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영화와 비평  > 영화평론가 비평

작은영화영화제(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2024-12-23
제 87회 작은영화영화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024년 12월 4일(수) 늦은 7시 30분 영화의전당 인디플러스관 양궁소녀 - 김수림 감독 / 기대주 - 김선경 감독 / 육상의 전설 - 김태은 감독



작은영화영화제(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지혜(한국영화평론가협회)


  이 3편 작은 영화들의 공통점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양궁, 달리기, 수영이 각 영화에서 은유와 미학적 요소로 관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 이 영화는 모두 성장영화다. 특히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 사이의 연대는 서사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단편 영화는 오랫동안 습작 영화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심지어 아직도 단편영화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1세대 비평가들도 있다. 그러나 최근 (비평가들을 포함해) 영화계의 시각은 크게 변했다. 특히 20대 감독들의 아카데미 영화들이 극장 개봉과 영화상 수상을 휩쓰는 것을 보면서 한국 영화가 가파른 질적 성장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동시에 단편 영화도 하나의 형식적 요소로 봐야 한다는 담론이 우세해지고 있다. 아직 ‘관객들이 극장에서 단편 영화를 선택해 줄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아있지만, 나는 이것을 희망적으로 본다. 영화제 등에서 관객의 단편 영화 관람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실적인 점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만난 단편 영화들은 하나 같이 수준 높은 프로덕션 퀄리티를 기반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영화영화제>에서 선정한 3편의 단편 영화들 역시 독립영화의 정신을 이어가며, 전체적인 프로덕션 퀄리티를 비롯해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양궁소녀>에서 주인공인 중학생 수민은 갇힌 공간에서 시작해 탁 트인 열린 가능성의 공간으로 나간다. 빌딩의 빽빽한 간판과 화면의 측면에 치우쳐진 구도는 수민이 처한 상황을 대변한다. 과녁에 시원하게 꽂히는 화살은 상징적으로 목표 없이 일단 경쟁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뛰기부터 하는 강박적인 불안과 대비된다. 과녁에 활이 턱 꽂히는 순간의 명쾌한 인상은 수민을 걱정하는 주변부의 시각을 자연스럽게 지워낸다. <기대주>의 경우 수중촬영을 시도한다. 인물들이 물살을 헤치고 나가는 장면들은 그 감각 자체로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전달한다. <육상의 전설>은 조카인 ‘우리’와 어린 이모 ‘춘희’가 숨차게 달려 나가는 속도의 감각을 중심 정서로 가져간다. 이는 결말부에 이르러 바톤이 넘겨지는 정적인 순간과 대비되며 두 여성 인물이 우연히 맺게 된 연대의 목표가 무엇인지 묵직한 감동으로 전달한다. 


 단편 영화를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제한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 단편 영화는 다양한 시네마틱 언어(cinematics/cinematic style)를 실험할 수 있는 좋은 형태다. 

  작은 영화도 충분히 아트하우스 영화의 심도를 가질 수 있다. 오히려 영화미학을 표현하며 발 빠르게 동시대성을 반영하는데 유리한 점도 있다. 젊은 작가는 가장 치열하게 동시대의 문제로부터 해답을 구하는 존재들이다. 젊은 감독 역시 필연적으로 (이것이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최신의 사회적 변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갈등과 불합리함을 빠르게 포착하고 이 아이러니 속에서 생존을 위해 나름의 돌파 방법을 찾아낸다. 그들은 시대에 대해 분석하며 저마다의 창의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석을 펼쳐낸다. 

