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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의 시네필로

이지훈의 시네필로

 

매월 개봉작들을 독특하고 풍성한 인문학적 시각으로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영화에 대한 수많은 담론을 제시하며 재밌고 유익하게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져보세요.

<아름다운 별> - '3.11 이후 , 각자의 이노치 ( 命 ) 를 세우다'2018-01-26
아름다운 별 스틸컷_

이지훈의 시네필로 - '3.11 이후 , 각자의 이노치 ( 命 ) 를 세우다'

 

* 일시 : 2018.01.18 (목) 19:00

* 장소 : 영화의전당 소극장

* 강연 : 이지훈 필로아트랩 대표 (철학박사)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황당무계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이 영화를 보니까 재미있는 부분도 많은 것 같아서, 이해한 만큼 제가 설명할 만큼 말씀드리고, 여러분의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연주제는 ‘3.11 이후, 각자의 이노치(命)를 세우다’입니다. 후쿠시마의 쓰나미 대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원자로가 녹아서 재난을 일으켰던, 그 3일 이후에 각자의 명 일본말로 이노치를 세우다‘라고 잡아봤는데, 이 제목에 대해서 조금씩 설명드릴 텐데, 일단 제목이 그렇다는 부분을 설명드립니다.

 

오늘 영화의 특징은 굉장히 음악적 리듬을 따라서 경쾌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굉장히 음악적인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고요. 서사의 생략이 심하고, 점프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되고, 주제는 지구·환경보호인 것 같은데, 스토리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영화감독 본인이 의도적으로 일본 평론을 읽어보니 요시다 감독이 ‘확신범’이다. 일부러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도 상당히 문제작으로 되어있는데요. 요시다 본인은 무엇이라 이야기하는가 하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이전 영화들을 찍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를 언젠가는 누군가는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상당히 일본 사람치고는 자신감에 찬 그런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이 영화가 미시마 유키오 원작인건 알고 오셨을 텐데, 미시마 유키오라는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마니아층이 많은 그런 작가인데요. 미시마 유키오 본인도 1962년도에 이 작품을 만들 때 정말로 문학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으며 성숙해갈 때 엉뚱한 작품을 낸거에요. ‘이 사람 잘 나가는데 왜 이랬을까?’ 굉장히 논란이 되었었는데, 요시다 감독도 마찬가지로 <종이달>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등 이 사람 재미나고 기발한 영화를 만드는구나 생각을 가졌던 분들은 오늘 이 영화를 보면 이 사람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데, 둘 다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왜 이런 이상한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게 오늘의 화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실과 공상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합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공상인지. 사실은 이게 우화적이 다라고만 보면 영화를 이해하기가 쉬울 수도 있는데, 마지막에는 UFO를 타고 가는 것 같거든요. 이게 진짜 간 건지 안 간 건지 헷갈린단 말이죠. 그리고 일본 특유의 문화인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말하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히나 우리가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볼 때, 좀 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파악한 것을 중심으로 해서 중요한 것들만 기본정보를 세 가지 정도 말씀드리고 나서 영화에 대한 주제를 4가지 정도 뽑아서,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기본정보는요. 영화 속에서 UFO가 나타난 지역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UFO가 나타난 곳이 정확하게 2군데인데요. 하나가 가나자와 역에 있는 해변입니다. 우치나다라고 하는 해변,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해당하는 것이 후쿠시마에 있는 남동쪽 해안 이와키라는 시에 있는 산속이라는 것이죠. 경찰이 못 가게 막아놓은 것이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재난지역으로 함부로 못 들어가는데 거기를 뚫고 들어간 것이고, 거기 사는 소는 뭘까인데요. 거기에 사는 소가 미스터리이긴 한데,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목장에서 가두어놓았는데 탈출해서 야생소가 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지역이다.

