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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언덕> 내가 사랑한 감독들 : 카세 료 2015-05-02(토)  - 시네마테크

5/2 (2) <자유의 언덕> : 내가 사랑한 감독들

 

* 게스트 : 배우 카세 료

* 진행 : 정한석 영화평론가

*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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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영화의전당에 카세 료 씨를 이렇게 모시게 된 것은, 그가 좀 특별한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배우 중에도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은데, 한 부류는 장인으로서의 배우, 나머지 한 부류는 모험가로서의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던져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사노 타다노부,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는데, 이 분들의 특징은 새로운 것을 시도 하고 부딪혀 보기 위해 끊임없이 전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단역이든 조연이든 마다하지 않고 세상의 여러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기를 즐깁니다. 이 자리에 계신 카세 료 역시 한국의 홍상수 감독뿐만 아니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구스 반 산트, 클린트 이스트우드, 최근에 촬영을 마친 마틴 스콜세지 감독 까지 전세계의 거장들과 영화 작업을 해왔습니다. 오늘의 영화 세상에서 드문 모험가이자, 배우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시네필 카세 료 씨와의 두 번 째 대화 시간을 시작하겠습니다.

 

(정한석) 홍상수 감독님의 <자유의 언덕>에 출연하신 계기는?

 

(카세료) 예전부터 홍상수 감독님의 팬이었기 때문에, 감독님의 제안을 듣고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정한석) 맞습니다. 카세 료 씨는 제가 아는 한 전세계에서 홍상수 감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입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 안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감독 이름 중 한 사람이 홍상수 감독이기도 할 정도로 말이죠. 그렇다면 홍상수 감독 영화의 어떤 점이 카세 료 씨에게 그렇게도 매혹적이었습니까?

 

(카세료) 우선, 홍상수 감독은 솔직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영화를 보면 거짓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솔직한 영화들을 보며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각자에게는 영화가 무엇을 느끼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경우 행복한 순간에는 영화가 필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인생을 살다가 고민이 많아지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잠시 멈추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때... 이럴 때 제 옆에는 항상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특히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허문영 프로그램 디렉터께서 <자유의 언덕>모리(카세 료)’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가장 슬펐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때 굉장히 놀랐었습니다. 홍상수 감독님은 일본에 익숙해지지 못한 채 회사를 관두고 갈 곳이 없어 서울을 찾아온 모리의 모습을 저를 통해 표현하고 싶으셨는데, 홍상수 감독님의 그 연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시고 그 말씀을 해주셨던 것이 그 장면을 연기한 저로써는 굉장히 기뻤습니다.

 

(정한석) 저는 개인적으로 카세 료 씨의 연기 중 카세 료 씨가 걸어다니는 장면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걷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옵니다. 그 걸음걸이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자기답게 걷고 있다고 저한테는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무언가를 의식하고 연기하기 보다는 감독과 서로 감각이 잘 맞아서 저절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카세 료 씨는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을 하셨을 때의 느낌이 아직 기억나십니까?

 

(카세료) 의식하고 이렇게 걸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신에 홍상수 감독이 당시에 연기 주문했던 것을 아직 기억하는데,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한 상태의 모리가 카페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혀를 두 번 차고 조금만 고개를 끄덕이라고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무조건 촬영 했었는데, 다 찍고 나서 모니터링 후 왜 그런 연기 주문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은 보통 피곤할 때 자기도 모르게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고 답변을 해주셨고 그제서야 그런 디테일한 주문이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정한석) 제가 아는 홍상수 감독은 어떤 장면의 연기를 주문할 때 풍부한 감정을 실어달라는 식의 주문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대신 방금 카세 료 씨가 말씀하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구체적인 디테일들을 전합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홍상수 감독님의 이런 식의 주문에 훨씬 더 정확하게 체감하고 이해하며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한석) 일본 영화사를 좀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카세 료 씨는 오즈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어느 정도냐면요. 오즈가 만든 <만춘>(1949)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오즈는 이 영화부터 노다 고고(野田高梧)’라는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유작까지 함께 작업했습니다. 카세 료 씨는 노다 고고의 시나리오 책까지 읽은 사람입니다. 왜 읽습니까(웃음)? 무엇을 알고 싶어서 그 책 까지 읽게 되셨습니까(웃음)?

 

(카세료) 지금껏 저는 많은 영화를 보고 많은 감독들과 작업을 해왔습니다만 여전히 영화와 연기는 제게 수수께끼와도 같습니다. 영화는 왜 만드는 것이고 왜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일까? 이런 것 부터 시작해서, 특히 훌륭한 영화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등의 고민을 하다보니 멋진 영화들을 계속해서 만드셨던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커졌고, 그렇다면 시나리오를 쓴 노다 고고의 책을 읽으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한석) 안그래도 카세 료 씨가 노다 고고의 책을 읽었다고 자랑을 하시길래 제 마음속으로는 굉장히 갸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냐면, 오즈는 미스터리 투성이의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는 수많은 비밀들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카세 료 라는 시네필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비밀을 필사적으로 알고 싶어했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 갸륵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입니다.

 


 

 

 

 2

 

(정한석) 동시대 감독들로 화제를 옮겨보겠습니다. 카세 료 씨가 함께 작업했던 외국 감독들에 대해서 저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궁금해 하실텐데요. 제일 궁금한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입니다. 그와 함께 작업하실 때 어떠셨는지?

 

(카세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경우 동일한 스태프들이 작업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가 편하고 좋습니다. 배우들이 영화에 집중하기 좋은 현장을 만들어 주었던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배우이기도 했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제 마음을 잘 이해해주었고, 따뜻한 신뢰 속에서 작업 할 수 있었습니다.

 

(정한석) 구스 반 산트 감독과 미셸 공드리 감독과의 작업은 어떠셨는지?

 

(카세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현장은 항상 시끌벅적하고, 항상 먹으면서 작업할 수 있는 슈퍼 릴렉스한 작업 환경입니다(웃음). 특히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주로 그의 집 주변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더욱 편했던 것 같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마치 초등학생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서도 이래라 저래라 주문이 많았던 감독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굉장히 귀여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웃음).

 


 

 

 

(정한석) 사실은, 배우에게 이런 자리를 청한 다는 것에 대해 많이 망설였습니다. 사석에서야 무슨 말을 못 하겠습니까만은, 청중 분들을 앞에 두고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심적 부담이 아주 없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곳까지 와주셔서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것에 대해 저 뿐만 아니라 여기 청중 분들도 기꺼이 고마운 마음을 가져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시간에 나왔던 영화의 제목이나 감독들의 이름을 때때로 마주치게 되실 때 다시 한 번 이 시간을 기억해 주시고, 다음에 또 한 번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카세 료 씨가 새로운 영화 리스트를 다시 가져와서 우리에게 소개 해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카세 료 씨의 인사말 듣고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카세료) 감사합니다. 저의 연기,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오늘 제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드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은 여러분들 주변에 저와 같이 영화에 관계된 사람이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영화 이야기를 어떻게 쉽게 말씀 드려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그저 오늘 보신 <자유의 언덕>과 같이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계기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다양한 영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며, 다시 여러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