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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 키튼' 특별강연 : 장준환 감독 2015-05-30(토)  - 시네마테크

5/30 버스터 키튼 특별전

     <사랑의 보금자리>, <셜록 주니어>

 

* 게스트 : 장준환 감독

* 진행 : 허문영 프로그램 디렉터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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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지금 열리고 있는 버스터 키튼 특별전은, 지난 2006년 수영만 시네마테크부산 시절에 기획 프로그램으로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탄생 120주년을 맞은 2015년 올해 꼭 다시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와중에 장준환 감독님과 함께 버스터 키튼 영화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장준환 감독님과 버스터 키튼이 코드가 맞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실 장준환 감독님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 <2001 이매진> 이라는 단편을 보고 약간의 황홀한 감정을 가졌었습니다. 자신을 환생한 존 레논이라고 생각하는 백수 청년의 백일몽 같은 슬픈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뒤죽박죽이지만 상상력이 뛰어난 영화였어서, 이 단편을 만든 감독의 장편 영화를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2002, 본 사람들 대부분 그 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뽑았던 <지구를 지켜라>를 만드셨고, 저도 그 때 ! 내가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생각했었습니다. 장준환 감독님은 이후 긴 휴식기를 거치면서 드디어 재작년에 <화이>를 만드셨죠. 이렇게 저는 개인적으로 버스터 키튼의 영화가 장준환 감독님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감독님께서 직접 보신 소감은 어떠신지 우선 듣고 싶습니다.

 

(장준환) 여러 가지 면으로 버스터 키튼은 굉장히 흥미로운 것 같아요. 특히 <셜록 주니어>(1924) 같은 작품은 이야기의 짜임새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영화 안에 또 다른 영화가 있고, 그 영화 안으로 들어가서 모험을 벌이는 구성들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라는 영화가 있는데, 한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여자가 매일 그 영화를 보러 오니까, 영화 속 배우가 튀어나와 또 영화를 보러 왔냐며 그녀를 이끌고 나가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 인데요. 혹시 우디 앨런이 <셜록 주니어>를 보면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버스터 키튼은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이용해서 영화라는 매체를 더 재미있는 놀이터로 만든 것 같았습니다. 저 시대에 어떻게 저런 앵글을 맞출 수 있었으며 도대체 저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지금보다 훨씬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선배들이 옛날부터 있었구나... 라는 생각들이 들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멋진 영화 선배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허문영)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으로 놀랄만한 장면들이 많이 있었죠?

 

(장준환) 영화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피아노 앞으로 굴러 나오는 장면들은 다양한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잘 사용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앵글들을 정교하게 맞춰가면서 사자 우리 속, 바다, 사막 등 다양한 배경으로 절묘하게 바꾼 기술들 또한 놀랍고. 특히 오토바이를 혼자 타고 기차를 거쳐가는 위험한 장면들 같은 경우는, 아무리 합성이라 하더라도 스턴트의 정교함까지 접목시켜 그 당시에 모두 해냈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고 스턴트 스킬이 장난이 아니죠. 요즘의 영화들이야 편집 컷이 굉장히 많아서 스턴트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함께 보신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대부분 롱테이크로 스턴트 장면들을 연기하는데 저걸 도대체 어떻게 해냈을까 싶어요. 그런 장치들을 다 고안해서, 만들고, 작동 시키고, 촬영까지 해냈다는 것이 지금 봐도 정말 놀랍습니다

 

 


 


(허문영) 저 당시에 유독 몸 개그의 달인들이 꽤 많았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버스터 키튼의 몸 개그야말로 최상급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몸 개그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건을 다 해결해버렸죠. 그렇다면 감독님은, 당시 몸 개그의 또 다른 달인이었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와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본 느낌에 대한 차이가 있으셨나요?

 

(장준환) 찰리 채플린 역시 엄청난 액션을 구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버스터 키튼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채플린을 처음 봤을 때는 슬프고도 재밌고 아름다운 느낌의 페이소스가 있었다고 한다면, 키튼은 그보다 훨씬 더 남성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액션도 그렇고 이야기 구조도 그렇고 단순하지만 확실하고 디테일한 해결점을 제시하는. 버스터 키튼은 그래서 좀 더 시원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허문영) 버스터 키튼은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아버지가 약장수였습니다. 키튼 부부는 약을 팔러 돌아다니면서 투 키튼 쇼를 했었는데, 버스터 키튼은 한 살 때부터 무대로 올라가서 재롱을 부렸었고, 정식으로는 네 살 때부터 공연을 시작했다고 하죠.

