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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의 여자> 특별강연 : 임재철 평론가 2014-03-28(금)  - 시네마테크

3/28 <빨간 머리의 여자특별 강연

 

 

강연 임재철 영화평론가

장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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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네마테크 시절부터 이어져 온 월드시네마는 영화사의 위대한 발자취를 차근히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으로영화학도와 영화애호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기획전이다영화이론서나 영상자료를 통해서만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던 작품들이 과연 어떻게 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는지를 직접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흔치않다그렇기에최신 흥행작 위주로 상영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는 차별화 된 영화의전당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며, ‘월드시네마의 이번 열한 번째 여정 또한 의미가 남다른 것이다.

 

특히 이번 월드시네마 11 에서는 포커스 온 구마시로 다쓰미 숭고한 외설’ 이라는 특별한 코너를 통해, 1970년대 이후 일본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구마시로 다쓰미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돌아보고 있는데구마시로 다쓰미는 로망 포르노라는 저열한’ 장르에서 믿을 수 없는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 가히 기적적인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구마시로 다쓰미 감독의 대표작 <빨간 머리의 여자상영 후 임재철 영화평론가의 로망 포르노에 대한 특별 강연이 마련되었다.



* 이 날은 별도의 관객 및 진행자 질문 시간 없이 임재철 평론가의 강연으로만 진행되었습니다. 





 

(임재철) 영화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웃음)

 

이 영화 <빨간 머리의 여자>는 구마시로 다쓰미 감독의 대표작입니다저도 15년 전에 처음 본 후로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이 영화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사실 로망 포르노’ 자체가 영화사적으로 굉장히 특이한 장르입니다. 1970년대 초에 만들어졌는데 1980년대 후반까지 의외로 오랜 기간 이어진 장르기도 하죠이런 것들을 중심으로일본 영화사 중 로망 포르노’ 장르만의 특별한 점을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역사적인 배경부터 살펴보면일본 영화사에서의 대표적인 스튜디오 닛카쓰가 1980년대 도산 이후 스튜디오 운영을 계속해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저예산 핑크 영화를 만들기로 한겁니다일본영화는 1950년대가 전성기였습니다상업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가히 세계 최고였던 일본영화는 하지만 1960년대부터 차츰 기울기 시작하는데이 때 대부분의 일본영화 제작편수가 현저히 떨어지게 되죠결국 닛카쓰는 그렇다면 남은 인력으로 우리도 저예산 핑크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자’ 했고그렇게 <오후의 정사>라는 영화가 닛카쓰의 첫 로망 포르노 작품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일본에 핑크 영화는 있었어요근데 큰 메이저 5개 영화사가 상업영화를 주도하고 있었고핑크 영화는 영화사에 낄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비주류였을 뿐이었는데메이저 영화사들이 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겁니다.

 

그 당시 일본의 상업영화는 기본적으로 750만엔 정도의 제작비 예산이 필요했는데그 금액은 핑크 영화보다 7-8배 많은 규모라고 보시면 됩니다핑크 영화들은 촬영회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후시녹음을 했고그러다보니 일주일에 한 편 정도 만들어낼 만큼의 대단히 빠른 속도로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특히 이 핑크 영화들은 약 70분 정도의 상영시간을 기준으로 제작되었는데이런 영화는 두 편을 묶어서 같이 개봉 하는 형태로 만들어졌거든요그래서 러닝타임이 60-70분에 맞춰졌습니다제작 속도가 빠르고 작품 편수가 많은 반면,  당연히 시나리오에는 큰 공을 들이지 않았겠죠짧은 러닝타임이라 플롯이 복잡하지도 않았을테고요.

 

이런 핑크 영화 시장에 돌연 닛카쓰가 등장한 것입니다재정 위기 이후로 닛카쓰는 로망 포르노만 만들겠다고 선언무수한 로망 포르노를 만들어내기 시작해요. 1년에 50편 정도 만들어 냈는데 1980년대 닛카쓰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기까지 총 543편을 만들었다고 히니 정말 대단하죠.

 

이 흐름에 대해서는 그 당시 서양에서 더 많이 놀랐습니다주류 메이저 영화사에서 왜 이런 영화를 만들어냈는지 의아해 했던거죠특히 서양에서는 애초에 하드코어 포르노를 영화 문화 산업 자체로 포함 시켜 인식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보통 에로 영화는 성적 표현이 강한 영화를 의미하는 반면, ‘포르노는 영화산업 바깥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하지만 그런 인식을 과감히 버렸던 닛카쓰는 기존의 수준 낮은 핑크 영화들을 보며 우리 같은 전문 스태프들이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보자’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로망 포르노에 대한 또 하나의 관점은일본 문화가 갖고 있는 고유한 점이기도 한데 바로 호색적인 특징입니다한 마디로 섹스를 긍정하는 문화라는 겁니다당시 일본의 선정성 심의 기준은 굉장히 단순했어요성기가 나오지 않는 기준으로 하여그 어떤 것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한국에서 만들어진 에로 영화에 비해서는 확실히 자극적이죠특히나 유교적인 한국 사람들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반박도 있습니다특히 일본 남자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대중 문화기도 했고요하지만 일본 특유의 그러한 성적인 전통이 오래도록 로망 포르노 장르를 이어오게끔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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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구마시로 다쓰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이 감독은 기본적으로 패배주의적인 정서가 많아요경력 부분만 봐도 알 수 있는 게감독 데뷔도 남들보다 느렸던데다가 심지어 사후에 이르러서야 국제적으로 감독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 또한 그렇습니다그의 인생 자체가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던거죠.

 

오즈 야스지로이마무라 쇼헤이 등의 다른 동년배 감독들은 다 유명해졌는데본인은 그저 스튜디오의 방침에 맞춘 채 만들고 싶은 영화도 마음대로 만들 수도 없었고그런데 그러다가 의외로 로망 포르노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 겁니다그래서이런 열등감의 과정 속에서 아마도 구마시로 다쓰미 감독 특유의 패전병 미학이 순수한 형태로 그의 작품들에게서 드러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