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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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특별강연 : 김지운 감독 2014-02-21(금)  - 시네마테크

2/21 <맥스> 특별 강연


* 참석 게스트 : 김지운 감독

* 진행 : 허문영 프로그램 디렉터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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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미학이 지배하던 현대 프랑스영화의 전통 안에서, 전혀 다른 매력의 감성적 영화를 만들어 전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은 클로드 소테파트리스 르콩트’. 활동 시기는 달랐지만 두 감독에게는 사람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있었고, 인간의 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 영화속에 아름답게 펼쳐놓은 연출법은 이들만이 내세울 수 있는 강력한 영화적 무기였다.

 

221일 저녁,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비주얼리스트 김지운 감독이 이번 기획전을 위해 영화의전당을 찾았다. 평소 클로드 소테 감독의 광팬이기도 했거니와, 프렌치 누아르 <맥스>(1971)의 리메이크 제의까지 받았었던 김지운 감독은, 클로드 소테 감독과의 끊어질 듯 (아직)끊어지지 않은 운명적 스토리(?)를 살짝 들려주었다.

 

 


 

 

(허문영) 아마 이 기획전은 세계 어디의 시네마테크에서도 보실 수 없을겁니다. 클로드 소테 감독과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은 전형적인 예술영화 감독으로 분류되진 않아 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술영화에 대한 막연한 범주나 선입견으로 그들의 보석 같은 측면을 쉽게 폄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식의 손쉬운 분류를 뛰어 넘고자 준비한 기획전이 바로 이번 감정의 세공술사들: 클로드 소테 & 파트리스 르콩트입니다. 김지운 감독님 역시 그런 부류와 공감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초대를 했습니다만, 특히 지금 함께 보신 클로드 소테감독의 <맥스>7-8년 전 쯤 리메이크 제안도 들어왔었던 작품이죠?

 

(김지운)  . 제 작품 중 <달콤한 인생>이 프렌치 느와르 스타일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 간 이후부터 그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프렌치 느와르 리메이크 프로젝트 제의를 받았을 때 저는 무조건 하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어느 자리에서였던가 <달콤한 인생>에 대해, "<킬빌>과 '멜빌('장 피에르 멜빌'감독을 의미)'의 중간쯤 되는 영화"라고 소개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킬빌>의 영화적 인용과 액션, 멜빌 감독이 지닌 프렌치 느와르의 감수성이 복합된 느낌이랄까. 아마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리메이크 제의가 들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맥스>는 제가 생각했던 정통 프렌치 느와르는 아니고, 사실 로맨스가 더 강한 면이 있죠. ‘그런데 왜 나에게 이 영화를 찍으라고 했을까?’ 고민하면서 다시 찬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 영화는 참 모르겠는게, 아마 시나리오만 읽었으면 이 영화의 흐름을 전혀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특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으면서 사랑을 그리고 있죠. 소테 감독도, 대사보다는 시선이나 침묵에 더 중요한 방점이나 무게가 있다고 했었고요.

 

플롯이 진행되는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로미 슈나이더(‘릴리)는 미셀 피콜리(‘맥스)로부터 은행에 대한 고급 정보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인에게 바로 전달하지 않아요. 피콜리 역시 디데이를 빨리 정하지 않고 머뭇거리죠. 그러면서 약간씩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이 틈에서 왜 그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생겨나는 겁니다. 머뭇거리는 묘한 공기가 이 영화의 중심이었던거죠.

 

소테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삼키고 머금는 것에서 내면의 미세한 흔들림과 감정이 느껴지도록 영화들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흔한 영화들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서 소테 특유의 무드를 만들었어요. 은행을 터는 장면 역시 보통의 영화에서는 굉장히 에너지틱하고 익사이팅 하게 표현 되는 반면, <맥스>에서는 조용하게 가라앉는 분위기에서 진행되는데 이것 역시 소테만의 무드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영화 속에 여백을 만들어가는 것이 소테 감독의 영화적 무기라고 생각해요. 보여주기 보다는 들려주면서 관객의 마음을 적시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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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클로드 소테 감독은 프랑스다운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90년대에 이르러서 세계적인 걸작 <겨울의 심장>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 <맥스><겨울의 심장>이 데칼코마니 같았어요. 비극적인 사랑도 그렇고, 남자 주인공들이 유독 차갑게 구는 반면 여자 주인공들의 감정 동요는 심하다는 점. 물론 <맥스>가 그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겨울의 심장>의 태동과 씨앗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맥스>를 스크린으로는 오늘 처음 봤는데, 배우들의 표정이 더 자세히 보이니까 감독의 의도가 더 뚜렷이 보여서 좋더군요.

