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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특별전Ⅱ특별강연(2):허문영 프로그램디렉터 2015-07-23(목)  -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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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강연 : 허문영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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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첫 장면이죠? 손의 클로즈업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영화사상 가장 기괴한 오프닝 쇼트입니다

왜 기괴하냐면 이 영화는 회상영화죠나이든 휴 모건이 회상을 하는 영화입니다

나이든 휴 모건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손만 보입니다

손과 낡은 구두만 보입니다


이게 자연스럽습니까? 사실은 굉장히 기괴한 선택입니다. 그 이후로도 회상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타이타닉을 비롯해서 회상이 거의 전부인 영화가 굉장히 많습니다. 회상 주체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는 저는 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회상 영화에서 회상 주체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제가 기억하는 유일한 영화입니다. 손만 드러나고 손만 클로즈업 합니다. 이건 굉장히 이상합니다. 도대체 왜 이상한 클로즈업이 태어났는가 하는 것은 사실은 영화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존 포드 서부극 밖에 못 보다가 제가 무슨 일로 1997년에 캐나다의 어떤 도시에서 잠시 머물 때 비디오 가게에서 몇 개 빌려 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였습니다. 그냥 존 포드라는 이름이 있어서 몇 개 뽑아서 봤습니다. 사실은 대사를 제대로 잘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펑펑 울었습니다. 오늘 아마 처음 보신 분들은 비슷한 감흥을 느끼셨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굉장히 슬픈 영화였습니다. 사실은 대사를 못 알아들어도 대충 아시겠죠? 대사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장면들을 보면 무슨 영화인지 알 수 있는 영화인데요. 너무너무 슬픈 영화고 그 때 이국 도시에 홀로 버림받은 느낌으로 혼자 있는 사람에게는 마약과 같은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실제로도 이 영화는 당대 관객들을 엄청나게 울린 영화입니다. 1941년에 만들어져서 그 해 최고 흥행작이었습니다실제로 저도 처음 볼 때 펑펑 울었기 때문에 틀린 게 아닙니다. 너무 슬픈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이 영화를 계속 보면 점점 무서워집니다. 기괴한 영화입니다. 이렇게 기괴한 영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딱 첫 장면만 봐도 너무 기괴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회상 주체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로만 나올 수 있는가. 그리고 회상이 끝났을 때 현재로 돌아옵니까?  현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 손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입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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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보면 볼수록 되게 이상하다,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시작장면부터 이상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큰 형이 죽었는데 공부 잘하는 애가 광부가 되겠다고 하고 이미 영화의 초기에 임금삭감이 이루어지고 파업이 벌어지며 광부생활이 혹독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굳이 광부가 되려는 애를 부모가 말리지도 않습니다. 얘가 왜 광부가 되려는지도 딱히 알 수도 없습니다. 더 이상한 건 형제들 간에 61녀였는데. 누나는 나오는데 형들과 휴 모건이 눈빛을 나누는 장면이 단 한 장면도 없습니다. 다시 보시면 아시겠지만 형제 둘이 떠나갈 때 휴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 이상한 게 있습니다. 이보르의 장례식을 치를 때 휴가 없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뭔가 이상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처음 볼 때는 슬픈 멜로드라마였던 것이 보면 볼수록 이상한 것들이 들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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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고 나서 현재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회상의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굳이 논리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돌아올 현재가 없다는 겁니다. 혹은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과거는 어떻습니까. 휴의 주관적 회상으로 구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상이 시작된 지 15분 만에 임금삭감을 통해서 파업이 벌어집니다. 그 뒤에 잠시 휴의 어머니가 회복되면서 짧은 행복의 시기가 있었습니다만. 그 시기를 제외하고는 비참한 생활에 관한 영화입니다. 아주 비참합니다.

그리고 제일 비참한 것은 공동체가 날이 갈수록 더 사악해진다는 겁니다. 날이 갈수록 위선적이 되어가고, 날이 갈수록 탐욕적으로 되어 가고, 날이 갈수록 서로를 더 불신하며 증오하게 됩니다. 마지막이 바로 그런 거죠. 모린 오하라와 그 목사의 불륜을 소문내고 다니는. 그리고 그것으로 목사를 단죄하는 교회를 믿는 공동체. 그 전부터 공동체의 추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아주 짧은 예외적인 순간이 휴와 엄마가 잠시 회복됐을 때뿐입니다.

그 외에는 이 영화가 시작되고 15분 뒤부터는 계속 몰락만 해갑니다. 점점 더 추악해져갑니다. 달리 말하면 나의 아름다운 시절이여 라고 회상을 시작했는데 회상을 조금 하다 보니 너무나 추해져버립니다. 추한 기억들이 몰려옵니다. 정리를 하고 현재를 빠져나와야 하는데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회상이 정리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어떤 결말이 있어야하고 정리가 있어야 하며 서사적 매듭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회상에서 어떤 서사적 매듭이 있습니까. 서사적 매듭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동력을 줄 수 있는 서사적 매듭이 회상 안에 없습니다매듭을 찾을 수 없으니까 이 영화의 결말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하는데 돌아오지 못하고, 다시 회상의 처음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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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굳이 말하자면 정상적인 플래시백이 아닙니다. 병적 주체 회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매듭을 찾지 못한 불완전한 회상. 혹은 그 자신의 최초의 목적을 회상 안에서조차 찾지 못하는 자의 회상입니다. 이 회상은 정말 기괴한 회상인 겁니다. 여러분, 회상 주체인 영화에서 과거로 끝맺는 것은 많이 봐왔습니다만. 그래도 과거는 현재를 경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름다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과거로 갔다가 한 2년간의 회상을 했다가 다시 회상의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기괴한 회상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를 가진 플래시백 영화는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존 포드의 어떤 점을 찾을 수 있느냐. 저는 당분간 이 영화에서 존 포드적인 어떤 것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한 감독의 작품을 여러 편 볼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에 감독적인 어떤 것이 있으면 그것이 그 영화에서 뭔가 우월한 어떤 지위의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존 포드적인 영웅이 등장하는 어떤 장면이 있으면 영화에서 보다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존 포드 영화를 볼 때면 존 포드를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존 포드 영화에서는 존 포드적인 어떤 숏들, 존 포드 적인 어떤 표현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정리하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그 영화에서 보는 것 그리고 느끼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서 존 포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존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는 그것과는 다른 어떤 감흥, 어떤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 라는 걸 스스로에게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봤을 때 영화사상 그 어떤 감독보다 많은 것을 전해주는 사람이 존 포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존 포드적인 것의 요소들을 우리가 추상해서 뽑아낼 수 있지만 그것들이 끝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존 포드의 개별적인 영화는 그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더 위대해 질 수도 있는 그런 영화가 존 포드 영화라고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