 

그림을 보시면 왼쪽에 ‘우치나다’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하면 금성 소년 소녀가 함께 UFO를 목격하는 해변인데요. 1952년도에 우치나다 투쟁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우치나다 투쟁’이란 무엇인가하면, 한국전쟁 6.25일 때 미군이 일본에서 무기 생산을 많이 해서 부산항을 통해 무기를 들여왔잖아요. 거기서 대포를 시험하던 곳으로 저 해변을 선정했다고 해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저기서 대포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면 부산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여보낸 거죠. 그런데 이제 그쪽 주민들은 어떻겠어요. 대포시험을 하는 곳이니 전쟁을 하는 것 이상으로 폐허가 되고 초토화가 되는 거죠. 그러니 주민들이 좋아할 리가 없고, 그래서 일본이 미군에 대해서 패전국이잖아요. 패전국이어서 끽소리 못 하고 숨죽여 있다가 저때만큼은 저 사람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해서, 반란형식으로 상당히 격렬하게 일어났다 고해요. 그게 우치나다 투쟁이라는 것인데, 바로 그 해변가에서 UFO가 나타난 것이죠. 이것은 원작 소설도 마찬가지인데요. 거기서 미시마가 창작노트에서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가하면, 전쟁과 점령으로서의 역사가 잊혀진 땅이다. 거기서 UFO가 나왔다. 이렇게 해서 UFO라는 것이 새로운 평화의 상징, 전쟁을 넘어서는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짐작을 해 볼 수가 있죠.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해당하는 것이 후쿠시마의 이와키라는 곳입니다. 2011년 5월 사진을 보시면 쓰나미 때문에 얼마나 박살이 났는가를 알 수 있죠. 산속에서 UFO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밝은 점 같은 빛이 보이시나요? 2011년도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주위에 3월 10일에 사건이 터지고 2주 정도 뒤인 26일에 10개 정도의 빛이 오랫동안 떠 있어서 UFO가 목격되었다는 것이 300명이 다른 각도에서 동시에 목격을 했어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굉장히 논란이 되었고 유투브에 돌아다닙니다. 많은 일본사람들이 묘하다고 생각한 것이고, 환상이냐 아니냐에서 굉장히 논란이 많이 된 것인데, 오른쪽에도 보시면 4월 12일에 후쿠시마 원자로 위 상공에 실시간 뉴스 생방중이었거든요. 해변가에서 이상한 물체가 천천히 이동한 거예요. 아나운서는 모르고 방송을 계속 진행하다고 있는데 전 세계에 퍼지면서 엄청난 논란이 되었습니다. 후쿠시마 지역은 UFO라는 것이 이게 원작 소설에는 없는 겁니다. 영화에서만 마지막 장면으로 설정이 된 것입니다. 영화에서 이렇게 감독이 설정한 이유는 분명히 저 지역에서 UFO가 출몰했다는 이야기들, 현대의 신화죠. 그것이 어떤 생명의 평화의 상징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냐는 야릇한 상징,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마지막 장면이 그 지역이었다는 것을 통해서 영화의 핵심 모티브가 핵심 계기가 ‘3.11 재난’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데 그 이야기를 영화에서 한 번도 안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저 지역을 통해 짐작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우화로만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 인가하면 미시마 본인이 1956년도에 일본 UFO 연구회에 가입을 한 회원인데, 회원번호가 12번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초기 멤버, 창립멤버인 거죠. 그리고 1960년도에 뭐라고 썼나하니까 아내와 함께 지붕 위에서 하늘을 보다가 권련형 UFO를 목격했다고 쓴 겁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1962년도에 나왔거든요. 본인은 정말 있다고 믿은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오른쪽 보시면 요시다 감독도 2017년도 인터뷰에서 이야기 한 것이거든요. 7-8년 전에 UFO를 목격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어디서 봤냐고 하니 치바현 구주쿠리 해변에서 봤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그때 보았던 UFO가 오늘 영화장면에서 금성 소년·소녀가 바다에서 UFO를 보잖아요. 자기가 직접 보았던 것을 재현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드리냐면 자기들에게 감독이나 소설가에게는 우화가 아닌 거예요. 이런 것들이 뒤섞여있으니까 진짜이던 아니 던을 떠나서 이게 우화인 것과 자기들이 생각하는 현실인 것과 섞여서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이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화로만 해석한다면 이 영화는 굉장히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이 사람들이 진짜 믿고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게 현실과 공상을 오가고 SF와 현실 드라마를 오가는 그런 장르라는 것이죠. 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결단은 아니죠. 그래서 이 감독도 상당히 용기를 내서 이 영화를 질러 봤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두 번째는요 일본에서 UFO가 상당히 공적담론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2005년, 2007년 두 번에 걸쳐서 민주당 ‘야마네’가 우리는 국정질의라고 하죠. 거기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가하니 ‘UFO 발견이 끊임없는데,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라고 질의를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국정질의를 이런 내용을 한다면 굉장히 황당했겠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국정질의였습니다. 그 당시 아소 다로라고 하는 사람이 국무대신이었는데, ‘어머니는 UFO를 보셨다고 굉장히 기뻐하셨는데, 나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못 봤다.’고 표현했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구에만 지적생명체가 사는 것은 너무 상상력이 빈곤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관방장관이 나와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가 하니 이때 정부 공식답변은 ‘대책이 아직 없습니다.’