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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 특별강연 : 백은하 기자 2014-01-29(수)  - 시네마테크

1/29 <비포 선셋> 특별 강연 



* 참석 게스트 : 백은하 기자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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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에 다다른 ‘3인의 여배우’ 기획전의 마지막 특별 손님은 백은하 기자다. 1월 29일 저녁 영화의전당으로 초대 받은 그녀는 설 연휴를 앞두고 때마침 따뜻해진 부산 날씨 덕분인지 표정과 옷차림이 훨씬 밝아 보였다. 백은하 기자는 씨네21 기자를 거쳐 매거진t, 톰, 텐아시아 등 다양한 문화지의 편집을 맡아오다, 현재는 영화를 포함한 대중문화 전체를 아우르며 TV, 라디오, 강연, 저술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사실 이번 기획전의 <비포 선셋>은, 백은하 기자의 특별 요청으로 뒤늦게 상영 추가 된 작품. 백은하 기자에게 <비포 선셋>은 과연 어떤 영화일까? <비포 선셋>에 대한 그녀의 특별한 애정과 더불어, ‘비포 시리즈’와 함께 긴 시간 성장해 온 여배우 ‘줄리 델피’의 숨은 이야기도 함께 들어본다. 




(본 행사는 백은하 기자의 작품 및 배우 해설에 이어 관객들의 Q&A 시간으로 꾸며졌습니다.

아래에는 백은하 기자의 강연 내용만 일부 간추려 소개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백은하입니다. 우선 이 자리가 저는 참 어색하네요.(웃음) 저는 아무래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게스트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위치에만 있다가, 이렇게 관객 여러분들 앞에서 저 혼자 말 하는 위치가 사실 익숙하지는 않아요. 그냥 저 혼자 이야기 하는 식의 불편함 보다는, 그냥 관객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으로 이 시간 함께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비포 시리즈’ 중에서 이번에 함께 보신 <비포 선셋>(2004)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의 현재 시기와 나이대가 중심인 영화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처음에 ‘3인의 여배우들’ 기획전의 강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한치의 고민 없이 <비포 선셋>과 그 여주인공 ‘줄리 델피’를 선택했어요. 


이 영화는 8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환데, 영화 속 시간도 러닝타임과 동일하게 흘러갑니다. 80분짜리 타임워치를 켠 것처럼 파리 이곳저곳을 따라가면서, 러닝타임에 맞춰 서점에서 셀린느의 집까지, 마치 실시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찍은 독특한 방식의 영화입니다.   


비포 시리즈의 첫 번째 <비포 선라이즈>(1995)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두 젊은 남녀의 약 24시간을 영화적 편집으로 줄여나가 러닝타임을 맞췄다면, <비포 선셋>은 러닝타임과 영화진행 속도가 거의 비슷해서 보는 사람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약 9년씩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비포 시리즈’는, 특히 이 영화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에게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속 주인공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관객인 우리들 스스로의 변화도 동시에 느끼게 되는거죠. 이 시리즈와 함께 시간을 살아간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에요.   


특히 이 시리즈가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감독과 배우가 함께 써나간 시나리오 때문이기도 합니다. 몇 년간 각자 사는 곳에서 메일로 시나리오를 주고받으며 완성해 나간 것이거든요. 자기들의 일생을 걸고 만든 이 프로젝트가 정말 놀라울 뿐더러, 한편으로 감독과 배우가 서로 그런 친구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 자체도 부러워요. 물론 시나리오의 내용은 제시와 셀린느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둘 다 아닐 수도 있어요. 영화 속 주인공과 실제 배우들의 이야기가 묘하게 섞여있는 흥미로운 영화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에 대한 감흥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어서, 직접 프랑스 파리에 가서 그곳들을 둘러봤어요. 영화 속 많은 장소들 중에서도 특히 저는 셀린느의 집이 가장 궁금했거든요. 건물 구조도 특이하잖아요. 특히 에단 호크를 집으로 데리고 올라갈 때, 그 특이한 구조 덕분에 더욱 스릴 넘치지 않나요? (관객 웃음) 그런데 거길 직접 갔더니 바깥 대문이 잠겨 있었어요. 아쉬운 마음에 마냥 그렇게 10분 넘게 잠긴 문 앞에 그냥 서있었는데, 마침 거기 사시는 분이 문을 열길래 슬쩍 들어가 봤죠. ‘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느끼며 삐걱거리는 계단도 올라가봤습니다. 이어서 그들이 갔던 조그만 카페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도 다 둘러봤는데, 저에게 있어 <비포 선셋>은 그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고 싶게끔 만드는 그런 영화였던 것 같아요.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와 셀린느는 왜 6개월 후에 만나자, 라는 막연한 약속만 하고 헤어졌을까...? 셀린느는 ‘젊고 멍청했기 때문’이라 답했지만, 이에 더한 제 생각은 그 때 그 두 사람은 자신만만함을 가진데다 두려움이 없었던 어린시절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 막연한 약속에 대한 각자의 확신이 있었던거죠. 


하지만 반면에 <비포 선셋>에 이어 <비포 미드나잇>(2013)을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제시는 결국 비행기를 놓쳐요. 두 번째 만남에서 왜 그들은 첫 번째와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건, 처음 만났던 9년 전보다 지금 남은 시간이 그 때 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서로 경험으로서 충분히 알고 있고, 이런 소중한 만남이 다신 오지 않을거라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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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여배우 줄리 델피 중심으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줄리 델피는 어릴 때부터 카메라와 대중 앞에 서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배우였어요. 아무래도 배우인 부모님들 영향을 받아 예술을 자연스레 가까이 할 수 있었던거죠. 한 가지 팁으로 알려드리자면, <비포 선셋>의 셀린느 집 앞에서 파티 준비하시는 두 분이 실제 줄리 델피의 부모님들이세요.(웃음) 줄리 델피가 직접 연출한 작품들에도 그녀의 부모로 등장하고요. 이렇게 부모 덕분에 영화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가면서 연기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겁니다. 제가 어느 날 우연히 13살 때 쯤의 줄리 델피 카메라 오디션 영상을 봤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어린 나이에 농염한 느낌이 있더군요. 카메라를 유혹하는 듯한 느낌. 그런 그녀에게 프랑스 예술가들은 빠져들지 않을수가 없었던거죠. 소녀 같은 하얀 얼굴에 연약하고 마른 몸.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리 델피는 이런 외향의 조건들을 거스르는 독특한 매력의 배우로 성장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돌연 미국으로 영화 유학을 떠납니다. 그 곳에서 영화 공부를 하며 프렌치 뮤즈를 과감히 깨고 도전적인 결과물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냅니다. 그러다가 <비포 선라이즈>로 그녀는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그 때부터 그녀의 잠재력이 다방면으로 발휘되기 시작했어요. 배우 이상의 열정이 고스란히 그녀의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이어진거예요.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도 나이를 먹지만, 자신의 순수한 의지로 기쁘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여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연기, 연출, 시나리오, 음악 등 영화를 떠나서도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배우. 그래서 여전히 저는 그녀가 보티첼리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행보를 보면서 저도 더 용감해져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녀처럼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