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영화와 비평  > 영화평론가 비평

영화평론가 비평

오디오 해설 영화관



영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 다양한 관점이 돋보이는 '영화평론가' 차별화된 평론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평론글로 여러분을 새로운 영화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모두가 이미 가 있는 그 곳, <몽유도원>(2025)2025-02-28
영화 <몽유도원> 스틸컷 이미지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모두가 이미 가 있는 그 곳, <몽유도원>(2025)


윤필립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보통 독립영화에는 강력한 메시지와 함께 그 시대에 외면하고 싶은 한 사회의 이면이 담겨져 있다. 관객들이 대부분의 독립영화에서 동시대인들의 자화상을 직면하게 되는 이유이다. <몽유도원>(장정혜 감독, 2025)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비록 배우들의 무대식 연기가 관객들이 기존에 스크린에서 봐 오던 것과 충돌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이 작품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서사적 설득력을 강화하는 장치로 관여한다. 이상향(도원, utopia)과 현실 그 사이에서 모순을 일으키며 꿈(몽)을 꾸듯 노니는 혹은 살아가는(유) 이들을 그려낸 이 모호한 이야기는 한 남자의 작업실에서 시작된다.

남자는 100억 짜리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 감독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런 그에게 한 친구는 정신 차리라며 어느 늙은 소설가의 집으로 함께 갈 것을 종용한다. 셋이 함께 모인 술자리에서 나이가 지긋한 소설가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설파하며 독자와 관객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당장 그의 작품에 관심 갖는 이는 오로지 딸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옛 연인과 재회하여 꿈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눈 앞에서 멀어진 사이 벌어질 대로 벌어진 둘 사이의 이격감은 마음처럼 좁혀지지 않는데......


영화 <몽유도원> 스틸컷 이미지2


잘 아는 것처럼 '몽유도원도'는 조선 세종 때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에 대해서 듣고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말 그대로 '도원에서 놀던 꿈에 관한 그림'으로, 이 영화는 그것을 그대로 차용하여 <몽유도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모름지기 한 작품의 제목은 그것의 주제 의식과 직결되지 않던가? 제목처럼 이 영화 안에는 각자 다른 꿈을 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요 인물들로 등장하는데, 감독은 그러한 인물들 간의 갈등이라는 자극적 요소에 천착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하나로 뭉쳐질 듯하면서도 결코 뭉쳐지지 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의 꿈대로만 살다 생을 마감하는 인간군상을 포착한다.

일례로, 정치적 소신을 강조하는 늙은 소설가는 거대담론을 들이대며 이 포악한 정치의 시대에 사람들은 왜 광화문으로 집결하지 않는지 한탄하지만 실제로 그가 한 것이라고는 세치 혀로 입바른 소리만 하는 것일 뿐이었다. 또, 남자가 자신에게 연락한 옛 연인에게 "너는 여전히 네 마음대로구나."라며 핀잔하지만 실상은 남자 또한 영화 감독이라는 자신의 이상만 좇은 채 연인이 바라는 바에 집중한 적이 없었다. 거기다 1인 책방을 운영하는 남자의 친구는 장사가 안 된다며 시대 한탄을 하고 푸념을 쏟아 놓으면서도 폐점은 결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몽유도원>에는 고귀한 척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모순적인, 타협하는 듯하면서도 결코 아집을 떨쳐 버리려 하지 않는 우리의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영화의 전반에 흐르는 이러한 충돌은 장르적으로는 코미디가 갖는 특징인데, 이 영화에서는 사실 희극적 요소가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충돌을 일으키는 여러 인간군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삶의 태도를 비꼰다는 점에서 블랙코미디의 특성은 어느 정도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단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이 영화 안에는 몽유도원도, 조지 오웰, 스태린 큐브릭, 밥 딜런, 인왕제색도 등 한국과 서양의 문화 영역별 고전(classic)내지는 현대적 고전(modern classic)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나 인물들이 끊임없이 언급되고, 주요 국면에서는 베토벤 소타나와 같은 클래식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순한 듯 아집으로 가득한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충돌을 일으키며 오히려 그들이 그다지 세련(classy)되지 못한 '인간'임이 한층 더 강화된다.


영화 <몽유도원> 스틸컷 이미지3


글을 마무리하며, 영화의 후반에 남자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대학로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오디션을 진행하고, 오디션에 임한 배우들은 각자 열연을 선보인다. 이때 카메라는 오디션 배우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들이 감정을 잡고 준비하는 모습부터 연기에 몰입했다가 현실로 빠져나오는 모습까지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어쩌면 이 장면이 <몽유도원>을 가장 잘 요약한 핵심적인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꿈대로 산다는 것은 배우가 현실과 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신의 이상향을 품고 있고, 덕분에 주어진 현실은 그 이상향과 전혀 다를지라도 그나마 견딜 만한 척 연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몽유도원>의 남자는 영화의 끝에서 관객들을 바라보며 크게 외친다, '레디 액션'이라고. 

다음글 피프레시 2024년 7월 월요 시네마-<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관하여
이전글 신의 언어와 빈약한 오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