였는데, 그때 각료들이 하나같이 나와서 연이어 폭탄발언을 하는 겁니다. 왜 그런 식의 답변을 하는가 답변을 준비하라며 정부를 질타하면서 각료들의 다반수가 전반적으로‘믿는다’였습니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은 뭐라고 했는가하니‘평화헌법 체제아래 외계인에 대응하는 방안을 고민중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니, 마냥 적대적이면 대응해야 할 것이고, 우호적이면 어떻게 소통을 할 것인가도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교육과학부장관은 ‘나는 외계인 실존을 희망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외계인이 정말 있다면, 어린이가 우주의 꿈을 가지고 자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있었으면 좋겠다고 발언을 한 겁니다. 이런 분위기의 절정을 찍은 분은 이분입니다. 2009년도에 총리부인인 미유키 하토야마가 해외언론과 인터뷰를 합니다. 나는 20년 전에 우주인에게 납치되었다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20년 전 신랑은 옆에서 자고 있고, 자기만 납치를 당했다고 하는 겁니다. 삼각형 UFO를 타고 금성을 방문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쨌든 퍼스트레이디가 저런 발언을 한 것 때문에 당시 미유키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이죠. 영화에서 금성소녀 아키코가 손을 삼각형을 만들잖아요. 그 삼각형은 제 생각에 이분이 삼각형 UFO를 타고 금성을 다녀왔다는 것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본 사회의 공론화가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 UFO를 이야기 하는 것이 그렇게 황당하지만은 않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명(命) 개념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명(命)을 찾으면 여러 가지가 나옵니다. 명령, 생명 그리고 운명이라는 뜻이 나오는데 어떻게 글자에 저렇게 뜻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가 하니 동아시아 지역에 생명에 대한 관념이 생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라고 우리에게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명이라는 것은 명령인 동시에 살아야하는 명령이 생명이 되는 것이고, 운명이 되는 것이고 심지어 사명까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 살아야 한다고 명령을 내린 쪽은 자연, 하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늘이 내린 명령을 천명이라고 하잖아요. 천명을 받아서 살아간다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이고 논어, 장자에 다 나온다는 겁니다. 주인공의 직업으로 일본말로 천기(天氣) 날씨를 알려주잖아요. 주인공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원작소설에서는 다르잖아요. 어떤 직업이 없으면서 예술을 애호하는 고급 백수로 나오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저 직업으로 나오는 것이 전통적인 생명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적합하다. 그런데 일본 교과서에서는 명이라는 것이 ‘이노치’라고 발음하는데, ‘마음의 노트’라고 하는 초중 부교재가 있습니다. 이것이 채택률이 95% 정도 되니까 거진 다 배운다고 보면 되는데, 2002년도부터 이 부교재가 만들어져서 학교에 보급이 되었는데요. 만든 취지가 하도 자라나서 청소년들이 자살도 많이 하고 하니까 살아갈 힘을 기르기 위함을 목표로 이 교재를 만든다 하고, 거기에서 생명이라는 것은 언제 정의되었는가 하면, 사진을 보시면 왼쪽에 한 권, 오른쪽에 한 권이 있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있는데 6학년 때‘생명’의 정의가 무엇이라 되어있는가 하면 생명이라는 것은 주어진 것이고 무언가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그 뒤에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숭고한 것의 외경을 통해서‘나보다 더 큰 어떤 것의 숨결을 느껴보자’라는 구절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보다 더 큰 어떤 것이라 함은 전통적으로 하늘이죠. 인간의 힘을 넘어선 것. 거기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줬다는 것이 동양 고전의 관념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우주라고 부르죠. 우주의 근본 활동,‘우주라는 큰 하나가 생명의 근원, 섭리, 신비이다.’라는 이런 표현으로 생명을 정의하는 것이죠. 더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의 관계로 그러니까 이제 당연히 민주당 내지 좌파 쪽에선 새로운 전체주의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심했고, 그 와중에 아까 말씀드린 ‘3.11재난’이 터진 겁니다. 그래서 교과서가 바뀝니다.‘우리들의 도덕’이라는 제목으로 바뀌고, 여기에서는 2015년부터 채택되어 지금까지 쓰고 있는데, 말하자면 우파·좌파론 으로 이야기하면 좌파들이 만든 교과서에요. 거기에서 뭐라고 하는 구절이 들어가야 맞는가 하니 ‘생명은 각자가!’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츠나미텐덴코,이노치텐덴코’‘텐덴’이라는 것은 각자가, ‘코’라는 것은 동북지역, 재난난 곳의 사투리라고해요. 이게 ‘생명은 각자가’라고 하면 우리 생각은 얼핏 보면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발상 같고 우파적인 발상 같은데, 이 표어를 만들어서 채택되게 한사람이 1990년도에 공산당 중앙위 문화부장 ‘야마시타’라는 분이 제창을 해서 채택이 되었고, 실제로 재난시기에 한 중학교가 표어대로해서 소년 전체가 살아남은 기록을 세워, 훌륭한 표어다라 여겨지며 널리 퍼지고, 심지어 교과서에도 실린 겁니다. 지금 저게 실리다보니 앞의 것과 분명히 다르죠. 아까는 나보다 더 큰 것에 숨결을 느끼고 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따른다, 순종한다, 명령을 받아서 산다는 느낌이 있는 반면에, 지금 이 이야기는 어떤 더 큰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일본은 여기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과서에 들어가서 네 가지 원칙이라고 하는데, 스스로가 구한다는‘자조원칙’즉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구한다.

