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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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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작은정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2023-07-20
<작은 정원> 스틸 이미지

 

 

<작은정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김현진 (시민평론단)

 

영화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평균 연령 75세의 여성들의 영화 만들기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정원>의 제목이 왜 <작은정원>인가를 생각해봤다. 일단 그들이 강릉시 명주동에서 오랜 세월을 살면서 만든 이웃 모임의 이름이 작은정원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당연히 <작은정원>이 제목이라고 생각하면 틀린 답은 아니겠지만 좀 더 나아가서 시적인 상상을 해보고 싶다. 영화가 시작되면 작은정원모임의 언니들(감독이 영화 속 여성들을 호칭하는 이름)이 꽃을 나무로 된 화분에 옮겨 심는 장면이 나온다. 그 화분들은 마을의 길가 여기저기에 놓여진다. ‘작은정원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 꽃들은 거기에 놓여있지 않아도 딱히 살아가는데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꽃들이 거기 그 자리에 있음으로서 명주동의 그 골목은 어떤 생기를 띤다. 큰 정원이 아닌 작은 정원. 크고 거대한 아름다움이 아닌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 이 영화는 그런 존재들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하다.


작은정원 이미지


<작은정원>을 보며 첫 번째로 놀란 점은 이 영화가 2.39 1 비율의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율로 촬영되었다는 점이었다. 많은 상업영화들, 특히 많은 예산을 투입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들은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촬영하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좌우로 더 넓은 화면에 그만큼 더 많은 볼거리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하지만 <작은정원>은 그런 블록버스터 영화의 정 반대편에 서 있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다. 유명한 스타도 없고, 화려한 볼거리도 없는 영화인데 어째서 시네마스코프 비율인가. 굳이 영화 속에서 답을 찾아서 끼워 맞춰보자면 일단 영화 속 언니들이 넓게 둘러앉은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 언니들은 그 어떤 서열이나 위계질서 없이 그저 편안한 친구들 같은 관계로 지낸다. 한마디로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 그것을 잘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시네마스코프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또 상상력을 발동해 보자면 그런 블록버스터 영화들만큼이나 이 작은 영화 속 언니들의 존재감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고 은근히 외치는 것은 아닐까.


작은정원 이미지


이 영화를 보며 두 번째로 놀란 점은 언니들의 단편영화 제작기와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의 수상과 기뻐하는 언니들의 모습을 영화는 초반에 매우 간략하게 보여주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영화라고는 찍어본 적 없는 평균 연령 75세 노인들이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에 출품해서 경쟁 부문에 선정되고 영화를 관객들 앞에서 상영하고 상까지 받는다? 이건 분명 드라마 같은 승리담이며 아마 이 이야기만으로도 하나의 상업영화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 승리담을 뒤로 하고는 곧바로 언니들의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으로 넘어간다. 이게 본론이 아니라는 것처럼.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처럼.


작은정원 이미지


언니들이 자신들 각자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촬영하는 셀프 다큐멘터리 제작에 돌입하면서부터, 이 영화의 제목이 품고 있는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품은 명장면들이 계속 나온다. 이걸 일일이 말하기 시작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고, 영화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결과가 될 것 같아서 생략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처음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길 주저하던 언니들이 점점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 남편 이야기, 자식 이야기 등등을 할 때 언니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해방감이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긍정이며, 생로병사의 두려움 앞에서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겠다는 자세이며, 무엇보다 자기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다. 자신보다는 남편과 자식에 헌신하며 평생을 살아온 여성들이, 전혀 해본 적 없는 영화 만들기에 도전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둥 뭘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는 둥 노인을 주눅 들게 만드는 말들이 많다. 영화 <작은정원>을 보고 나서 그 말들에 맞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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