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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 그때의 경험으로 지금의 나를 빚는다 - 1980년대의 파편들과 <정돌이>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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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경험으로 지금의 나를 빚는다 – 1980년대의 파편들과 <정돌이>
송아름(영화평론가)
선한 이들이 모여 악당을 밀어내고 행복한 결말로 향하는 이야기,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따뜻함이 가득찬 이야기는 생각지 못한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바라마지않지만,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상상하지 않던 일들이 생각보다 사소한 계기로 성취되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1980년대 귀철이의 서울행이 그랬던 것처럼. 다큐 <정돌이>는 집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년이 1980년대라는 시간과 대학생 형, 누나들을 만났던 고려대라는 공간을 거치면서 어떤 삶을 그리게 되었는지를 짚어간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14살의 소년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배회하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보이는 형에게 말을 걸었다. 차마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었던 형은 자신이 다니던 대학으로 소년을 데려갔고, 소년에겐 이제 새로운 이름과 친구와 집이 생겼다. 모든 우연이 겹친 순간들은 소년을 새로운 삶으로 이끌고 있었다.
<정돌이>는 송귀철이었던 소년이 ‘정돌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그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먼저 설명한다. 고려대의 정경대에서 머무르게 되어 ‘정돌이’로 불렸던 소년은 자신의 얼굴만 보면 밥을 먹었느냐고 묻는 형, 누나들의 관심 속에서 자라난다. 스스로 처음이라 느꼈던 누군가의 관심과 손길은 정돌이가 이곳에서 살고 싶은 이유였다. 그리고 이 온기는 형과 누나들이 하는 일을 알고 또 따라다니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명확히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인지하긴 힘들었고 어떤 강요도 없었지만 정돌이는 형, 누나들과 함께 시위를 나서며 정경대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시위의 현장을 눈에 담아갔다. 정돌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혼란이 몰아치던 1980년대 중후반을 대학에서 보내며 갑작스레 사라진 이들을 궁금해 하며, 또 학교 어디선가 들리던 장구소리에 홀리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정돌이가 어떻게 1980년대의 격랑에 들어섰는지를 보여준 후 영화가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정돌이가 바라보았을 당대의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는 정돌이를 돌봐주었던 당시의 대학생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정돌이가 이해하지 못했던 바로 그 상황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소년의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는 녹화사업, 4.13 호헌조치, 그리고 6.10 민주화 항쟁과 이 이후의 분열 등은 당사자들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사이 사이에 놓인 집회와 고문, 누군가의 죽음 등을 바라보게 한다. 이처럼 소년의 목소리를 빌리는 것은 <정돌이>가 이때의 상처를 쉽사리 왜곡된 방향으로 의미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담는 듯 보인다. <정돌이>는 대학생들이 경험한 상처를 그때의 어쩔 수 없던, 혹은 그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동력처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목소리는 1987년의 승리나 자부심보다 자신들의 과오를 먼저 떠올리며 인정하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정돌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문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으로 느꼈던 안도감을, 그래서 죄책감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아낸다. 또한 1987년 6월을 전후하여 발생했던 학생 운동 내의 헤게모니 싸움이 얼마나 학생 운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는지, 이론에 빠진 진영논리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것이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마치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오점 없이 나아갔던 것 같이 그려졌던 두루뭉술한 환상들은 당시의 균열을 들춰내는 진술들 속에서 미처 다듬어지지 못했던 그때를 솔직히 드러낸다.
학교를 나선 이후의 기억들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인터뷰이들은 졸업 후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선택했던 일들이 내가 얼마나 바깥 세상에 무지했는가를 확인시켜주는 경험이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또한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이 자신의 신념을 의심받아야만 하는 순간과 마주해야 하는 장애물이 되어버린 현실도 천천히 되살려 낸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며 전력을 다했지만 대학 안에서 맴돌고 있던 자신들에 대해 되돌아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이를 인정한 후 옳다고 생각했던 무엇인가를 실천하기 위해 나아갔다. 이들의 긴 술회가 끝났을 때 정돌이가 다시 줌인 될 수 있던 것은 정돌이가 이들과 함께하며 배웠던 좀 더 나은 것, 옳은 것을 향해 가겠다는 그 의지를 함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돌이가 형, 누나들과 함께 시위 현장에 가고 그들을 따라다닐 수 있던 것은 적어도 자신을 이렇게 챙겨주는 이들이 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돌이는 좋아보이는 사람을 만나 자신이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보다 행복한 기억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자신을 챙겨준 이들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어린 나이엔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정돌이는 이해하고 있었다. 정돌이가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풍물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어떠한 편견도 없이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운동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때의 그 온기에서 체득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해피엔딩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정돌이의 풍물은 그가 느꼈던 그때를 실천할 수 있는 곳에 오랫동안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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