 

그리고 네 번째 생존자의 자책감을 줄여준다는 순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각자 살아남는다는 원칙을 미리알고 있으면 내가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희생된 사람에 대한 죄책감이 적어진다는 것도 있지만, 어쨌건 기본적으로 표어로 채택이 되는 데에는 정부 기관 가족의 신뢰 붕괴가 반영된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더 큰 무언가를 믿으면 죽는다는 것이죠. 내가 먼저 움직일 때 다른 사람들도 움직여야 되는 가보다 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타인의 비난을 촉진시킨다는 것이 그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저것이 퍼지게 된 계기가 한 어머니와 자식 2명이 재난이 나서 피하다가 옆집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구하러 갔는데 휩쓸려 다 죽었거든요. 알고 보니 옆집 할머니는 이미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계셨어요. 그러니까 ‘너만 잘 피하면 된다.’였거든요. 정말 아픈 상황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죠. 단순한 이기주의 같은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앞의 교과서와는 정말 다른 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시대 이후에 이노치가 무엇인가대해서‘엔도 슈사쿠’라는 분이 집회를 했을 때 일본사람들이 잘 안 모이는데, 17만 명이 모여서 그때 토론에서 제일 많이 나왔던 단어가 인터넷상으로도 그렇고 빅테이터도 그렇고‘이노치’였다. 이때 우리가 생명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엇인가. 이게 내 생명이다 이야기할 때 제일 소중하다고 이야기 하죠.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다고 해요. 저는 오늘 영화가 이런 문제의식을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야하는 이유,‘내가 왜 살아야하는가?’하는 것을 깊이 포함하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각자가 사는 부분에 대해서도요.

 

