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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감정> 관객과의 대화 : 정영헌 감독 2014-06-29(일)  - 소극장

6/29 <레바논 감정> 관객과의 대화

 

 

* 게스트 : 정영헌 감독

* 진행 : 박인호 영화평론가

* 장소 : 영화의전당 소극장

 

 

 

 (영화의 중요 내용 및 결말이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

 

(박인호) 이 영화의 제목은, 엔딩크레딧에서도 잠깐 언급 되었지만 최정례 시인의 레바논 감정이라는 시에서 따 온 것입니다. 시의 내용처럼 영화 역시 세상의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이야기했는데, 관객 여러분들께서도 이 영화를 보시고 각자 다양한 감정을 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시간 관객 분들의 많은 질문과 감상평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저는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어머니를 언급하신 것을 보고서, 감독님에게 어머니가 이 영화의 중요한 열쇠거나 남다른 시작점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혹시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영헌) 그런 자막을 넣게 된 이유는, 2010년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 때 제가 2년간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거의 침대에서만 시간을 보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이걸 견뎌내려면 뭔가를 해야 한다 고민하다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에 무작정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동안 주운 이야기들의 파편을 모아 영화를 만든겁니다. 특별한 시나리오도 없이 촬영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 보면 불명확한 부분이 많지만, 어쨋든 확실히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가 결정적인 영화제작의 계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박인호) 감독님이 겪었던 시간과 감정들을 영화에 그대로 담으신 촬영 기간 동안, 특별했던 기억들을 듣고 싶습니다.

 

 

(정영헌) 좋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고, 전부 다 힘들었어요. 춥기도 엄청 추웠고. 그리고 시나리오가 없는 상태에서 사전 준비 없이 시작하다 보니, 아침마다 모든 스태프들이 저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 중압감이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촬영 중 어느 날은, 그 스트레스를 도저히 이기지 못해 차 키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 하고 촬영을 접은 날도 하루 있어요. 그렇게 저 스스로 과부하가 걸려서 그만두고 싶더라구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라는 게... 어쨋거나 영화가 끝나고 나니 좋은 소식도 들리고 해서, 이제야 함께 했던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가족이 된 것 같아요. 그 땐 모두가 적이었는데.(웃음)

 

 


 

 

 

 

6 

  

(관객1) 저는 여주인공을 일종의 사냥감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두 사람 모두 다리를 다치는 등 남자와 여자가 동일화 된다 혹은 비슷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영헌) 굉장히 잘 보신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로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두 사람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의 의지는 사실 정반대거든요. 남자는 과거를 되돌리고 싶고 여자는 과거를 지우고 싶죠. 하지만 그 가운데서 서로를 통해 위안을 받고 결국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려는 영화예요.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세상과 단절 되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다리를 다치게 연출한 겁니다. 그래도 결국 두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함께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관객2) 제목이 강렬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영화에 담으신 본질이 궁금해집니다.

 

(정영헌) 사실은 제목 때문에 엄청 후회를 했어요. 어딜 가도 제목의 의미를 가장 먼저 물어보니까.(웃음) 그러다보니 보는 사람들에게 영화제목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도록 만든 제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감정이라는 시는 원래 연애 이야기예요. 제가 한참 힘들 때 그 레바논 감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정답 또는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 같아요. 나의 이 복잡한 감정에 대해 굳이 정답을 찾지 말고 그냥 시구처럼 레바논 감정이라고 하자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주변 모두가 이 영화 제목을 반대했지만 더 근사한 제목을 찾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이 제목에 대한 고집을 부린 건 잘 된 거라 생각해요.

 

 

 

(관객3) 어머니 영혼의 등장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정영헌) 어머니의 환영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남자를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있었고, 반면 남자를 위로하는 유일한 존재였죠. 마지막 어머니가 절을 하는 장면은... 저는 제가 이미 떠난 사람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 했을 때, 차라리 떠난 사람이 나를 좀 놓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 장면을 넣게 되었습니다.

 

 


 

4

 

(관객4) 캐릭터들은 어떻게 만드신건지?

 

(정영헌) 제가 상상한 캐릭터는 아니고 거의 다 실제로 제가 겪은 캐릭터들입니다. 가죽점퍼 남자는, 어릴 때 저를 괴롭혔던 무서운 형을 캐릭터로 만든거죠. 그 땐 제가 교회를 다녔었는데, 매주 교회에 가서 저 형이 나를 괴롭히지 말도록 해달라고 기도할 만큼 무서웠거든요. 학교 끝나고 일주일 내내 끌고 다니면서 때리고 묶고... 근데 지금도 그 형을 만나고 있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서 대체 그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 형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저수지 아저씨는, 제 집 근처 저수지에서 실제로 낚시하는 분이 한 분 계셨어요. 그 곳은 사실 낚시터가 아니라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임시로 만들어놓은 곳이었거든요. 그 분도 정상적인 분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 뭐 하시냐 슬쩍 물었더니 의외로 친절하게... 아내와 딸이 이 저수지에서 죽었대요. 그래서 자기가 낚시로 건져야 한다고 답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캐릭터로 만들었던 거죠. 다만 여자 주인공은 유일하게 상상속의 인물이에요. 남자 주인공은 당시 제 모습이 많이 투영 되었던 것 같고요. 그렇게 실제 인물이 캐릭터로 발전하면서 더 재밌어졌던 것 같습니다.

 

 

(관객5) 보통의 영화 속 폭력은 사건의 발발이 되는데, 이 영화는 폭력의 지점이 좀 다르다고 느껴졌습니다. 사건을 결말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영화 속에 공사현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정영헌) 신기하게도, 방금 하신 것과 똑같은 질문을 프랑스 한 매체로부터 받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부분에 대해 잘 인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제 경험상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결말이 항상 아름답진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전쟁같은 결말이 정작 저를 매번 정신 차리게끔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속 공사현장들에 대한 의미는, 이상하게도 모든 로케이션지가 다 공사중이고 제대로 된 곳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멀쩡한 공간을 다 파헤치는데, 그게 저는 전쟁터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 제 느낌이 공사장으로 표현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 <레바논 감정> 속 전쟁터 같은 느낌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했고요.

 

 


 

 

 

 

 

(박인호) 다음 작품도 겨울에 찍으실 건가요?

 

(정영헌) 다음 작품으로는, 지금보다는 제작 규모가 큰 메이저에서 준비하는 영화를 계획하고 있어요. 시나리오가 저번주에 나왔고요. 이 영화는 부산이 중심입니다. 부산 전체가 고립 되어 쫓기는 상황이 그려지는 느낌을 그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공부한다고 생각하며 요즘 보고 있는 영화들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들인데, 특히 <들개>라는 영화처럼 쫓고 쫓기는 그런 영화들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아마도 내년 봄 쯤 촬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인호) 관객 여러분들 모두 이 영화 속 독특한 지점을 각자 마음에 하나씩 가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비밀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신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