 

(허문영) 저도 DVD로만 보던 미셀 피콜리의 안색과 눈빛이 스크린으로 확연히 다 보이길래, 감독이 굉장히 섬세한 표현까지 영화 속에 다 담은 점을 뒤늦게 발견하고 많이 놀랐습니다. 만약 김지운 감독님이라면 이 영화를 어디에 집중해 리메이크를 했을까요?

 

(김지운처음에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새로움을 전달할까를 고민했지만, 결국은 이 영화의 무드를 어떻게 살릴까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시대적 배경은 현대로 맞추더라도 무드는 절대 버리지 말자.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당시 비상업적인 면이 많았어서 결국 중단됐었는데, 프랑스 제작자가 최근에 다시 연락이 왔길래 진행 내용에 수긍되는 점이 많아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허문영) 프랑스에서 현재 시나리오 개발중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꽤 높네요.

 

(김지운) 네 그렇죠. 저만 오케이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저는 항상 영화를 전후로 대비되는 스타일의 작품으로만 만들어왔었거든요. 아마도 호러, 전쟁 장르 같은 영화를 만들고 나면 이렇게 오밀조밀 섬세한 영화를 하고싶지 않을까싶네요(웃음).

 

(허문영그럼 다시 <맥스>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저는 이 영화가 가진 본질적인 좋은 점 중에 하나가 편집 감각이 굉장히 독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지운) 네 맞아요. 그리고 스크린에서 크게 제대로 보니, 카메라 워킹도 좋더라구요. 상당히 밀도 있고, 엔딩도 깔끔하고, 디테일하게 정리하는 스타일에, 엘레강스 하기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소박한 미장센에도 공을 들인 걸 알 수 있었어요. 음악 역시 적절했고요. 아마 음악 평론도 하셨다죠? 그 영향인지 음악들도 정확한 위치에 미니멀한 음악들을 잘 사용한 것 같아요. 클로드 소테 감독이 영화를 참 세심하게 만드는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허문영) 오늘, 감독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맥스>의 다양한 포인트를 많이 알려주고 계십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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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1) <맥스>의 영화 속 공간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해갑니다. 거의 갇혀있는 느낌이 드는데, 감독님이 연출하신 영화들과 비교를 하신다면?

 

(김지운) 영화 속 폐쇄적인 상황은, 미셀 피콜리에게 아주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립되고 갑갑한 배경을 통해 관객들에게 그런 정서를 전한거죠. 그리고 또 하나, 이 감독이 원래 설정샷을 어려워해서, 거의 배우를 따라가면서 공간을 확장해 나가는 감독이거든요. 관객분께서 정확히 보셨네요.

 

반면 제 공간은 인물과 공간이 다 진짜여야 해요. 진짜인 그 공간에서 인물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게 유도 하는거죠. 저는 영화 속 공간을 빠짐없이 다 써요. 그래서, 공간을 결국 못 버린 바람에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를 좀 답답하게 만든 경우도 실제로 있고요. 그걸 좀 벗어나 공간성이 아닌 시간성을 고민하고 만든 첫 영화가 <악마를 보았다> 였습니다. 내적 리듬감에 더 귀를 기울인 영화였죠. 저에겐 지금도 공간이 가장 큰 영화적 요소지만, 그걸 점점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제 영화적 연출력은 더 나아지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웃음)

 

(허문영) 덧붙여 공간에 관한 질문 하나 더 드려보겠습니다. 작년에 박찬욱 감독과 김지운 감독은 함께 할리우드 진출작을 내놓으셨죠. 박찬욱 감독님의 <스토커>와 김지운 감독님의 <라스트 스탠드>는 공간적인 면에서 굉장히 대조적이었습니다. <라스트 스탠드>는 확실히 미국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장소의 질감 때문이었습니다. <카워드>도 미국에서 찍으실텐데, 미국 로케이션의 특별한 감정을 알고싶습니다.

 

(김지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남북분단 이후로 위쪽까지 완전히 막혀버렸죠. 뭐랄까, 그 이후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호방함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막힌 곳을 벗어나 질주하고 싶은 욕망을 항상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 첫 영화가 바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었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로케이션에 기대가 컸어요한국을 벗어나 광활함과 때 묻음 같은 것들을 미국에서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확실히 미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감독의 장악력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그것보다 궁금함에 대한 에너지가 더 컸어서, 항시 재미있게 작업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해외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고요. 저는 앞으로도 한국과 해외를 왔다갔다 하면서 다양한 작업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