정리를 해보면 3.11 이후 각자의 정체성, 가치정립이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각자가 살아남으니까 별도 여러 개가 있는 거죠. 이것이 UFO하고 연결되는 바람에 황당무계한 인상을 주는데, 인류와 인간과 같은 수준 지평에서 보면 자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미시마도 감독도 제 3의 관점이 필요했고, 그것으로 인류를 내려다보는 관점을 요청 한 것 같다는 겁니다. 내려다보는 것이 무시하는 것이 아닌 타자의 관점으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인간을 보고 지구를 보는 시점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이때까지 ‘이노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졌으니까 새 출발을 해야 하니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신을 끌어들이면 종교소설, 종교영화가 되니까 우주인이 적합한 것 같다고 생각한 거죠. 다만, 앞에서 ‘마음의 노트’ 같은 경우에는 나보다 큰 하나의 우주였다면 그래서 나오는 말이‘하나님’이잖아요. 그런 것에 비해 단일한 하나의 우주가 아니라 이제 각각이거든요. 각각이라서 복수의 우주인, 화성, 지구, 수성, 금성 등 각각의 우주인들이 각각의 사명, 생명, 운명을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로 영화가 전개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인이라는 것은 니체가 말한 초인개념과 상호호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라는 것은 힘센 초인이 아니라 관점을 다르게 보는 것이거든요.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니체는 ‘높은 곳에서 본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사람. 일반사람들은 다가가기 무서워서 자기자신을 보지 못하는데, 다른 관점에서 자기를 보는 사람 이게 초인인거죠.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미시마 유키오 원작에서 굉장히 핵심적인 생각인 것 같아요. 영화와 관련지어 이야기를 드리면, 이 영화에는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 부분에서 유흥가가 많은 시부야를 지나가면서 ‘주이치로’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역시, 아름다워.”유흥가의 흥청흥청하는 모습을 보면 도덕주의자, 순결주의자 눈에는 혼잡하고 지저분하게만 볼 수 있는데, 그래도, 그럼에도 역시 아름답구나. 이때는 영화제목처럼 아름다울 미(美)를 쓰는 것이 아니라 ‘키레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러면서 점점 높은곳을 향해 올라가며 시가지가 은하계처럼 보이죠. 지구 속에 살 때는 지구가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지구를 바라보면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이야기 합니다. 재미난 것은 생활, 삶의 터전일 때는 그게 아름답다고 못 느끼는 겁니다. 치열하게 각박하게 살아갈 때 이곳이 아름다운지 모르거든요. 예를 들어 18세기이후 부터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농촌이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문학이나 예술에서 많이 나오는데, 도시가 발달하면서 그래요. 시골에 살다가 도시에 나온 사람들이 농촌을 벗어나면, 그 사람이 볼 때 농촌이 아름답고,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농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은 겁니다. 왜냐하면 사는게 너무 힘들고 농사일 하는 게 너무 힘든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농촌사람이 아닌 사람이 볼 때 아름다운 것이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생존에 부대끼는 사람들은 모르는데 다른 시선으로 볼 때 아릅답게 느끼는 그런 관점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에 이런 구절이 나오죠. ‘나는 밑을 내려다봐. 나는 이미 숭고해졌으니까’상당히 차라투스트라적이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가 인용한 음악은 딱 3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금성이라는 음악이고 나머지는 고전음악인데, 하나는 베버의 ‘춤의 권유’와 헨델 ‘사라방드’입니다. 모두 춤곡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인터뷰에서도 감독과 릴리 프랭키가 이 영화를 춤적으로 봐 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차라투스트라에 저런 표현이 있는데, “나는 춤추는 법을 알았던 신 하나만 믿을 수밖에 없어.”이때 춤추는 법을 알았던 신은 누구인가하면 ‘디오니소스’죠. “나는 경쾌하게 움직여, 나는 날지, 내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살지, 하나의 신이 내 속에서 춤추고 있거든”그래서 왼쪽 아래 사진을 보시면 니체가 제일 싫어했던 사람이 춤을 출 수 없는 자였거든요. 춤출 수 없는 자는 정신적인 것을 말합니다. 너무 생각이 무겁고, 심각하고, 진지해서 상상력이 없고, 그래서 춤출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른쪽에 금성소년, 소녀가 가나자와 해변에서 보여주는 동작을 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가나자와의 전통예술‘노(能)’공연을 보면서 갑자기 각성해서 금성세계를 느끼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나자와가‘노(能)’의 보존이 잘 되어있고, 융성하고 성행하는 곳이거든요. 안무가에게 동작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영화도 그렇고 원작 소설도 그렇고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대립구조를 느낄 수 있는데,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오오스기(大杉)가 남자 주인공 집안으로 디오니소스 계열이라고 하고, 구로키(黑木)가 아폴론 계열이라고 본다면, 오오스기가 큰 삼나무라는 뜻이잖아요. 굉장히 생명력이 넘치고 푸른 좋은 나무죠. 구로키하면 검은 나무로서 무섭고, 생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구로키를 보면, 균형, 조화, 절제 심각하고 진지하며 굉장히 논리적인 것에 비해, 오오스기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는 심지어 공영방송인데도 거기서 난장판을 벌이고, 딸도 마찬가지이죠. 