  신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현재 국내의 영화산업에서 자본과 전문성 있는 프로덕션은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담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자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의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현실에서 맞닥뜨린 세대가 치열한 방식으로 생존을 위해 구성해 나가는 담론이야말로 목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동력이며, 컨템포러리라 이름 붙은 문화예술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어느 장르와 문화에서도 젊은 세대가 그 산업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그 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 작은영화영화제 >와 같은 프로그램의 가치가 더 많은 곳으로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 


영화 <양궁소녀> 스틸컷 이미지


< 양궁소녀 > 김수림감독

  수민은 전형적인 ‘대치키즈’로 보인다. 이비인후과 병원을 운영하는 엄마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수민은 싱글맘에게서 자란 혼외자일 것으로 추측된다. 엄마의 학업진단에 따라 수민의 스케줄은 변한다. 수민은 보통의 ‘대치키드’가 그러하듯 상황에 따라 과외를 추가하거나 학원을 바꿔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과제들을 꾸역꾸역해 나간다. 게임 안에서의 수민은 승리를 ‘하드 캐리’하는 주도적이고 자신감 있고 활발한 십 대지만 현실에서 수민은 NPC(non-player character)처럼 학원과 엄마의 병원을 오갈 뿐이다.

  영화는 강박적으로 보일 만큼의 빽빽한 학원가를 자주 비춘다. 입시와 관련 없는 사람이라도 이 촘촘하게 짜인 학원 간판들을 보다 보면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건 다만 입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과잉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다. 대도시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얼핏 이들이 유능하고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강박적이고 불안한 개인일 따름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은 생존에 대한 협박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이 사회의 룰을 받아들이고 있다. 

  수민은 체력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이유로 검도 학원에서 양궁 학원으로 종목을 바꾼다. 평소 FPS 게임 실력자였던 수민은 금방 양궁에 흥미를 갖는다. 문제는 양궁 실력이 늘면서 갈등이 생기는 것인데, 수민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치열하게 입시 준비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민은 의사인 엄마를 닮아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십 대가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엘리트 체육을 목표로 하는 경우 외에는 없다. 중학교에 들어가 운동을 시작하자면 이미 너무 늦은 시작이고 더군다나 양궁이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곳이 이 한국이다. 승리하지 못할 것에 대해서 시작하는 것은 엄청난 자원의 낭비라고 많은 사람들은 속단한다. 이런 생각을 아이들 역시 그대로 답습한다. 하지만 수민은 칭얼대는 표현보다 훨씬 심각하게 이에 대해 고민한다. 수민은 과연 어른들을 설득해서 처음으로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낀 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수민의 표정과 눈빛이 이미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는 점이다.   


영화 <기대주> 스틸컷 이미지


<기대주> 김선경감독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거 유세 기간, 그녀를 지지했던 지인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는 이모뻘로 후보자와 비슷한 시대를 보냈다. 선거기간 동안 그녀는 다시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레트로한 정장을 차려입었고 어딘지 신나 보였다. 나는 그녀가 후보자에게 자신의 어떤 시절을 투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청년이었을 시절 사회 구성원으로 느낀 어떤 주체성과 힘 같은 것을 다시 느끼는 것처럼 활력이 되살아나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모친에게서도 그 비슷한 것을 자주 느낀다는 것이다. 모친은 가끔 나에게 자신을 투사하며 나의 도전이나 성취에 몰입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비슷한 연유일 것이라고 어버이연합이나 태극기 부대 회원들의 동기를 이해하고 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인 명자가 중학생 지규에게 느끼는 감정이 위에서 말한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 있다. 명자는 젊음의 시기에 대해 자신을 투사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애써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나 질투심, 과잉된 경쟁심 같은 것도 없다. 그녀는 단지 자신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에게서 새롭게 발견된 동기, 경쟁심, 이기고 싶은 순수한 동기가 주는 활력을 발견한 것이다. 타자로 여기고 있었던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되돌리는 것 같은 극적인 사건이 생겨버린 것이다.

