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부대행사

부대행사

<파이트 클럽> 특별강연 : 류승완 감독 2014-07-17(목)  - 시네마테크

7/17 <파이트 클럽>

 

 

* 게스트 : 류승완 감독

* 진행 : 허문영 프로그램 디렉터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파이트 클럽> 영화 내용이 상세 언급되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

 

(허문영) 어떠세요 감독님, 오랜만에 피가 다시 끓습니까?(웃음)

 

(류승완) 저와 제 동생 배우는(류승범) 영화 취향이 완전히 다른데도, 거의 유일하게 둘 다 좋아하는 영화에요. 사실 이 영화는 류승범이 좀 더 좋아하죠.(웃음) 저는 데이비드 핀처가 저와 그나마 비슷한 동세대 감독이라는 부분에서 남다른 동질감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요. 오랜만에 피 끓는 청춘 영화, 아주 젊은 영화를 보게 되어 느낌이 묘합니다.

 

(허문영) <파이트 클럽>은 언제 처음 보셨나요?

 

(류승완) 서울극장에서 처음 봤는데, 이 영화가 1999년에 만들어졌죠? 그 때 쯤이면 제가 20대 중후반에, 영화 하겠다고 막 돌아다닐 때... 그러니까 제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만들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 필름에 대한 중요한 기록을 갖고 있는 영화거든요영화 속 필름 담배자국 장면기억나시죠? (관객들을 향해,) 극장에서 예전에 실제로 담배자국 보신 분? (필름 오른쪽 상단 담배자국을 실제로 본 관객은 아마도 이 날은 없는 듯 했다.) 실제로 45mm 필름 120분짜리를 상영할 때 보통 6권 정도의 프린트를 갈아 끼우거든요. 다음 권으로 교체할 때의 표식과도 같은건데, 이제는 사실 쉽게 볼 수 없는 흔적들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 보시면, 인물들이 담배를 엄청 피우잖아요. 이 필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담뱃불의 색감은 디지털 시대가 절대 표현 할 수 없는 색감이거든요. 저렇게 뜨거운 빨간색이 절대 안 나옵니다. 디지털로는 약간 차갑게 나오는데, 오늘 보니 이렇게 옛날 기억도 나고, ... 나도 늙어가는건가 괜한 생각까지 드네요.(웃음)

 

(허문영) 방금 말씀하신대로 <파이트 클럽><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거의 동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20대 후반 청년 감독으로서 이 영화를 봤던 그 당시의 느낌은 어땠나요?

 

(류승완) 좋은 영화는 반복해서 보면 감흥이 항상 다르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영화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변하면서 그 감흥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파이트 클럽>을 봤을 땐 영화 초반의 시각적 스피드에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흥분했었고, 마지막 반전은 물론이고 브래드 피트의 복근과 이소룡 흉내 같은 세세한 테크닉들 같은 표면적인 것에 굉장히 열광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영화의 진수를 느끼기 시작 했던 건 DVD가 활성화 된 후 부터였는데, DVD로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니, 그저 외면적 스타일에 집중한 영화가 아니라 투박한 직구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고, 오늘 또 스크린으로 다시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허문영) 어제 마이클 만 강연 시간과 연결 지어, 사실 두 감독 다 괴짜지 않습니까. (관객 웃음) 하지만, 마이클 만이 영화 연출 방식에서 광적인 집착이 심했다면, 이 영화를 만든 핀처 감독은 애초에 정신 상태가 남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류승완) . 인성이 곱진 않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 두 분 다 사진 보시면, 벌써 얼굴 딱 각지고 성격 대단해 보이잖아요. 사적으로 만나도 쉽게 형,동생은 못할 것 같아요.(웃음) 박찬욱 감독이 <스토커> 찍을 때, 데이비드 핀처 감독 촬영 현장을 방문했다가 미술 감독님을 만났다는데, 그 분 증언에 의하면 핀처 감독은 촬영, 미술 등 영화제작팀의 어떤 분야를 맡았아도 다 잘 되었을 만큼 집요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핀처가 마이클 만과는 다른 지점에 있는 것이, 마이클 만은 눈에 보이는 현상 그대로에 집요함을 보이는 데에 반해 핀처는 오직 영화로만 보여줄 수 있는 놀라운 테크닉을 선보인다는 점 같습니다. 타이틀 시퀀스에도 엄청난 공을 들이는 것 보셨죠. 그런 것들 때문에 내러티브의 본질적인 접근과는 좀 충돌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본과 기술에 얽매이지 않는 무정주주의적인 사상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결국 감독 자신은 자본과 기술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허문영 프로그램 디렉터 말씀처럼 핀처가 테크닉 중독자이기 때문에 이런 극과극의 영화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는 이번에 데이비드 핀처가 남자들을 다루는 방식에 좀 놀랐습니다. 마이클만과 정 반대의 입장으로 이 영화가 봐지더군요. 마이클 만 영화 속의 남자들은 허세 강하고 고전적인 영웅주의 냄새가 풍기는 캐릭터들인 것에 반해, 핀처 영화 속의 남자들은 연약하고 지질하고 실수가 많습니다. 운명론적인 상황에서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게되어 결국 쩔쩔매는 남자들이죠. 오히려 이 때문에 현명한 여자들이 피해를 입게 되고요.