아버지를 보면 계속 실실거린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데‘헤라헤라’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헤롱헤롱’, ‘실실’거린다는 표현인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서 오오스기는 구로키에 비해서 대조적인 디오니소스적인 사람이다.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논쟁이 벌어지는데 생태와 관련해서 짧게 정리하자면 현실적으로 대비되는 입장이 있거든요. 오오스기 같은 경우 에너지 소비를 줄여서 우리가 지구와 계속 살아가자는 거죠. 그것에 맞는 적정 기술을 개발해보자는 것이었고요. 그에 비해 구로키는 심층 생태주의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여기에서는 말하자면 쓰는 데까지 써보고, 쓰다가 안 되면 우주 전체의 조화를 위해서 인류를 다 죽이는 쪽으로 가자. 혹은 다 죽게 될 것이다 생각하는 겁니다. 지구라는 것은 생태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은 지구는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인간들이 지구를 계속 괴롭히게 되면, 지구는 가만 안 있고, 인간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이거든요. ‘가이아이론’도 같은 내용입니다만, 지구가 정말 감당이 안 될 때 인간을 다 죽이는 겁니다. 인간이 다 죽고 나서 60-100년 지나면 원래 생태계대로 다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지구를 큰 그림 속에서 인간이 죽으면 지구는 깨끗하게 살아남는 것이거든요. 그런 것이 구로키 관점인데, 그럴 때 인간을 보는 시선은 차갑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두 번째 주제로 가족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결말부가 대칭을 이루면서 달라집니다. 도입부에서 어떻게 되는가 하면 아빠가 샹들리에를 바라봅니다. 그때 나오는 노래가 ‘Magica Luna(마법의 달)’이라는 피아노 성악 노래를 듣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의 빈 식탁을 보죠. 이런 것들이 굉장히 근접적이고, 단절적이며 촬영 공간배치가 상당히 끊어지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흩어진 가족, 정신없는 아버지,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굉장히 차갑죠. 그리고 아버지가 없는데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가 울려퍼집니다. 이런 상황을 거쳐서 아빠는 아빠대로 딸은 딸대로 마지막 부자간의 격렬한 논쟁 끝에 결말부에가면 또 하나의 생일 축하가 되요. 오랜 기간 임무에 수고했다는 축가이기도 하죠. 그리고 가족앨범 같은 사진으로 끝난다는 것이죠. 형태는 뭔가 대칭이 되면서도 분명히 달라졌다는 것인데, 그러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각자의 命(명)을 우주인의 관점을 찾고 서로를 인정하는 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버지가 역시 떠나는 것. 아버지와 아들이 격렬한 논쟁 끝에 아버지가 떠난 것 때문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먼저 그들 각자 ‘이노치’에 대해서 정리해보면, 먼저 화성입니다. 왼쪽에 계속 실실대면서 살던 때가 시계방향으로 가면서 점점 화성에 물이 있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변하기 시작해서 굉장히 격렬하게 활동을 합니다. 일본의 논문도 찾아봤는데, 캐릭터와 화성의 이미지가 안 맞다고 하는데, 저는 잘 맞는 다고 생각합니다. 공영방송에서 자기 생각을 열심히 돈키호테적으로 어필하고 싸우려고 하는 면모가 있다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수성은 기본적으로 메신저, 소통, 전달 심지어 운전까지 하죠. 수성은 여기서 자기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전달만하는 것 같아요. 아들이 논쟁할 때도 아들은 자기생각이 아니라 구로키의 대변인으로서 입장을 전하는 것으로 설정이 된 것 같아요. 금성은 아름다움, 예술로 각자의 이노치를 찾아 나가는 것이죠. 지구는 물, 포용성을 담고 있으며, 원작에는 엄마가 목성인으로 되어있지만, 영화에서는 지구인으로 했죠. 감독님께 왜 그렇게 했냐고 여쭤봤더니 온 가족이 그러면 정말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엄마만큼은 정상인으로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간 더 현실적으로 보일 것 같다고 했는데, 엄마가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하죠. “너희들도 태양계의 뭐잖아, 아빠가 화성인이라면 엄마도 같이하고 싶어”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각성된 지구인인거죠. 이 지구 말고도 다른 생명, 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인정을 할 때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지구를 상대적으로 별로라 느끼는 각성된 지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관점,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남, 녀가 이런 대사를 하죠. “사명이 달라서 일거야”라고 하면서 영화에서 처음으로 아키코가 오빠에게 몸을 가까이 합니다. 영화에서 아키코가 굉장히 차가운 역할로 나오는데 마지막에는 오빠의 팔짱을 끼는 것으로 끝이 나죠. 이렇게 되는 데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어야 되는데, 정말 서로가 인정하고 화해하려고 하면 부자의 대립구도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부자의 대립이 원작 소설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렇고요. 미시마 유키오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이고 요시다 감독이 제일 공을 들인 부분이라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우리의 몫인데, 원작 소설에서는 부자대립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구로키 일행이 주이치로 집안을 찾아와요. 세명 정도가 찾아와서 싸움이 벌어지는 거죠. 인류는 죽어야 한다는 구로키 일당과 주인공은 그래도 인류는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논쟁에서 사실상 주인공이 지는 것으로 나오죠. 구로키 일행이 모욕을 주면서 떠나고, 주인공이 그때 피를 토하는데, 병원에 가보니 위암 말기더라 하는 것은 비슷하게 갑니다.

