이 영화의 초점은 아마 거기에 맞춰져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저는 여성관객성에 맞춰진 영화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바로 그것을 불식시켜주기 위한 거죠. 여성만 공감하느냐? 저는 남성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사유를 촉발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 가치관의 혼돈을 경험하게 하는 거죠. 균을 주입해서 몸살을 앓고 나게 한 다음에 깨어났을 때 쾌적함을 느끼게 하는 거죠. 굉장히 강한 요법이죠. 왜 저렇게 여성에 대한 종래의 잘못된 시각을 이 영화가 교정하려고 저렇게 극악한 방법을 쓰는가? 그런 면에서 균 주입으로 앓게 만드는 그런 정도라서 보기에 굉장히 어려울 수 있어요. 저는 그런 함의가 담긴 대단히 훌륭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은 괴물이라는 것은 사실 보기에 따라서 악한 존재인 것이지만 저는 악하게 보지 않았어요. 끝에도 웃으면서 결국은 자신이 후회하지 않는 삶, 그래도 자기가 젊으려고 노력했던 마음 자체로 만족하는 듯한 그런 표정? 스타 속에서 메두사처럼 표현되긴 하지만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어요. 감상은 각자 다른 거지만, 저는 잘 만든 영화다라고 봤어요. 저는 임신이나 피에 관한 건 아주 의도된 것이라고 봐요. 바로 여성성이죠. 그것을 마지막에 완벽하게 대비시키면서 우리가 봐왔던 것, 쭉쭉빵빵만이 여자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라는 거죠. 몬스트러스 페미라는 연구소가 있잖아요? 괴물영화 대체로 괴물형상을 바라볼 때 남자들이 너무 혐오하고 무서워하고 하는 바로 그 장치를 감독이 이용했다고 봐요. 일부러 더 혐오스럽게 만든 거죠. 그렇게 대비시킨 그 장면이 상당히 클라이맥스다, 그것에 이 영화가 지향하는 주제를 담고있다고 생각해서 저는 그 장면을 매우 좋게 봤습니다.
'서브스턴스' 스틸컷. 사진 제공=NEW
사회자2 : ‘의도한 불편함’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채팅창에서 1주일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셨는데, 1주일이 신의 시간인데 이것을 깨뜨리는 것을 통해 늙어감을 거부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고 하셨는데 굉장히 좋은 해석인 것 같습니다. 아까 이수원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늙어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고 지금 사회에서는 죄악시하거든요. 누가 늙으면 관리를 못한 자, 게으르고 나태한 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식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게 지금 현대사회의 모습이죠. 저는 공감이 갔던 게 엘리자베스가 약 받으러 갈 때 트로이 오토바이 탄 젊은 남자가 아주 경멸스럽게 치고 가잖아요. 저도 실제로 경험하는 장면이거든요. 아줌마가 왜 몸을 부딪쳐? 이런 식이죠. 저 같이 나이 든 중년여성에게는 굉장히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플로어 : 죄송한데 컴퓨터 문제로 제가 10분 전쯤 아주 늦게 들어왔어요. 저한테는 보기 굉장히 힘든 불편한 영화였고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같은 영화도 생각이 나고 그랬어요.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ㅗ기는 힘들지만 의도된 불편함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봤을 때, 크리스테바 얘기며, 여성관객성 이런 주제를 굉장히 잘 표출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정민아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 영화 너무 보기 힘들었던 영화에요. 그리고 아직 젊으신 데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저처럼 칠순에 접어든 여성에게는 노화가 피부로 와닿는데요. 왜 서브스턴스, 즉 본질이 묻히는가, 그런 노화, 또 젊으면 젊은 대로 아까 지나친 미가 주는 역작용, 역겨움에 여성됨이나 인간성이 파묻히는데 그런 서브스턴스를 보여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오히려 역으로 해봤습니다.
플로어 : 저는 이 영화를 보게 돼서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 영화였어요. 저의 욕심도 생각해봤고요. 여성이 아름답고 싶고 늙고 싶어하지 않는 욕심에 대해서만 중점을 두고 보다가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고 다양한 방면에서 보게 돼서 더 시선이 다양해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2 : 감사드립니다. 발제하신 이수원 선생님께서 마무리 코멘트하시고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제자 : 저는 영화를 보면서 전혀 혐오스럽지 않았거든. 내가 이상한 측면이 있나, 그런 생각도 약간 했지만, 어쨌든 선생님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하필이면 제 시간에 정재형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뭐라고 해야 하죠, 제가 대선배 평론가 선생님 계신 데에서 얘기를 한 셈이 됐는데, 너무 많은 보완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장르영화팬의 입장에서 그 측면에서 주로 말씀드렸는데 훨씬 깊은 얘기를 해주셔서 영화를 다시 봐야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복도라든지... 그 외에 모든 선생님들 좋은 말씀 해주셔서 영화를 보완해서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행해주신 심영성, 정민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사회자2 : 채팅방에서 노화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충격적인 것이다, 라고 의견 주셨습니다.
지금 화면에 공유해드렸는데 다음 달 영화는 <브루탈리스트>입니다. 2월 24일 저녁 8시에 여기 계신 정재형 선생님께서 발표를 해주셔서 기대가 많이 됩니다. 정재형 선생님, 짧게 이 영화에 대해 코멘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브루탈리스트' 포스터. 사진 제공=유니버셜픽쳐스
정재형 : 화면에서 보듯이 골든 글로브 3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핵심을 다 뽑아먹었고, 그래서 기대가 많이 돼요. 장장 3시간 반짜리 영화라서 저는 그 긴 시간 동안 영화의 바다에 빠져서 황홀하게 영화를 볼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에서 열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가 주연한 역시 유대인 관련된 영화에요. 실제로 브루탈리즘이라는 건축양식이 있거든요. 그것에 대해 제가 얘기하게 될 것 같은데요, 이것이 재료가 노출된 굉장히 투박한 건축양식이에요. 그것과 홀로코스트의 고통, 미국에 대한 꿈, 미국에 와서 성공하는 꿈. 포스터에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뒤집어져 있네요. 이런 것들이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의 면면인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아카데미도 휩쓸지 않을까,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해요. 올해 공개된 영화 중에서 손가락에 꼽는 걸작이 아닌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제 취향의 여러 영화가 있었지만 이 영화를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해서 이 영화를 뽑았습니다.
사회자2 : 참고로 2월 12일 개봉입니다. 다음 주에 정재형 선생님께서 빛나는 분석을 해주실 거라 많은 기대가 됩니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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