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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인디스데이)-사소하지만 필요한 이야기2022-07-21
인디스데이 7월 단편영화프로그램,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2022.7.17.(수)~7.27.(수)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놀던 날 Nighty Night 달팽이


 

인디스데이 단편영화 프로그램 -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사소하지만 필요한 이야기

 

 

  김나영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서점의 베스트셀러 서가에는 온갖 힐링 도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TV를 틀면 멘토들이 현대 사회의 무한 경쟁에 지친 멘탈회복을 돕고, 광고에선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자문하게 된다. 정말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경쟁에서 도태되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 능력주의 신화와 형편없는 취업률, 그 결과는 태어나지 않는 게 좋았다는 최고의 자살률과 태어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최악의 출생률이다.

  7월 인디스데이 단편영화 프로그램에서 상영하는 네 편의 작품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며 길을 잃은 젊은 세대가 전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때로는 치열한 질문의 과정을 거치고, 친구에게 하듯 관객을 향해 직접 응원을 보내기도 하며, 따뜻한 차 한 잔과 같은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관계와 장소를 둘러싼 변화를 포착해 그 안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스틸

 

  자신의 힘으로 일하며 돈을 벌어 생활하는 친구들과 달리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 순아는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남순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2015)는 또래들의 고민을 공유하지 못한 감독 자신의 고민을 주제로 한 사적 다큐멘터리로 출발하여 또래 세대가 처해 있는 노동의 조건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감독이 느끼던 죄책감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곧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변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일과 병행해 할 수 있는 임시적인 일자리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불투명한 지속가능성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감독은 자신의 잘못으로만 여겨왔던 노동이라는 문제가 사회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놀던날 스틸

 

  한편, 조경원 감독의 <놀던 날>(2016)<아빠가 죽으면 어떡하지?>와 비교한다면 조금 더 사적인 차원에서 또래 친구들을 응원하는 작품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지내던 정은이 세 명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속에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이들의 고민과 우정, 안부와 응원이 담겨 있다. 영화는 미래를 향한 긍정의 원천을 대단한 사건이나 특별한 대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의 시간 그 자체에서 찾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쇼트 구성을 통해 영화 앞뒤를 여닫도록 짜인 구조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친구에게 말을 건네는 정은의 시선이 마치 관객들을 향한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Nighty Night 스틸

 

  양하윤 감독의 애니메이션 (2020)는 앞선 두 작품과 달리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찾는 위로의 순간을 보여준다. 공허한 마음이 빈 창처럼 가슴에 뚫려 있는 사람의 잠 못 드는 밤을 따뜻한 그림체와 세심한 연출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파스텔 색조와 부드러운 선은 따뜻한 차 한 잔에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는 느낌을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낸다.

 

달팽이 스틸

 

  김태양 감독의 <달팽이>(2020)는 앞선 작품들이 그랬듯 세대적 고민이나 위로, 응원과는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무척 평범한 순간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는 기억이란 것을 제대로 보존할 수 없이 폭력적으로 풍경이 변하는 재개발 시대에 대한 인상적인 스케치이기도 하다. 인물들을 둘러싼 외적 조건의 변화는 사람들 사이의 기억과 관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이처럼 불안정한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우연한 마주침과 함께 걷는 걸음, 기억한 것을 나누는 대화, 실수를 두려워 않고 그린 스케치 속에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어쩌면 네 편의 단편영화가 전하는 응원이나 위로가 너무 사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때로 사회에 대한 거창한 진단과 관성적인 성찰이 놓치곤 하는 작지만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이처럼 사소한 위로가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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