 


 

 

4

 

(허문영) 이 영화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류승완 감독님의 <주먹이 운다>(2005)가 연상이 됩니다. 제목도 비슷하고요. 데이비드 핀처는 기본적으로 육체의 고통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있어요. 흔한 액션 영화의 통쾌한 쾌감보다는 사실 피학의 쾌감에 더 충실하죠. <주먹이 운다>도 그런 면에서는 이 영화와 일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류승완) <주먹이 운다><파이트 클럽>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장면은 딱 하나가 있습니다. 타일러가 클럽 공간을 무료로 계속 쓰기 위해 주인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나서, 허리춤이 잡혀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그 장면을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주먹이 운다> 류승범의 교도소 싸움 씬에서 두 사람을 공중에 띄웠던 부분은 확실히 이 영향을 받았죠. 근데 저는 솔직히 <파이터 클럽>의 고통스러운 액션 씬을 꽤 힘들어 하면서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은 건, 아나키즘적인 면 있죠? 2병 걸린 애들처럼 만든 장면들.(관객 웃음) 이런 게 공감이 갔거든요. 남들이 이 영화 왜 좋아?’ 물어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더 있어요. 이건 마치 자연스럽게 육화된 느낌 같아요.

 

 

(허문영) 이 영화의 라스트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류승완) 이상하게도 저는 이 영화를 볼 때 마다 엔딩에 대한 기억이 늘 잘못 되어 있었다는 걸 반복적으로 깨닫습니다. 전 항상 에드워드 노튼이 죽기를 바라면서 봤던 것 같거든요. 근데 살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다시 본 마지막 장면은 이전보다 감흥이 적었습니다. 자주 봐서 그런지 약간 치기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오늘 다시 보니까 저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좀 무거웠습니다.

 

(허문영) 확실히... 감독님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계관과 생각이 좀 바뀌는 것 같군요.(관객웃음)

 

(류승완) 나이도 들고 아이도 있고 하니까...(웃음) 이젠 행복하게, 좋게좋게 끝나는 엔딩이 좋더라고요.

 

(허문영) 사실 이 영화의 엔딩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 타일러는 총이 머리를 관통해서 죽었는데 정작 본인은 목에 상처만 나고요. 그렇게 사건이 잘 마무리 된 줄 알았지만 끝내 빌딩들은 다 폭파해 버리죠. 이 이상한 트릭들이 소름끼치게 만듭니다.

