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부대행사

부대행사

<악질경찰> 릴레이토크(3) : 류승완 감독 2015-05-09(토)  - 시네마테크

5/9 <악질 경찰>

 

 

 

 

* 게스트 : 류승완 감독

* 진행 : 허문영 프로그램 디렉터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1

 

(허문영) [류승완이 사랑한 형사영화] 관객과의 대화 세 번째 시간입니다. 화창한 토요일 오후에 이렇게 흉측한 영화 보시느라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웃음). 어쩌자고 이렇게 흉측한 영화를 선택해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지에 관해서 감독님께 우선 여쭤보고 싶습니다(웃음).

 

(류승완) 오늘 정말 날씨가 좋아서 제가 좀 짜증이 났어요(웃음). 왜 이 좋은 날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하는가! 근데 역시 고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나마 나를 지지해주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를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웃음). <악질 경찰>은 제가 사랑한 영화 속 형사 캐릭터들 중에서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저렇게 극악한 캐릭터를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면 완성도라든지 서사의 구조 등 영화에 대해 기본적으로 논하는 것들이 이상하게도 개입할 틈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오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마법처럼 그냥 끌려갔어요 이 영화에. 도저히 설명하고 분석할 수가 없는데도 영화가 모두 받아들여진다는 것에 <악질 경찰>의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보통 형사 영화를 만들 때는 형사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공식 또는 관례에 맞추기 위해 함정에 빠지기가 쉬운데, 그런 유혹이 너무나 많이 널려있는데도 그것을 다 피해 가면서 만든 영화인 것이죠. 제가 이번 기획전을 위해 고른 영화들 중에서도 <악질 경찰>은 유독 이질적인 영화고, 그래서 이 영화를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포함시키고 싶었습니다.

 


 

 

(허문영) 여러분들도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굉장히 엉성한 영화입니다. 아벨 페라라 감독은 1951년생이고 20대 초반부터 슈퍼8mm 카메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첫 장편 영화도 할리우드 정식 데뷔가 아니라 아는 사람들 불러 모아서 초저예산 개인 영화처럼 만들었었는데, 60-70년대 소위 선정성 영화라 부르는 작품들을 만들다가 몇몇 제작자들의 눈에 띄면서 80년대부터 조금 더 큰 규모의 영화들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류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사건과 이야기를 배치하고 구성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인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보고 싶거나 찍고 싶은 장면을 먼저 떠올린 다음 그 장면들 사이사이를 이야기로 메꾸어 나가는 방식인 거죠. 사건 중심적인 것도 아니고 이야기 중심적인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장면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이런 식으로 만드는 영화들이 포르노나 에로영화들이거든요. 이렇게 짜임새를 포기 하고 장면 중심적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류승완 감독님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까?

 

(류승완) 아무래도 그렇죠. 지금 한국에서만 하더라도 저렇게 대단한 에너지를 가진 영화들은 보기가 힘들어지죠. 심지어 독립영화들에서도 그래요. 기술적으로 완성도는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성 있는 영화들이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아마 그런 정신으로 만들고 있는 감독은 김기덕 감독님이나 홍상수 감독님 정도가 아닐까? 그러다보니까 더 저런 영화들에 대한 갈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전에 로저 코만Roger Corman’이라고 하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B무비 제작자가 있는데, 그 제작자를 통해서 기라성 같은 감독들이 많이 배출됐죠. 마틴 스콜세지, 제임스 카메론, 조 단테 등 엄청난 이름들이 그 사람 밑에서 싸구려 영화를 만들면서 데뷔를 했거든요. 그 때 당시 그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 원칙은 아주 명확했다고 해요. 내가 너한테 줄 제작비가 이만큼이니, 몇 회차 만에 완성을 해라, 몇 페이지에 한 번씩 누드가 나오고 다음 몇 페이지에 한 번씩 폭력 장면이 나오는 것만 지켜주면 네 마음대로 찍어도 된다. 이게 조건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당시만해도 이런 조건으로 만들어진, 괴상망측한 장면들이 튀어나오는 장르 영화들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미국 영화에서도 이런 영화들을 접하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다른 식으로 변형 된 전통을 추구하는 영화들이 아직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극장이 중심이 된 하나의 영화시장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니까 이런 식의 저예산 영화들이 나올 틈이 너무 없는거죠. 시장 자본의 논리에 의해, 높은 완성도를 위한 수많은 사전 점검들이 오고 가다보면, 결국 모난 지점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는 영화들만 만들어지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마냥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극장에서 티켓을 끊고 들어오는 주관객들의 요구가 그런 것들이거든요. 모나지 않은 영화들을 보고 싶은거에요.

