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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다 갈매기는>(2024, 박이웅), 농담처럼 사소화된 편견과 차별2024-12-02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이미지



<아침바다 갈매기는>(2024, 박이웅), 농담처럼 사소화된 편견과 차별


윤필립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누구나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넌더리가 나는 순간이 있다. 진저리를 칠 정도로 그 순간이 싫은 이유는, 매일처럼 반복되는 상황과 그것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보일 언동 하나하나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치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은 채 마치 나만 두고 모두에게 모범 답안이라도 공유가 됐거나 다들 똑같이 어디 이름 모를 학원에서 배워 오기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뻔하게 굴 때, 우리는 더 이상 개선의 여지도 없고 그 어떤 작은 바람도 부질 없는 현실 앞에서 그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어지곤 한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2024, 박이웅 감독)에는 그러한 순간에 한 개인이 느끼는 절망감과 무력감이 잘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지금도 그 지리멸렬한 상황 한가운데서 몸부림 치고 있을 나와 같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에 의한 각성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끊어내 버려야 비로소 끝이 나는 그 상황은 어느 작은 어촌 마을에서 펼쳐진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이미지2


영국(윤주상)은 작은 어선을 모는 선장이다. 매일 아침 갈매기가 새벽 어스름을 뚫고 먹이 활동을 위해 날아오르듯 영국도 오늘 아침 어김없이 바다로 나간다. 영국의 조업을 돕기 위해 배에 동승한 용수(박종환)는 언젠가부터 일에 대한 열심도, 삶에 대한 의욕도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다 조업 중 그물이 발에 걸려 위기에 처하고, 영국은 그런 용수를 구하다 한쪽 팔목이 깊게 찢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영국은 급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그순간 용수는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것이 무의미함을 느끼며 자신의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암암리에 영국과 일을 꾸민다. 처음에는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던 그 일은 두 남자의 의도와 달리 마을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용수의 어머니 판례(양희경)와 아내 영란(카작)은 이 일로 인해 깊은 슬픔에 빠진다. 과연 두 남자는 자신들이 꾸민 이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이미지3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줄거리를 보면 그것은 마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얼어나는 일장춘몽의 소동극이자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소시민적 일상에 관한 이야기일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을 연출한 박이웅 감독은 그러한 바닷마을 사람들의 강호시가적 일상보다는 그 일상에서 소외된 자들이 마주하는, 우리 사회가 공식적으로 소외시킨 그들의 지리멸렬한 삶과 인생에 주목한다. 이것을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동시대적 미덕이라고 본다면, 이 작품에서 그러한 소외된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어촌 마을로 유입된 이주민들과 도망 치듯 마을을 떠나거나 다시 돌아온 이탈 주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이미지4


그중 핵심 인물은 베트남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 영란(카작)이다. 영란은 용수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가정을 꾸렸음에도 마을 사람들은 영란을 외부인처럼 대한다. 그들의 인식 속에서 영란은 ‘우리’에서 배제되고 ‘동남아’로 대표되는 ‘그들’ 중 한 사람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영란을 타자화하며 기고만장한 태도로 일관하는 마을 사람들도 대형 횟집 사장 앞에서는 큰소리 한번 속 시원히 내지르지 못하는 약자들일 뿐이다. 이를 통해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우리 사회 안에 은연중에 형성되어 있는 관계사슬을 꼬집는다. 그것은 건전한 인간관계가 아닌 오로지 경제 관념으로만 먹이사슬처럼 위계화되어 서로 먹고 먹히는 비정한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사슬 안에서 인간은 상대적 강자로서 상대적 약자인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지만 그것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시 약자이기를 자처하여 상대적 강자인 자산가 앞에서 자세를 낮춰야만 한다. 이러한 인간의 위선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한 구성원들을 하대하고 조롱하는 모습에서 극대화된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이미지5


이렇게 박기웅 감독의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작은 거짓말 하나가 불러일으킨 마을 내 혼란과 그 때를 틈타 공공연연하게 드러나는 마을 사람들의 위선이 지닌 폭력성을 그리고 있다. 이와 함께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그 폭력성이 우리 사회 안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그래서 우리가 인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폭력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멍들어 가고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작품 전반에 걸쳐 설정된 공간이 어촌 마을에 한정되어 있고, 대사를 중심으로 삶의 한 국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치 연극이나 TV 단막극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단점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러한 이야기로도 영화적 상상력과 서사적 미덕이 충분히 발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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