 

(장준환) 저도 버스터 키튼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 두 살 때 부터 저런 슬랩스틱 스턴트를 했었대요 어린애가. 관람객이 아동학대로 신고를 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이런 공연에 익숙했던 사람이고, 타고난 운동 감각으로 훈련이 잘 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래 사셨죠. 다른 작품들 보면 정말 더 위험했던 것이 많거든요(웃음). 하지만 그에게 이런 무모하고 용감한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90년 뒤 오늘 이렇게 놀라운 영화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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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버스터 키튼은 무성영화 시대에는 당대 최고의 흥행사로서 이름을 날렸지만, 찰리 채플린과는 다르게 유성영화 시대에 들어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할리우드에서 찬밥신세가 되어버립니다. 키튼의 마지막 걸작이라고 할 작품이 바로 <카메라 맨>(1928)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후에는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합니다. 반면 찰리 채플린은 유성영화 시절에도 영화를 만들며 영화적 명성을 이어나갔고, 나중에 <라임라이트>(1952)를 만들 때는 버스터 키튼을 조연으로 기용해서 같이 공연하기도 합니다. <라임라이트>는 당대 최고의 무성 영화 시대를 이끌었던 두 영웅이 한꺼번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약간 뭉클해지는 영화이기도 하죠. <라임라이트> 주제곡이 특히 유명한데, 채플린이 직접 작곡한 음악이고, 그 음악은 한국에서도 영화 프로그램의 주제곡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장준환 감독님도 방금 말씀하셨지만 찰리 채플린 영화의 경우는 캐릭터 드라마의 성격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캐릭터 중심적인데다가 관객과의 감정적 동일시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대신 버스터 키튼은 그런 건 없죠(웃음). 건조하고 막무가내고,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키튼의 영화는 당대에는 좀 더 상업적이지만 대신에 질은 낮다고 여겨졌습니다. 왜냐하면, 채플린처럼 인물에 대한 정감을 주거나 감정적 고양을 느끼게 해줘야 영화가 좀 품위 있어 보이는데, 버스터 키튼은 때려 부수고 헤매고 부딪히고 떨어지고... 시종일관 몸개그로 시작해 몸개그로 끝난다는 인상 때문에, 당대에는 질적으로 한 수 아래의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60년대 이후에는 그 평가가 역전이 됩니다. 60년대 이후로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너무 감상적이지 않느냐, 오히려 버스터 키튼의 영화야말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활동모션 픽쳐’ 에 대한 활력과 생기를 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보여준 사람이지 않느냐 하는 평가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영화광들 사이에서는 보통 이렇습니다. 찰리 채플린을 좋아한다고 하면 약간 한 수 아래로, 버스터 키튼을 좋아한다고 하면 영화 좀 아는 사람.(관객 웃음) 옛날에 일본 영화 한참 들어올 때도 그런거 있지 않았습니까. "난 구로사와 아키라 팬이야" 이러면 '쟤는 영화 좀 더 봐야겠다.' "그럼 너는 누구냐" 그러면 "나는 오즈 야스지로."(관객웃음)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또 바뀝니다. 일본 감독 중에 오즈 야스지로를 이야기 하면 '얘는 좀 멀었구나.' 하고, "그럼 너는 누구냐" 하면, "이제는 나루세 미키오."(관객웃음) 이렇게 영화광들 사이에서 약간 유치한 선정 경쟁 같은것이 이루어졌었죠. 이런 식으로 버스터 키튼은 60년대부터 영화광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언급 된 이름인데, 물론 꼭 채플린 보다 실제로 위대해서라기 보다는 당대의 시네아이콘 같은 의미로 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고, 실제로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당시에 버스터키튼 회고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장준환) 나중에 나중에... 지금으로부터 90년 후 쯤 한국 영화를 말하면서 어떤 얘기가 나올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나는 봉준호를 좋아해 그러면...?”(관객웃음)

 

(허문영) 그럼 이제 봉준호와 장준환의 경쟁 관계가 만들어지는거죠?(웃음) 근데 그렇게 하려면 감독님은 일단 영화를 좀 많이 만드셔야 합니다.(관객 웃음) 우선 편수에서 좀 밀리기 때문에.(웃음) 봉준호 감독님과 장준환 감독님은 학교 동기인데다가 함께 작업도 계속 하셨는데,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장준환 감독님의 졸업작품 <2001 이매진>을 봉준호 감독님의 졸업작품 <지리멸렬> 보다 훨씬 더 좋아했습니다. 훨씬 창의적이고, B급 감수성도 훨씬 세고, 웃긴데 처절한 영화였습니다. 모범생이 열심히 노력해서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 본래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감수성이나 에너지가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이상한 영화를 만든 분이셨고, 사실은 그런 에너지가 창작과 연결 됐을 때 정말 빛나는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영화사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감독님은 우선 영화 편수를 좀 늘리셔야 합니다. (감독, 관객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