 

아벨 페라라가 이 영화를 만들 때도, 스튜디오에서 주류 영화에 픽업이 되어서 준비를 하던 중에 그 영화가 시간만 너무 잡아먹고 진행이 더뎌지자, 홧김에 나 찍고 싶은대로 영화 찍어버릴래! 해서 하비 케이틀과 거의 2주만에 뚝딱뚝딱 만들어버린 영화라고 하더군요. 역시 좋은 영화를 만들려면 감독이 화가 좀 나 있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2

 

재미있었던 일화 중 하나가, 소노 시온 감독의 <지옥이 뭐가 나빠>(2014)가 국내 개봉을 했을 때 봉준호 감독이 새벽에 저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고. 그 날 장문의 찬양 문자를 봉준호 감독이 보냈었는데, 이 감독도 늘 잘 만들어진 영화들만 보다가, 이 날 심야 영화로 <지옥이 뭐가 나빠>를 보면서 무언가가 확 뚫렸나보더라고요. 스트레스가 해소되듯이. 그래서 저도 가서 봤는데, 한동안 둘이서 영화 속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랬거든요. 이 영화도 완성도로 따지면 되게 이상한데, 분명 에너지가 있죠. 최소한의 자본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면 자본 회수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렇게 개성 넘치고 에너지 넘치는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그런 것들도 힘들어지니까, 이런 갈증은 현재의 모든 감독들에게 다 있는 것 같아요.

 

(허문영) 사실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원시적인 에너지만을 표현하기는 굉장히 부적합한 매체입니다. 왜냐면 협동 작업이고, 더군다나 산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필터링을 거쳐야 하는 것이죠. 감독 개인이 원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에너지가 배우를 거쳐야 하고 카메라의 기계적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말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처럼 굉장히 특별한 미친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는데, 이들이 영화판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마이너 관객, 마이너 배급망, 심야 극장, 컬트 문화, 비디오 등이 큰 역할을 분명히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저 코만 사단도 태어났던 것이며, 이런 비디오 시장이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샘 레이미 감독과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 등을 발굴해냈던 것이죠.

 

일본 역시 핑크 영화라는 마이너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장을 통해서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수오 마사유키 같은 감독들이 약간 부끄러운 핑크 영화를 데뷔작으로 만들며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서 이 시장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어떤 감독이 원시적인 에너지와 정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통로가 지금은 과연 있을지에 관해 의심스럽기는 해요.

 

(류승완) 저는 최근 들어서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굉장히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요. DVD나 블루레이 까지만 해도 그 영화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물리적인 교감이 형성 되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음성 기호와 영상기호로 변환 된 파일이 되면서, 그냥 너무나 쉽게 다운로드 받고 삭제해 버리는 게 되니까, 영화의 가치가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도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 같고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지지하고 함께 모여서 열광했던 그런 분위기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죠.

 

시네마테크의 존재 이유가, 지지하는 영화들을 함께 보고 토론하고, 또 그 사람들 가운데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나타나고 그런 것인데, 지금은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없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영화의 공동체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많이 안타깝죠. 최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는데, 십대들이 극장에서 영화 보는 걸 싫어하는 이유가 핸드폰을 못 보게 해서 그렇다고 들었거든요. 사실 영화라는 것이 생각해보면 굉장히 까다로운 요구를 하는 매체긴 해요. 음악, 미술, 공연과는 달리,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빛과 소리만으로 불 꺼진 극장에 앉혀놓고서는 두 시간 동안 핸드폰 켜지 마라, 발로 앞자리 차지 마라, 떠들지 마라... 이런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 많잖아요. 지금의 새로운 세대는 아마도 영화 매체의 전달 방식에 대해서 이런식으로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