 

미시마가 창작노트에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대심문관’을 의식하고 이 부분을 썼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약에 ‘대심문관’을 안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권해드립니다. 카라마조프가 굉장히 경제적입니다. 저 챕터가 카르마조프의 이야기를 다 압축해서 담고 있기 때문에 저 것을 확대해 놓은 것이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전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편가에 따라서 ‘대심문관’이야말로 서양문학의 최고 훌륭한 명작중 하나가 아닌가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절찬을 받는 부분인데, 양이 얼마 안되요. 꼭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심문관’은 16세기에 스페인의 세비아 지역을 배경으로 했는데 16세기의 유럽은 마녀사냥을 많이 할 때이거든요. 곳곳에서 이단에 대한 처단, 화형, 종교재판이 한창 일어나던 때입니다. 그때 세비아에서 이단 심판을 하는 대심문관 즉 추기경이죠. 연일 화형당하고 있는 와중에 예수가 1500년 전 모습 그대로 나타난 겁니다. 나타나서는 아무 말도 안합니다. 대심문관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는 걸어가는 걸음걸음 한마디도 안하는데 사람들은 예수라고 느끼는 겁니다. 재림한거에요. 그래서 한 소녀에게 나오라고 하니까 관에서 일어나는 일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묵묵히 따르기 시작하고 대심문관이 그것을 보고는 군인들을 시켜 예수를 지하감옥에 가두고, 한밤중에 대심문관이 예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죠. 요점은 조용히 떠나라 아니면 화형 시키겠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교회의 수장이 진짜 예수가 나타나니까 예수보고 떠나라고 합니다. 왜 그랬냐고 하니까 이게 카라마조프와 연결되는 부분이 ‘대심문관’이라는 것이 말하자면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잖아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인데, 아들이 나빠서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왜 죽이게 된 것인가 이야기 할 때 대심문관과 예수의 문제가 아들과 아버지의 문제이라는 거죠. 이런 이야기 속에서 제일 핵심적인 것이 광야에서 예수가 금식기도를 40일하고 나올 때, 마귀가 세 가지 시험에 들게 하잖아요. 첫 번째가 “돌을 떡으로 만들어봐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가 한 말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오” 그러면서 안 하잖아요. 그것에 대해 대심문관이 비판을 합니다. 왜 비판을 하는가 하니까 그 때 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했다면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당신을 따랐을 것이고 일단 사람들을 우리편으로 만들어놓으면 당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가르침을 펼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 안했는가하니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일종의‘포퓰리즘’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믿음이 생기더라도 가짜믿음이고 금방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게 아들과 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때 아들은 어떻게든 현실에서 사람들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비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무능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거죠. 두 번째로는 “높은데서 뛰어 내려라”고 합니다. 이것 또한 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만약에 뛰어내렸으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천사들이 다 받쳐 줘서 티끌도 안 다치지 않았겠느냐’하면서 꼬였는데, 만약에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불신한 것이 되고, ‘아들인데 아버지를 감히 안 믿느냐며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서 죽었을 것이다’라고 대심문관이 이야기합니다. 