 

(류승완) 저도 그 이상한 기운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영화가 9.11 테러 전에 만든 영화잖아요. 그 날 이후에 이걸 보니 확실히 더 불편하더군요. ‘저게 빈 빌딩 하나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분명히 옆 건물에도 피해가 갔을텐데...’ 같은 이상한 도덕관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왜 저들 때문에 무모한 사람들이 다쳐야 하는거지?’ 이런 생각들 말이죠.

 

(허문영) ... 역시 감독님이 나이가 들어서...(관객웃음)

 

(류승완) . 자식 낳고 살다보니까. (웃음) 그런데도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으니까. 배우들 연기도 대단하고, 화면 테크닉들도 빨려들만큼 완벽하니까 또 싫지는 않은거죠. 아마도 이 영화는 세대에 따라, 또 개인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5

 

(관객1) 디지털 촬영과 필름 촬영에 대한 감독님의 개인적인 선호도가 궁금합니다.

 

(류승완) 저는 개인적으로는 필름이 좋아요. 여건만 되면 계속해서 필름으로 찍고 싶지만, 1억 가까이 차이가 나는 예산 때문에라도 이제는 필름으로 한국에서 찍기는 힘들죠. 현재까지는 아마 <설국열차>가 마지막 필름 영화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물론 다양한 장점이 있죠, 현장운영도 훨씬 빨라지고. 하지만 완성 된 결과물을 봤을 때 더 큰 노력이 섞인 필름의 질감은 디지털이 차마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반작업에 공들이는 데이비드 핀처의 입장에서는 디지털이 천군만마 같았을 거예요. 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더 강해서 그런지, 오직 카메라가 현장에서의 권력 중심이 되었던 필름 현장 때가 더 그립기도 합니다. 저는 그래서 필름과의 이별을, 애틋한 기억 혹은 소중했던 내 인생의 일부로 기억하고 싶어요.

 

(관객2)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중에서 이 장면은 정말 탐 난다생각하는 장면 있으신가요?

 

(류승완) 너무 많지만... 먼저 <에일리언 3>(1992) 특유의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듯한 답답한 느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세븐>(1995) 에서 브래드 피트가 상자를 열었을 때, 우린 분명 그 상자 속을 스크린으로 보지 못하지만 브래드 피트의 표정만으로도 그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거든요. 그 장면이 가장 좋았어요. 그리고 캐빈 스페이시가 자수하러 들어오는 장면도 정말 소름 돋죠. <파이트 클럽>에서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허리춤이 잡혀 몸이 붕 뜨는 장면이 희한하게 저는 그렇게 좋아요. 그리고 초반 장면에서 가구 살 때 마치 카다로그 처럼 집 안을 훑는 장면. 이후에 다양한 CF로도 활용되었을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였는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 한 컷이 휙휙 지나가는 효과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쓸데없는 장면을 넣지 않는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감독은 없어도 되는 장면을 꼭 필요하도록 만드는 감독이 진짜 훌륭한 감독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핀처는 필요 없어도 될 것 같은 장면을 굉장히 빛나는 명장면으로 만듭니다. 서사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에 반드시 필요한 장면들로 만드는 것이죠.

 

(허문영) 처음에 두 주인공이 만나 영사실에서 일하는 타일러를 보여줄 때, 타일러가 가족영화 영사기 필름에 포르노 영화 한 숏을 집어넣은 것 기억하시죠? 그것과 같은 방식으로 핀처는 브래드 피트 두 세 프레임 숏을 중간중간에 집어넣었습니다. 이 효과와 장면은 그런 면에서 서로 동일하게 맞닿아있는 주제의 삽입샷이라 하겠습니다.

 


 

 

(허문영) 감독님을 모시면 이렇게 항상 예정된 시간을 넘어섭니다.(웃음) (1045) 또 워낙 말도 많으시고요.(관객웃음) 사실 밤을 꼬박 새도 모자랄 만큼 많은 영화 이야기와 현장 경험담을 갖고 계신 분이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아마도 내년 설 쯤에 개봉 할 <베테랑>을 저희 영화의전당에서 상영 할 때 다시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이틀 동안 수고해주신 류승완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