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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 않는 아이> 혹은, 울지 못하는 아이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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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혹은, 울지 못하는 아이
김경욱(영화평론가)
이혁종 감독이 연출한 <울지 않는 아이>는 2022년, 충남 아산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이 사건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6살 남자아이가 굶어서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30대인 엄마는 보름 넘게 아이를 혼자 방치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6살 여자아이 수아는 엄마 다영이 집에 있을 때는 세탁기 안에 갇혀있다. 수아의 허리에는 집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쇠사슬이 묶여있는 상태다. 다영은 자신의 팔자가 풀리지 않는 건 모두 수아 때문이라며 걸핏하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다 다영은 라면 한 개를 던져 놓고 수아를 혼자 내버려 둔 채 오랫동안 집을 비운다. 애인을 만나 사기행각을 벌이는 다영의 관심은 오로지 돈뿐이다. 이혼하면서 수아를 맡은 이유도 예전의 시어머니에게서 매달 양육비를 뜯어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심지어 다영은 수아의 장기까지 팔아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더 글로리>(2022) 같은 드라마에서, 돈에 눈이 멀어 딸을 위험에 빠뜨리는 엄마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다영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악랄한 엄마가 아닌가 싶다.
수아는 엄마의 방치 속에 굶주리다 결국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두 인물이 이를 알아채게 되는데, 하나는 옆집에 혼자 사는 아저씨 정민이고, 다른 하나는 수아의 할머니 순임이다. 정민은 옆집에서 나는 소리와 창가에 서 있던 수아의 모습을 얼핏 보고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추정한다. 영화가 시작한 지 40분 정도 되었을 때, 앞으로 정민이 가련한 수아를 구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았는데, 이때부터 순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순임은 수아의 생일에 선물을 사 들고 빌라에 찾아왔다가 정민으로부터 다영이 집을 비운 지 오래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수아의 위기 상황을 직감한다. 순임은 정민의 도움을 받아 죽어가던 수아를 병원에 데려가 목숨을 구해낸다. 그러나 순임은 다영의 손아귀에서 수아를 완전히 구해내기 위해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이후 영화는 순임이 다영을 제거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순임은 기절한 상태로 시신 가방에 넣어진 다영을 깊은 산속의 동굴로 혼자 죽을힘을 다해 끌고 간다. 이 장면이 무려 5분 동안 지속된다. 그런 다음 순임은 다영이 수아에게 한 것처럼, 그녀를 쇠사슬에 묶어 놓고 굶어 죽게 만든다. 순임이 독약을 먹고 먼저 죽는다면, 다영은 동굴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수아를 위한 할머니의 복수이자 수아를 위한 희생이다.
아마도 감독은 이 장면의 아이디어로 인해 영화를 연출할 생각을 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영화를 보면, 엄마의 학대로 고통받는 수아 보다는 순임이 다영을 해치우는 치밀한 계획을 생각해내고 악전고투하며 실천하는 과정을 그리는 데 훨씬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민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순임이 수아를 직접 찾아가기 전까지 정민이 주인공처럼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주요 인물이 아닌 것 같았던 순임이 영화의 중반 이후에는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주도해나간다. 나이 많은 순임이 다영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정민 같은 조력자가 필요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비중 있게 다루어져서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차라리 영화의 시작부터 순임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처음에는 다영의 속임수에 넘어가 양육비를 보내다가 차츰 수아의 상황을 알게 되는 과정으로 플롯이 구성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런데 시골에서 오빠와 함께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였던 순임은 젊었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그토록 치밀한 살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거의 어른으로 자란 수아가 동굴 입구에 꽃다발을 놓은 다음 밑에서 기다리던 큰할아버지에게 밝은 표정으로 “할머니를 만나고 왔다”고 말하고,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친엄마에게 죽을 정도로 학대받아 울지조차 못했던 아이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란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며 안도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수아의 고통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기 때문에 그 호소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오히려 수아의 엄마와 할머니의 시신이 외부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채 여전히 그 동굴에 남아있나 하는 다소 엉뚱한 의문이 들게 하는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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