제가 길게 이야기 드렸는데 요점이 무엇인가하면 예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주기위해 안했는데, 오늘 주이치로는 인간을 어떻게든 끌어보려고 기적을 행하려고 했다가 죽었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 요시다는 이 대목을 이렇게 읽은 것 같아요. 높은데서 뛰어내리라고 했을 때 예수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대한분인거죠. 우리의 주이치로는 그러지 않은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데 사람인척해서 야단맞았잖아요. “화성인 주제에 지구인을 대변하는 척 하지마!”라고 야단까지 맞았는데, 지구에 너무 오래 산 것 같아요, 이 사람은. 너무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죠. 영화가 어떻게 보면 대심문관의 계기를 더 잘 살린 것 같다. “그럼 태양계 연합의 의지를 증명해봐”, “원반이 그 증거야” 굉장히 마귀가 예수에게 물었던 형식과 비슷합니다. 그때 우리의 주이치로는 예수의 길을 가지 않고, 화성인인 주제에지구인의 길을 간 것이죠. 인간을 위해서 기적을 보려고 하다가 참패하고, 피를 토하고 지구를 떠나게 되는 것이죠. 굉장히 처절한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만 덧붙이자면 우주선 장면의 모습은 왼쪽의 작은 사진이 ‘칼 융’이라는 심리학자의 책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에 대한 인간의 원형적인 이미지입니다. 형태가 비슷하죠. 칼 융이라는 사람이 58년도에 재미나게도 『비행접시』라는 책을 썼습니다. 참고로 칼 융은 UFO의 존재를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국정부 대통령에게 UFO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모두 공개하라고 공식적으로 편지도 썼죠. 책을 보면 오래전부터 인류가 원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상태에 대한 것이 비행접시라는 현대적인 형태로 보이는 것이다. 이때 융이 말하고 싶은 것은 ‘UFO가 있다 ,없다’를 떠나서 ‘UFO라는 상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왜 추구하는가?’ ‘왜 UFO가 있기를 바라는가?’에 대한 심리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겠다고 합니다. 융이 하는 말이 UFO의 둥근형태가 가지는 원의 완전성에 대한 상징이다. 이때 완전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하면 인격의 통합을 말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겉으로 드러난 나와 내가 속으로 진정 추구하는 나의 모습 이것이 보통 분리 되서 살아가잖아요. 주이치로 같은 경우도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가 그것이 드러났고, 그게 각성이라는 거죠. 그것이 하나로 통일 되는 것이 완전성이라는 것인데, 어떤 상징(만트라: 원과 네모로 이루어진 그림도형)으로서 UFO를 추구한다. ‘어떤 인격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이 UFO를 통해서 공감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영화 속에서 UFO는 이노치의 상징이다. 진정한 삶의 의미, 이유 정말 살고 싶은 이유, 어떻게 살고 싶다는 이유가 통합된 命(명)을 세우는 그런 하나의 상징으로 이야기에 UFO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에서는 맨 처음에 온 가족이 UFO를 동시에 목격을 하고 마지막에 다시 UFO를 타고 온가족이 떠납니다. 그래서 문제가 굉장히 간단한데, 이 영화에서는 처음 같이 UFO를 목격하는 이야기가 없고, 맨 마지막에 같이 목격은 하지만 아버지만 떠나죠.

 

그래서 ‘생명은 각자가!’ 미시마에 이어 요시다가 새로운 버전에 맞춰 바꾼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UFO를 추구하던 자신의 어떤 인격통합, 현재의 나와 어떻게 살고 싶은 나와 통합을 추구하던 죽었다고 해도 좋고, 떠났다고해도 좋고요. 그 비밀은 감독만 아는 부분인데 사실은 죽었다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은 내려다볼 때 세상을 떠나는 그런 느낌이 있죠.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 또는 떠남을 통해서 남아있는 가족들이 각자의 이노치를 정립하고 화해하는 과정들을 그린 영화가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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