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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행복이 시작되는 순간2025-02-19
영화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스틸컷 이미지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행복이 시작되는 순간


김경욱 (영화평론가)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수빈 감독의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에서, 동화 작가 조용희(오동민)는 3년 전 아내 정수정을 잃고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하지만,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상태다. 수정이 그림 그리는 작업실로 사용하던 방은 세상을 떠나기 전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용희는 그 방의 문을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애도’가 우리가 잃게 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내는 길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라면, 용희는 애도 작업을 시작조차 못 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스틸컷 이미지2


그러던 어느 날, 수정의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어쩔 수 없이 용희는 그 방에 들어가게 되고,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게 된다. 너무 놀란 용희는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이때 장면은 플래시백으로 넘어간다. 용희와 수정이 동화 작가와 삽화 작가로 함께 동화책을 내며 어린 아들 재인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했는데, 한순간의 교통사고가 모든 것을 앗아 가고 말았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떠오르자 용희는 패닉 상태에 빠져 과호흡 증후군 증상을 일으킨다. 알고 보니 고양이는 엄마를 잃은 것 같다며 재인이가 집으로 데려와 몰래 키우던 중이었다. 수정의 방에서 나타난 고양이로 인해 용희가 아내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애도 작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저항이라도 하듯 용희는 고양이 알레르기 증상을 보인다.


영화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스틸컷 이미지3


고양이 때문에 들어가게 된 수정의 방 천장에서는 물이 새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용희는 동네에 새로 문을 연 목공 공방의 목수 하로언(류아벨)에게 수리를 맡긴다. 예전에 고양이를 키웠던 로언은 고양이를 어떻게 할지 몰라 쩔쩔매는 용희 부자에게 고양이 키우는 방법을 찬찬히 알려준다. 갖고 있던 고양이 물품도 가져다주며 수정의 방을 고양이 방으로 꾸미자고 제안한다. 


영화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스틸컷 이미지4


로언이 용희 부자에게 너무 지나치게 친절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로언의 정체가 밝혀진다. 3년 전, 로언은 하룻밤 사이에 약혼자의 배신을 목격하고 키우던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그 충격의 여파로 유산까지 하는 일을 겪었다. 그날 밤, 약혼자는 집을 뛰쳐나간 로언을 찾아다니다 과속운전을 했고, 그 차에 수정이 치여 사망했다. 로언은 이 사실을 고백하며,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용희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스틸컷 이미지5


용희는 고양이와 로언의 등장으로 아내를 떠나보내기 시작하면서 끝없이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시체처럼 연명하던 용희가 삶으로 나아가기로 했다는 건 고구마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용희는 목공 공방 근처에서 로언이 떨어트린 고구마를 주워 집으로 가져와 방치해 놓고 있었는데, 로언과 가까워지면서 고구마를 물컵에 담아 키우기 시작한다. 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애착의 에너지가 새로운 사람에게로 서서히 옮겨가던 중이었는데, 로언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용희는 충격을 받고 과호흡 증상을 보이며 쓰러진다.


영화 <고양이키스: 당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스틸컷 이미지6


이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에서 고양이는 매번 전환점을 마련하는 동력으로 기능한다. 재인이 고양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가 잃어버리자, 서먹해진 용희와 로언이 함께 찾아 나서게 된다. 고양이를 찾아 집으로 데려온 용희는 로언이 만들어준 캣타워를 수정의 방에 들여놓는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려던 용희가 마음을 연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수정의 방을 고양이 방으로 바꾼 용희는 수정에게 작별을 고하는 눈물을 흘린다. 길고 힘들었던 애도 작업이 마침내 마무리된 것이다. 다음 순서는 용희가 로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다. 용희는 한밤중에 거리를 헤매다 차에 치일 뻔한 로언을 구해줌으로써, 상처받았던 두 사람이 서로 위로하고 구원하는 결말에 이른다.

‘행복이 가득한 방’이라는 알림판이 걸린 고양이 방, 수정의 방이었을 때 용희와 수정이 함께 만든 동화책 <엄마가 낮잠을 잘 때>가 놓여있던 자리에는 용희가 새로 지은 동화책 <고양이키스>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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