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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54년 만에 다시 본 만화영화 '홍길동'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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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일 ‘영화의전당’에서 만화영화 ‘홍길동’을 봤다. 까마득한 세월인 54년 전에,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가서 함께 봤던 바로 그 영화… 이제 60대 중반에 이른 나는 그 영화를 다시 보면서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흘러간 옛 시절과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젖어서… 그동안 수없이 많은 영화를 봤으나 그날 다시 본 ‘홍길동’만큼 감동을 주고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 영화는 없었다. 돌아보니 그 만화영화 ‘홍길동’이 내 인생의 영화였다.
예전에 아버지는 통영에서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셨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바느질에, 틀질에, 다림질을 하셨는데 주말도 휴일도 없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취미랄 것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버지도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이 오면 동네 영화관에 가셨는데 그게 유일한 취미이자 생활의 낙이었던 듯했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볼만한 영화가 있으면 나를 데려가기도 하셨다. 지금도 아버지를 따라 함께 봤던 영화들이 기억난다. ‘벤허’ ‘야성의 엘자’ ‘대장 부리바’ ‘007 위기일발’ 등 할리우드 영화부터 ‘빨간 마후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 한국 영화에 이르기까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1967년 어느 여름밤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통영극장이란 영화관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그날 본 영화가 바로 ‘홍길동’이었다. 그 당시는 집에 TV도 없었던 시절이라 만화영화란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날 난생처음으로 만화영화를 봤으니 얼마나 신기했던지. 분명히 만화 그림인데 영화와 똑같이 살아서 움직이지 않는가. 더구나 만화 그림의 인물들이 말까지 하면서… 화면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총천연색 컬러였는데 색채가 너무 예뻤다. 무엇보다 어린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박력 있게 때로는 섬세하게 움직이는 화려한 만화 그림이었다. 성우가 녹음한 것이 분명한 주인공들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매력적이던가.
1960년대 어린이들의 오락거리 제1호는 만화였는데 요즘으로 치면 TV와 PC와 게임을 합친 것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 동네마다 만화방이 있었고 당연히 나도 만화에 푹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날밤 영화관에서 살아 움직이는 만화영화를 봤으니 얼마나 신기했던지. 너무 재밌었다. 양반집에서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구박받고 자라다가 집을 떠나서 입산수도하여 도술을 배우고, 나중에 탐관오리들을 징치했다. 홍길동이 도술을 부려 구름을 타고 호쾌하게 하늘을 나는 장면이 있는데, 잘생긴 홍길동이 한 손을 이마 위에 대고 늠름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 멋진 장면을 특히 잊을 수가 없었다. 이후 나는 ‘홍길동’의 포스트를 구해서 노트에 그 장면을 몇 번이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날 ‘홍길동’을 보고 내가 너무 좋아하자 아버지도 퍽 만족하셨던 것 같다. 이후 만화영화가 영화관에서 상영이 되면 아버지는 나를 꼭 데려가셨다. 그래서 ‘호피와 차돌바위’란 만화영화도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영향으로 나는 훗날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만화영화를 보기도 했다. 디즈니의 화려한 만화영화를 보면서도 어릴 때 봤던 ‘홍길동’을 떠올리며 옛날의 향수에 젖고는 했다. 1990년대 미국에 다니면서 LA에 가게 되면 당시 30대란 나이에 맞지 않게 디즈니랜드에 가곤 했는데 어릴 때 봤던 만화영화의 추억 때문이었다. 디즈니랜드에서 온갖 만화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들을 보면서도 나는 엉뚱하게도 한국의 ‘홍길동’을 떠올리고는 했다.
이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결혼을 하고서는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에 만화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재미있어 하는 걸 보면서 나는 옛날에 아버지를 따라가서 ‘홍길동’을 봤던 그 날을 떠올렸다. 가끔 옛 추억을 찾아 옛날에 봤던 ‘홍길동’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비디오방이나 CD 가게를 찾아봐도, 인터넷을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엔 한국영화진흥공사에 문의를 해봤지만 거기도 없다고 했다. 1960년대 한국영화 필름 중에 없어진 것들이 많은데 더구나 만화영화는 더욱 그럴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많은 세월이 흘렀고 나에게서 ‘홍길동’도 잊혀져갔다. 영화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2016년 여름에 돌아가셨는데 장례 후 나는 고향 집에서 옛날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뜻밖에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여름방학’ 책을 발견했다. 당시 방학 책에는 맨 앞장에 방학 기간 중 ‘오늘의 한 일’을 간단히 적도록 했는데, 그곳에는 놀랍게도 아버지와 함께 봤던 ‘홍길동’이 적혀 있었다. ‘1968년 8월 25일 일요일, 만화영화 홍길동을 봤다.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연필로 삐뚤삐뚤 적었던 그 글을 보자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봤던 ‘홍길동’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니…
그런데 작년 초에 ‘영화의전당’ 홈페이지에서 2021년 3월 1일 ‘홍길동’을 상영한다는 걸 보게 되었다. 내가 오랜 세월 동안에 추억에 젖었으며 다시 보고 싶어 했던 바로 그 ‘홍길동’이었다. 나는 영화 관련 사이트에서 ‘홍길동’을 검색해봤는데 그 영화가 대단한 영화였다는 걸 그때야 알게 되었다. ‘홍길동’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된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로 제6회 대종상 문화영화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일본에도 수출했고, 유명 만화가인 신동우 화백의 ‘풍운아 홍길동’을 만화로 만들었다고… 한국에서는 그 필름이 없어졌는데 일본에서 발견된 프린트를 디지털 복원 작업으로 40년 만에 다시 상영되기도 했다고…
드디어 2021년 3월 1일, 54년 만에 ‘홍길동’을 보러 ‘영화의전당’에 가던 날, 60대 중반의 나이건만 나는 설레었다. 뭐랄까, 수십 년 동안 가지 못했던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기분이랄까. 영화관 좌석에 앉아 상영을 기다릴 때는 이산가족 상봉을 기다리는 듯한 기분까지…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어 화면에 ‘홍길동’이 펼쳐지자 나는 감격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열 살짜리 소년으로, 아버지를 따라 영화를 보러 갔던 그 날로 돌아가는 듯했으니… 1967년 8월 25일, 상영 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가 찌르릉~ 나면서 천정에 달린 형광등이 꺼지고, 뒤쪽에서 영화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차르르~ 나면서 화면에서 현란한 컬러 만화가 움직이든 그날 밤으로…
영화가 끝났을 때 내 눈에는 눈물이 배었다. 54년 전 처음 ‘홍길동’을 봤던 그 날 생각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왔으니… 그러고는 가슴이 훈훈해 왔다.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고 옛날에 ‘홍길동’을 봤던 통영극장도 없어진 지 오래였으니… 그날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만화영화를 좋아하리라 생각하셨던 듯, 그리고 여름방학을 끝내고 곧 개학을 앞둔 아들한테 만화영화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셨던 듯… 그날 아버지가 보여줬던 ‘홍길동’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선물이 된 셈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영화는 ‘벤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아니었고 바로 만화영화 ‘홍길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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