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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탐욕을 초현실적으로 다룬 케냐 영화 <탈리야>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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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을 초현실적으로 다룬 케냐 영화 <탈리야>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생애 첫 케냐 영화 <탈리야>(아놀드 므완질라, 2021)를 감상했다. 지난 5월 18일부터 6월 14일까지 영화의전당과 한·아프리카재단, 주한아프리카외교단이 개최한 ‘2023 아프리카영화제’를 통해서였다. 모두 12개 나라 12편의 영화가 부산 영화의전당, 서울 KT&G 상상마당 홍대에서 오프라인으로 상영한 후, 온라인으로도 상영한 영화제였다. (매년 열리는 영화제이니 내년도 기대해 본다.)
케냐 영화를 비롯해 아프리카 영화는 자주 만나기 쉽지 않다. 개봉하는 영화는 거의 본 기억이 없는데, 주로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아왔다. 그렇다고 아프리카 지역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나름 떠오르는 영상이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드넓은 초원, 사파리, 사막, 사자, 코끼리 등과 같은 자연의 모습, 내전이나 기아 등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 등 말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 <탈리야>는 그런 편견과는 거리가 좀 있다. 초원 위 동물이 나오지도, 도움받아야 할 아이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대신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나름의 사연을 안고, 다양한 모습으로 아웅다웅 살고 있다.
<탈리야>에서 발견한 보편성과 초현실적 특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사람 사는 건 마찬가지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보편성도 지니면서, 이야기를 표현하는 나름의 초현실적 특성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지만 익숙해지면 꽤 재밌다.
인간의 탐욕은 본능인 걸까?
보편성에서 시작해 보자.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모든 인간은 탐욕스러울 수밖에 없는 건지 궁금해진다. 영화 안팎에서 자주 보아온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 바부는 어부다. 어느 날 밤, 바다에서 인어가 그물이 걸린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인어를 보고, 바부는 마을의 전설로 들어본 탈리야라고 생각한다. 탈리야는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준다고 알려진 물의 정령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바부는 탐욕과 폭력을 드러낸다. 바부는 다친 탈리야를 물로 돌려보내는 대신, 자기 집에 가두고, 소원을 들러 달라 강요한다. 부자로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며 돈을 벌기까지 한다.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탈리야를 구경한다. 그리고 틈틈이 자신의 소원도 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자로 만들어 달라 애원한다. 그러다 탈리야가 가진 다른 힘을 확인하게 되고, 마을의 리더는 그녀를 무기로 사용하려 한다. 탈리야를 빼돌리려는 사람들, 그들을 막고, 자신들이 빼돌리려는 사람들이 엉키면서, 밤 바닷가에서 파국이 펼쳐진다.
모두가 탐욕적인 건 아니다. 바부의 아들 오비와 오비를 돌보고 있는 자바리는 탈리야를 돕는다. 오비는 장애를 갖고 있고, 자바리는 아이를 잃은 아픔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약자들끼리 연대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폭력도 드러난다.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부에게 왜 아들 오비를 관습대로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가 말하는 관습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바구니에 담아 버리는 것이다. 건강한 나라를 건설하려면, 건강한 사람들만 필요하다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비록 오비를 잘 돌보고 있지는 않지만, 버리지 않은 걸 보면, 바부도 마냥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사람은 아닌 듯하다. 이런 바부를 통해 오히려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여러 면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모습 말이다.
꿈인 걸까? 환상인 걸까?
지구 반대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의 민낯은 초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마냥 끔찍하지 않다. 시간과 공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현실과 꿈, 환상도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이나 무의식을 비논리적, 비현실적으로 소설, 그림, 영화 등 속에 그려내는 것은 대표적인 초현실주의적 특성이기도 하다.
사실 탈리야가 정말 탈리야 인지도 분명치 않다. 전설 속의 정령이 현실에 나타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물론 탈리야의 외모는 인어와 비슷하긴 하지만 말이다. 일단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저 여자는 누구지’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영화는 끝까지 시원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헛갈리게 한다.
탈리야가 등장인물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지, 등장인물이 꿈을 꾸는 건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장면이 툭툭 튀어나온다. 예를 들어 실컷 주먹질하며 싸웠는데, 컷만 바뀌면 다른 곳, 다른 상황이다. 뙤약볕 아래에서 주저앉았는데, 앉고 보면 컴컴한 밤이다. 순간순간 편집을 통해 순간이동이나 공간이동과 비슷하게 현실과 비현실, 꿈과 환상, 혹은 전설을 오고 간다.
영화 처음에는 잠시 ‘저 사람이 꿈꾸나? 상상하나?’ 생각했지만, 갈수록 미궁 속에 빠진다. 친절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데, 아마도 탈리야가 전설 속의 탈리야 인 듯하다. 아마도 그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인 것 같다.
옛날이야기인 걸까?
영화 <탈리야>는 남자아이가 여자 어른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목소리로 시작한다. 바부의 아들 오비와 자바리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는데, 자바리는 선조들의 이야기라면서, 정말 있었던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을 활용한 자바리가 해주는 옛날이야기일 지도 모르겠다.
전설, 소원, 정령, 악령 등을 언급하는 이야기가 영화 내내 펼쳐진다. 영화를 통해 자주 보는 외모의 사람들도 아니고, 많은 게 낯설기도 하지만, 결국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낯익은 인간의 이야기다. 옛날이야기로부터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인간의 탐욕, 폭력 그리고 꿈, 환상,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탈리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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