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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로컬 픽, 시간과 빛: 10%의 사건과 90%의 반응> : 초심자들2025-02-28
로컬 픽 시간과 빛 2025 부산로컬시네마 데이 Local Pick Bright Times 10%의 사건과 90%의 반응 2025.2.28.(금) 19:30 인디플러스



<로컬 픽, 시간과 빛: 10%의 사건과 90%의 반응> : 초심자들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영화 <GAVI> 스틸컷 이미지


1. <Gavi>

김민근 감독의 단편 <Gavi>는 스페인의 바야돌리드에서 현지 배우들과 스텝들과 함께 촬영한 영화다. 유네스코 지정 영화 창의도시들의 영화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부산의 영화인은 해외에서, 해외의 영화인은 부산에서 영화를 만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작가의 거주 공간 등 경제적 지원을 통해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의 결과물이다. 

보육원 출신의 청년 가비는 호텔 청소부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행방을 계속 찾으며, 사장의 멸시와 임금 체불을 견디며 호텔을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가비는 202호를 청소하다 팔찌를 줍는다. 팔찌의 주인인 여자는 아마도 돌아갈 가정이 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 영화는 둘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선의의 순간을 차분하게 담는다. 

가비에게 주어진 시험은 이런 것이다. 세상이 나에게 악하게 굴 때, 나 또한 악하게 맞서야 하는가? 가비와 호텔에서 일하는 친구 페드로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는 투숙객의 분실물들을 장물로 팔아넘기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가비가 사장에게 혼나고 있을 때 여자가 가비를 구해준다. 그녀를 사랑한다던 유부남은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고 다시 그녀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가비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준 것일까. 가비가 그녀에게 느낀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뎌야 하는 버려진 사람들끼리 느끼는 동병상련일까. 그녀의 친절로 인해 가비는 페드로와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영화 <Gavi>는 세상은 차갑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따뜻한 구석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영화 <오프사이드> 스틸컷 이미지


2. <오프사이드!>

권용진 감독의 단편 <오프사이드!>는 용을 꿈꾸는 이무기들의 이야기다.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거장 감독이 되고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고 웃프다. 이 영화는 그 현실을 직시하면서 웃음과 씁쓸함을 포착해낸다. 아직 거장도 아니면서 허세가 심한 감독 홍석, 그런 홍석에게 잘 보여서 뜨고 싶어 하는 야심만만한 배우 지망생 소연, 그런 소연을 사랑하지만 감독 홍석 때문에 소연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는 배우이자 감독 지망생 재욱. 삼각관계의 세 사람. 

<오프사이드!>는 형식이나 내용 모두 한 두 마디로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현란하고 복잡하다. 이야기는 영화 본편과 그 영화가 촬영되는 영화 현장, 현실과 상상,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마구 무너뜨리고 뒤섞는 난장 속에서 펼쳐진다. 영화 속의 극중극 영화들은 흑백 무성영화, 촬영감독 엠마뉴엘 루베즈키 스타일의 기나긴 스테디캠 촬영, 홍상수 스타일로 연출된 줌이 나오는 술자리 장면 등등 다양한 영화 패러디를 통해 표현되는데, 이는 독립영화, 혹은 영화학도들의 영화 제작 현장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자 일종의 거울 치료다. 그런데 이 거울 속에 비치는 사람은 누구인가. 감독 자신인가. 아니면 감독이 바라본 우리들 혹은 그들인가. 그게 누구든 간에, 누구라도 용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천에서 용 나기 점점 더 힘들어지는 세상이니까.


영화 <드라이버> 스틸컷 이미지


3. <드라이버>

김기익 감독의 단편 <드라이버>는 정직함과 단순함이 미덕인 영화다. 감독 본인이 고등학생 때 공장 실습을 나갔던 실제 경험을 토대로, 공장 노동자 두 사람의 고단한 하루를 진솔하게 보여준다. 실습으로 공장 일을 하게 된 고등학생 지훈은 상사인 과장 우석과 함께 일한다. 우석은 우리가 생각하는 과장, 대리급 중간 관리자 인물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거래처 직원에게 깨지고, 공장의 부장에게도 깨지고, 설상가상 빚 독촉에도 시달린다. 우석은 스트레스와 짜증, 피로에 시달리며 종종 부하직원 지훈에게도 짜증을 내지만 그럼에도 지훈을 보호하려 애쓴다. 지훈은 그런 우석에게서 어른이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를 본다. 미래에 자신도 감당해야 할 무게.

단단한 기승전결의 구성이 아닌, 에피소드들의 느슨한 나열처럼 보이는 다소 심심한 이야기가 아쉽지만,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그 약점을 보완한다. 박홍준 감독의 영화 <해야 할 일>에서도 노동자를 연기한 서석규 배우는 여기서도 우석 역할을 맡아서 공장 점퍼와 한 몸인 듯 자연스럽게 노동 계급의 고단함을 표현한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늘 주눅 들어있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눈을 하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소년 지훈을 연기한 이서한 배우의 얼굴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드라이버>의 마지막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2월인데 아직 춥네요.” “곧 뭐 풀리겠지.” 그렇다. 우리 모두가 아직은 추운 시간을 견디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오게 될 봄처럼, 우리에게도 따뜻한 시간이 올 거라 믿는다. 세 편의 단편을 만든 감독들에게도, 이 영화들을 보게 될 분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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