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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의 거리> 특별강연 : 류승완 감독 2014-07-16(수) -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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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 <비정의 거리>
* 게스트 : 류승완 감독
* 진행 : 허문영 프로그램 디렉터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비정의 거리> 영화 내용이 상세 언급되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허문영) 4개월에 걸친 <베테랑> 촬영 후 이제 겨우 열흘 쯤 지났나요? 영화 작업 때문에 많이 피곤하실텐데 이렇게 부산까지 찾아와주셨습니다.
(류승완) 아닙니다. 제가 지금 성대 상태까지 안 좋아서, 오히려 제가 오늘 오신 관객분들께 양해를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허문영) 한창 <베테랑> 촬영 중이실 때, 이번 ‘마이클 만 & 데이비드 핀처’ 특별전에 관련해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십사 부탁을 드렸었습니다. 두 감독 중 한 분의 작품만 정해서 일정을 알려 달라 말씀드렸는데, 흔쾌히도 류승완 감독은 두 감독의 영화 한 편씩을 모두 하고 싶다고 답을 주시더군요. 우선, 감독님도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오늘 처음 보셨을텐데, 소감이 어떠셨는지?
(류승완) 고백하자면, 사실 잠을 거의 못자고 온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오늘 이 영화를 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비디오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VHS로 처음 접했는데요, 그 때 <맨헌터>와 <비정의 거리>를 보고 완전히 흥분했었죠. 이 영화를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정의 거리>만큼은 스크린으로 꼭 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 이 영화를 비디오로 봤을 당시 ‘와... 도둑질도 노동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영화 속의 행동력들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 또 오랜만에 다시 보니, 제 오랜 기억 속에서 왜곡된 장면들도 몇 있더군요. 오늘 다시 보고서 가장 놀란 건 도시 풍광 이었어요. 주인공 피사체를 희생 시켜 가면서 까지 무드를 표현해내는 고집이 대단하고 신기하다 생각하며 봤습니다.
(허문영) 그렇다면, 마이클 만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류승완)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인사이더>입니다. 최고인 것 같아요! <알리>도 아주 좋아하는데, 이 양반의 촬영 스타일을 제가 굉장히 좋아합니다. 특히 과도할 정도의 광각렌즈 사용 같은. 클로즈업의 극대화와 더불어 인물을 다루는 직접적이고 거친 방식을 좋아해요.
(허문영) 아무래도 류승완 감독님은, 우리가 영화로만 접할 수 있었던 마이클 만 보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의 ‘마이클 만’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여러모로 사실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류승완) 미국 프로듀서들의 증언에 의하면, 절대 같이 일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웃음) 통제 불능의 악명 높은 감독.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적 완성도가 높으니까... 그래서 프로듀서에게는 오직 두 가지의 선택이 있는거죠. 애초에 감독과 싸우지 않고 서포트만 하거나, 아니면 아예 같이 작업 하지 않는.
(허문영) 이 감독, 이 쯤 에서는 참 괴짜다... 라는 생각이 드시죠? (관객웃음) 특히 주차 되어있는 차들을 불태우는 장면은, 왜 저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류승완) 심지어, 주차장 차들을 다 태우지도 않아요! (관객웃음) 첫 데이트도 장면도 이상하잖아요. 솔직히 영화의 균질한 맛은 없는데도, 또 영화 속에서 할 말은 다 하거든요. 대화 장면에서는 그 속에 굉장히 많은 정보를 담았다가도, 또 반면 어떤 장면에서는 대사 한 마디 없이 행동으로만 보여주고.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연결이 아니라, 감독의 ‘나 하고 싶은대로 할래!’ 같은 느낌이 있어요. 음악도 굉장히 과하게 쓰여졌고요.
(허문영)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이라고 매해 최악의 영화들을 선정하는 미국 시상식이 있는데, 그 당시 <비정의 거리>가 최악의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웃음)
(허문영) 이 영화는 분명 범죄액션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은 마지막 총격씬밖에 없습니다.
(류승완) 절도 장면도 거의 ‘체험 삶의 현장’ 같잖아요. (관객웃음)
(허문영) 심지어 절도 장면에서 사용되는 기구들도 하나같이 세련되지 않고 무겁고 크고. 정말 범죄 ‘노동’영화 같죠.
(류승완) 네. 마이클 만 특유의 스타일이기도 한데, 이런식으로 과정들을 집요하게 보여주니까, 오죽했으면 우리들도 이걸 보면서 이 범죄가 제발 성공했으면 좋겠다 싶은거죠. (웃음)
(허문영) <비정의 거리>에서 금고를 털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도구들은 실제 범죄에 사용된 도구들이었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악질 비리 형사역 배우가 실제 은행털이범이었는데(실제로 여러분들 보시기에도 형사같이 생기진 않았죠?), 이 영화에서 절도 기술을 배우들에게 실제로 가르치면서 그 도구들도 함께 사용한거라고 하네요. 하지만 안타까운 건 그 배우도 몇 편 영화를 찍긴 했는데, 그 이후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는지 다시 은행털이를 하다가 결국 체포 되었다고 합니다.
(류승완) <타짜>(2006, 최동훈) 에서도 손기술이 뛰어났던 실제 타짜가 영화 속에 등장했었고 주연들 손 대역도 함께 하셨다고 해요. 영화를 찍으면서도 CG 아니냐고 할 정도로 손기술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괜히 그 분의 요즘 근황이 궁금해집니다. (웃음)
(허문영) 이런식으로 마이클 만 감독은 플롯은 완전히 무시하면서 한 씬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경향이 있죠.
(류승완) 또 하나 예를 들면, 총격 씬인데요. 제임스 칸(프랭크 역)의 총 쥐고 방어하는 포즈들도 굉장히 디테일하거든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를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한 컷 한 컷 더 리얼하게 보여주려는 것 같아요. 또한 마이클 만은 특히 거리를 묘사하는 스타일도 남다릅니다. 심지어 밤이 더 안전한 느낌이 들죠. 아마 빛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묘사를 봐도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반면, 집에 불 지르고 폭파 시키는 장면이나 총격 장면에는 사이렌 한 번 울리지 않고 그 많던 형사와 경찰들도 전혀 등장하지 않거든요. 그렇게 마지막엔 완전히 장르의 세계로 빠져버립니다. 아마도 초기에는 감독이 ‘스타일리스트’와 ‘리얼리스트’의 불분명한 정체성으로 인해 그 나름의 특별한 작품들을 이렇게 탄생 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