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영화와 비평  > 영화와 인문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파묘>, K-오컬트 영화의 맛2024-03-19
영화 <파묘> 스틸컷 이미지



<파묘>, K-오컬트 영화의 맛


김경욱 (영화평론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공이다. 그런데 다양한 영화 장르 가운데 공포영화는 주인공만큼이나 공포를 유발하는 ‘괴물’의 정체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장르이다.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근본적인 공포가 있기도 하지만, 사회집단마다 공유하는 공포의 대상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공포영화는 제작되는 시대에 따라 다른 ‘괴물’이 등장하게 된다. 할리우드의 공포영화를 예로 들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신체 강탈자의 침입>(1956)은 외계생명체가 인간의 신체에 파고들어 지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겉은 인간의 모습 그대로인데 속은 외계인이 된 존재는 냉전 시대의 미국 사회에서 겉은 파란데 속은 빨갛다고 비유된 공산주의자의 모습을 은유한 것이다. 누가 진짜 인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가운데 인간 모습의 외계인들(공산주의자들)이 점점 증가하면서 도시 전체가 붕괴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설정에는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


영화 <파묘> 스틸컷 이미지2


또 공포영화는 ‘괴물’의 정체에 따라 하위 장르가 결정되는 장르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컬트 영화’인데, 기독교에서 상정하는 악마가 ‘괴물’로 등장한다. 따라서 오컬트 영화에서는 사제 또는 퇴마사가 악령에 사로잡힌 인물을 구해내거나 공동체를 위기에 빠트리는 악마를 물리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랫동안 기독교가 주류 종교였던 서구에서는 <엑소시스트>(1973)나 <오멘>(1976) 같은 오컬트 영화가 일찍이 많이 제작되었으나, 기독교의 전통이 일천한 한국에서 오컬트 영화는 생소한 편이었다. 그러나 1998년의 <퇴마록> 이후, <검은 사제들>(2015), <곡성>(2016), <사바하>(2018) 같은 오컬트 영화가 잇달아 제작되고 흥행에도 성공한 사례를 보면, 세월이 지나 기독교가 더 이상 외래 종교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통해 오컬트 전문 감독으로 떠오른 장재현의 <파묘>(2024)가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중이다.


영화 <파묘> 스틸컷 이미지3


<파묘>에는 두 가지 종류의 ‘괴물’이 등장한다. 하나는 전반부의 한국인 악귀이고, 다른 하나는 후반부의 일본 도깨비 ‘오니’다. 악귀의 정체는 을사오적에 맞먹는 친일파 박근현이다. 일제로부터 작위와 훈장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렸던 박근현은 악지(惡地)에 매장되는 바람에 영면하지 못하고 악귀가 된다. 오니는 여우 같은 일본 음양사인 기순애가 한반도의 정기를 끊으려고 혈맥에 박아 넣은 쇠말뚝이다. 기순애는 독립운동 단체인 철혈단이 쇠말뚝을 찾아 뽑아내지 못하게 하려고 오니의 관에 박근현의 관을 첩장하도록 했다. 따라서 악귀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오니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괴물과 맞서 싸우는 인물들은 아주 옛날부터 한국에 존재했던 직업군인 풍수사, 장의사, 무당, 법사가 된다. 


영화 <파묘> 스틸컷 이미지4


무덤에서 돌아온 박근현은 손자에게 빙의해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며 나치식 경례와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며 연설한다. 매국노 박근현은 죽은 다음에도 민족 반역 행위에 대해 뉘우치지 않는다. 무당 화림은 한국 귀신과 달리 일본 귀신은 사람을 무조건 죽이려고 해서 상대하기 힘들고, 거대한 모습의 오니는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일본이 언제든 다시 한반도를 침략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에서 빚어진 과거사의 일부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친일파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심각하게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친일파 악귀는 전생에 지은 업보에 따라 자손들을 해치고 지옥에 떨어진다. 주인공들은 범의 허리를 끊으려고 했던 여우 기순애의 음모를 결국 분쇄한다. 네 명의 주인공 가운데 풍수사 상덕과 법사 봉길은 크게 다치기는 했지만 죽지 않는다(후속편의 제작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는 상덕의 딸이 결혼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딸이 임신한 상태이기에 곧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인과응보의 설정과 해피엔딩은 일제강점기에서 기인한 한국인의 깊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서 일정 부문 흥행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파묘> 스틸컷 이미지5


이전글 <산책하는 침략자> : 망각의 인류학
이전글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내면의 여름이 노래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