  동네의 스포츠 센터에서 오랫동안 수영을 해온 명자는 우연히 옆에서 샤워하는 지규를 본다. 이제 막 여자티가 나기 시작한 유연한 몸을 흘깃 보면서 어떤 기분을 느낀다. 중년인 그녀의 눈에 중학생쯤 된 듯한 지규가 얼마나 뽀얗고 예쁜 나이로 느껴질지 알만하다. 샤워장의 습기로 인해 거울은 명자의 모습을 비춰주지 않는다. 단지 관객의 눈에만 세월이 느껴지는 그녀의 등짝이 보일 뿐이다. 명자가 지규에게서 문득 느낀 그것은 부러움이나 질투같이 간단히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빈자리에 쏟아지는 샤워기의 물줄기처럼 불가역적으로 흘러가 버린 어떤 것에 대한 뿌연 기시감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지역의 수영 대회에 나가기 위한 팀을 뽑는 시합이 펼쳐진다. 명자도 여기 참가하는데 지규와 동점으로 결승점에 들어와 둘은 재대결을 펼치기로 한다. 명자는 자신의 수영 실력을 처음으로 인정받는다. 자신이 지규와 같은 실력을,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명자 자신을 ‘스페셜’하게 느끼도록 한다. 명자는 귀동냥으로나마 수영을 더 잘할 수 있는 그런 전문적인 테크닉을 배우고 싶다. 이미 팀에 뽑힌 청년들은 그런 명자를 비웃는다. 대회를 지도할 강사는 은근히 명자에게 이 경쟁에서 빠져주기를 바라는 눈치를 주지만 명자는 그런 괄시는 느끼지도 못할 만큼 지금 수영을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젊은 선수들과 함께 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명자는 즐겁다.

  재대결을 앞두고 명자는 어물전 앞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명자는 어물전 주인이 추천한 힘 좋고 빠른 생선을 사와 재대결을 위한 응원의 잔칫상을 손수 차려 먹는다. 방어 크기의 생선을 통으로 굽고 다른 요리들과 함께 정성껏 차린 한 상이다. 그러고 보면 명자가 지규보다 힘은 좋을 것이다. 몸도 물고기와 유사한 유선형이고, 그리고 어쩌면 결과가 정해진 게임은 아닐지도 모른다. 

  재대결은 예상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지규는 지규이고 명자는 명자다. 승패는 결정되었지만, 지규와 명자 사이에 어떤 우정 비슷한 것이 생긴다. 그 연대로 인해 누구도 지지 않고 새로운 날의 수영이 새로운 헤엄이 다시 시작된다.


영화 <육상의 전설> 스틸컷 이미지


< 육상의 전설 >

  우리는 급하게 이모의 장례식에 불려 온다. 평소 가까이 지낸 것도 아니고 관심도 없었던 사이라 어쩌면 남에 가까운 친척의 장례식이다.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이모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엄마를 통해 듣게 된 이모는 술과 담배로 기억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육상에 재능이 있었던 이모는 지역에서 전설적인 선수로 이름이 날 뻔했지만, 이기적인 장남의 폭력적인 결정으로 인해 미래가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시절의 그럴만한 인물이다. 

  우리는 어쩐지 이모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우연히 발견해 신게 된 운동화 때문인지 우리는 재능을 꽃피우려던 시절의 이모 ‘춘희’를 만나 함께 달리게 된다. 이모를 따라 달리던 우리는 자신이 과거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곳은 이모의 인생이 망가진 그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모의 미래를 사사롭게 망치고 돈을 챙겨 외출하는 이기적이고 괴팍스러운 외삼촌을 목격한 것이다. 우리는 얄미운 나머지 충동적으로 삼촌의 뒤통수를 향해 운동화를 던지는데 그 일로 외삼촌은 급사해 버린다. 어찌 된 일인지 알 길도 없이 꿈같은 과거의 순간에서 현실로 돌아온 우리는 이모의 미래가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육상의 전설이 될 뻔했던 ‘춘희’가 고등학교에 무사히 진학한 것이다. 하지만 춘희가 고등학교의 육상부에 진학했다고 해서 무사히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 고등학교에는 촌지를 무지하게 밝히는 코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가 다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운동화를 신고 다시 춘희를 향해 달린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돌아가도 춘희가 처한 시대적 한계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모를 만나러 간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춘희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모는 여러 말 없이 우리에게 바톤을 건넨다. 


다음글 반출생주의에 대한 소고
이전글 명암으로 표현된 현실과 망상의 모호한 경계, <세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