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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유령의 해> - 재현할 수 없는 한국 현대사의 실제2023-05-22
유령의 해 스틸 이미지

 

 

<유령의 해>

-재현할 수 없는 한국 현대사의 실제

 

김경욱(영화평론가)

 

조갑상의 소설 밤의 눈은 한용범과 옥구열을 중심으로, 1950년의 한국 전쟁, 1960년의 4.19 혁명, 1961년의 5.16 군사 쿠데타, 1979년의 부마 항쟁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유령의 해>(2022)는 오민욱 감독이 조갑상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밤의 눈을 읽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다. 편지를 쓴 날짜는 2021421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조갑상 작가에게 다시 편지를 쓴다. 첫 번째 편지로부터 14개월이 지난 2022827일에 쓴 두 번째 편지에서, 감독은 밤의 눈을 영화로 옮기려고 시도한 결과를 알린다. 소설의 영화화 과정에서 감독은 실존 인물 김영명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24년에 태어나 진영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영명은 19507, 오빠의 행방을 알아보려 했다는 이유로 진영지서에 끌려가 취조와 고문을 당했다. 그런 다음, 진영지서장의 지시에 따라 살해되었다. 영원한 밝음(永明)을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26살의 여성이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뱃속의 태아와 함께 생을 마감한 것이다. 밤의 눈에서, 한용범은 한국 전쟁 시기에 사상범으로 몰려 감금되고 혹독한 고문을 받고 보도연맹 가입자들과 함께 학살 장소로 끌려갔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여동생 한시명이 그 대신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감독은 소설의 인물 한시명이 겪은 비극이 단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 김영명이 더 혹독하게 겪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설을 영화로 옮기려던 시도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유령의 해 스틸 이미지

 

첫 번째 편지 다음 장면에서, 도시의 밤 풍경이 화면에 보이는 가운데, 밤의 눈에서 한용범이 학살당할 뻔한 순간을 묘사한 대목이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낭독된다. 총알이 한용범을 스쳐 지나갔던 그날 밤처럼, 화면의 밤에는 달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장면에서, “그녀가 밤의 눈을 각색한 영화에 출연을 제안받고 부산으로 향했다는 자막이 나온다. 부산에 도착한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밤의 눈에서 한시명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절망하는 대목이 들려온다. 이때 카메라는 종유석 가득한 동굴의 심연 속에서 한 줄기 빛을 포착하려는 듯 헤맨다. 화면에는 한시명이 생의 마지막 순간 직전에 보았던 검게 타버린 해가 아니라, 어둠을 밝혀주는 희망의 빛이 어른거린다. 그러나 영상이 음화로 바뀌자, 빛은 사라져버린다.

한시명이 살해당하는 대목을 읽고 난 다음, 그녀는 소설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거기에 김영명의 유령이 끼어든다. 그녀와 한시명과 김영명의 유령은 그녀의 모습이 세 개의 그림자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몽유병자처럼 소설의 인물 한시명 또는 실존 인물 김영명이 걸었던 수정동과 남포동, 부산역과 부산진역 일대를 헤맨다. 그녀의 시선에 의한 쇼트가 음화의 영상으로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은 또한 죽은 한시명과 김영명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들에게 빙의되는 것처럼 보이므로, 영화에서 그녀의 이름은 명시되지 않는다.

 

유령의 해 스틸 이미지

 

그녀는 마침내 애국전몰 용사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충혼탑을 거쳐, 부산시민의 민주 정신을 기리는 민주항쟁기념관에 이른다. 거기서 그녀는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다큐멘터리를 본다. 카메라는 역사적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충혼탑에서 김영명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개인이 공권력에 의해 겪었던 참혹한 비극은 드러나지 않는다. 비극의 흔적이 남아있을 법한 공간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므로 김영명의 유령은 그녀가 떠난 다음에도 떠나가지 못하고 계속 떠돌 수밖에 없다.

<유령의 해>는 장 뤽 고다르가 <경멸>(1963)이나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1967)에서 제기한 문제를 반복하면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울러 영화에서의 재현의 한계 또는 불가능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왜냐하면 한국 현대사의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희생자와 피해자가 양산되었고,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비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의 진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아주 많다. 따라서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한국 현대사의 실제는 비록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너무나 어렵더라도 더욱더 많이 다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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