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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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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찬란한 나의 복수>: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2023-04-04
찬란한 나의 복수 스틸

 

 

<찬란한 나의 복수>: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

 

김현진 시민평론단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가 되면서, 또다시 사적인 복수를 그린 이야기들이 주목을 받는 듯하다.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복수는 창작에 있어 마르지 않는 우물과 같다. 세상 모든 인간이 선량해져서 원한을 만드는 사람도 원한을 품는 사람도 사라진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아마 인간이 존재하는 한 복수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한은 일종의 열패감이자 짓밟힌 자존감이며 그로 인한 슬픔과 분노다. 그걸 회복하기 위해 이야기 속 많은 인물들은 사적인 복수에 열을 올린다. 정신적, 물리적 폭력을 가하거나, 상대방의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한 이러저러한 계획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적인 복수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복수의 이야기를 보며 대리 만족, 후련함을 얻는다. 하지만 그 인물은 복수를 함으로서 정말 행복해졌을까. 혹시 복수심 때문에 성격이 망가지거나 자신의 돌아갈 인생마저 부서진 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찬란한 나의 복수 스틸

 

영화 <찬란한 나의 복수> 역시 복수를 다짐하는 남자가 나온다. 형사인 류이재(허준석)는 아들을 뺑소니 사고로 잃는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공소시효는 지나버렸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남원으로 내려가서 경찰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늘 술에 취해서 산다. 그러다 혼자 어린 아들을 키우는 보험설계사 워킹맘 소현(남보라)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려 한다. 그때 그의 앞에 당시 뺑소니 사고의 범인인 임학촌(이영석)이 나타난다. 이제 류이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찬란한 나의 복수>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힘든 영화다. 무엇과도 닮지 않은 듯한 이 영화와 굳이 비슷한 이야기를 찾자면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시골과 대도시의 중간쯤에 놓여있는 소도시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자식의 죽음, 그 이후 주인공이 견뎌내야 하는 삶, 그 주인공 곁에 그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범인이 등장한다는 점이 가장 비슷하다.

 

찬란한 나의 복수 스틸

 

임학촌을 연기한 배우 이영석의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든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보았다면 살인사건의 결정적 목격자인 고물상 노인으로 출연한 그를 기억할 것이다. <찬란한 나의 복수>에서도 그는 험상궂은 표정과 친절하고 공손한 말투로 류이재를 자극하는 뺑소니 사건의 범인을 연기한다. “그런 건 그냥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반성도 없는 저 뻔뻔한 말들은 기가 막힌다. 대부분의 뺑소니 용의자들은 자신의 죄를 끝까지 숨기려 드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일 텐데, 임학촌은 굳이 류이재의 앞에 나타나 자신이 범인임을 고백하고 그를 자극한다. 이는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임학촌은 현실적인 악당이라고 보기 힘든, 사탄에 가까운 존재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임학촌은 불치의 병을 얻어 죽음을 앞둔 상태. 이쯤 되면 임학촌은 류이재에게 복수를 강요하는 존재라고 해도 무방하다. 제발 네가 복수를 해서 나의 삶을 편안하게 끝내달라는 의미로 류이재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찬란한 나의 복수 스틸

 

시험에 든 류이재의 결단이 영화의 제목인 <찬란한 나의 복수>의 의미를 완성한다. 범인을 찾았으나 공소시효는 지나버렸고, 곧 불치병으로 죽을 상태. 류이재는 임학촌의 죄를 용서해 주지도 않지만, 그에게 복수를 하지 않음을 선택한다. 그를 병마의 고통 속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렇게 역설적으로 류이재의 복수는 완성된다. 복수가 트렌드인 세상이다. 폭력이든 술수든 뭐든 사적 응징을 위해, 악마를 처단한다는 이유로 주인공도 같이 악마가 되어버린다면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류이재는 복수극의 주인공이 아닌 대다수의 우리들처럼 사적 응징을 하지 않음으로서 악마의 삶을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마치 탈무드의 격언처럼 말이다.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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