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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한국남자> 시네클럽 : 전수일 감독 2016-02-02(화)  - 필름시사실

 <파리의 한국남자> 시네클럽 01

 

2/2 <파리의 한국남자>

*게스트: 전수일 감독

*진 행: 김이석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장 소: 영화의전당 필름시사실

 

 (영화내용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김이석 <파리의 한국남자>는 저는 오늘 처음 봤는데요, 감독님의 영화 색깔이 살아있으면서도 독특하도고 느꼈습니다. <파리의 한국남자>라는 제목 때문에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영화를 상상하고 오신 분들은 당혹스러우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파리라는 것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굉장히 낭만적으로 묘사돼 왔는데 오늘 우리가 지켜본 파리는 상당히 어둡고, 주인공의 공간도 다리 밑이나 지하도 같은 공간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어찌 보면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의 주인공들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감독님께서 파리에서 사셨는데 공간을 선택하면서 파리의 다양한 모습 중에 공간을 이런 모습으로 상상하시고 인물들을 등장시키신 이유가 있으셨나요?

 

전수일 만약에 베트남 부부가 한국에 신혼여행 와서 여자가 사라지고 그 남자는 2년 동안 여자를 못 찾는 상황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남자가 여자를 찾는 공간이 어디일까요? 노동이라던 지 강제 노역이라던지 또는 매춘이라던 지 어떤 섬에 갖혀있다던지 그런 상상을 하기 마련인데 그 사람이 오랫동안 부인을 찾아 헤맸는데 찾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파리도 역시 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마 납치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고 주로 그런 공간을 일부러 보여주겠다는 것보다도 자연적으로 지하도, 매춘과 같은 장소를 고르게 된 것이죠. 이 영화를 만들 때 공간을 중요시하였고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않고 공간을 찾으면서 시나리오를 구성해 갔습니다. 그 이유는 배우의 정서와 공간이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왜 파리에서 찍었나고. 한국에서 잊어버려도 되는데...(웃음) 하지만 다르잖아요. 예를들면 제주도에 사는 사람과 부산에 사는 사람의 삶의 태도와 방법이 달라지듯이 그런 부분에서 저는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이석 감독님의 영화에 대해서 많은 감독님들과 평론가 분들이 공간의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외국을 가는 경우가 자주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콘돌은 날아간다>에서는 페루로 가셨었고, 저는 아까 영화를 보다가 남자 주인공 모습에서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의 최민식 씨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영화에서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해 내시고 그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공간이 다르게 보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물들이 어찌 보면 공간 속에 던져져버린 느낌이 있었거든요.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에서도 도착하자마자 녹초가 되어 실려서 마을에 도착하게 되고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계속 낯선 공간에서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고요. <콘돌은 날아간다>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페루에 내리자마자 칼을 맞더라고요. 어찌 보면 공간 속에 인물이 있는데 중화되지 못하고 던져져버린 듯한 인물이 주로 묘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과장된 해석인가요?

 

전수일 외국에서 찍게 된 것은 외국에 가고 싶다는 것보다 주인공이 현실에서 갑갑함, 상실감과 같은 것들로부터 살고 있는 곳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은, 벼랑 끝에 가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 이번 영화는 그런 맥락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 남자의 상실감의 극치를 달리는데 그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파리의 한국남자> 시네클럽 02

 

김이석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코믹한 장면들이 있었는데요, 감독님께서 의도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버스 안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흑인들의 장면은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시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아이가 함께 올려다보는 장면들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었는데요. 그중 궁금했던 건 흑인들이 왜 갑자기 소리를 질렀나요? 축구라도 같이 보고 있었나요?

 

전수일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이석 뭔가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은 했었습니다만....

 

전수일 원래 축구 경기를 리시버로 듣고 있는 설정을 했는데, 작업을 하면서 빼는 게 좋겠다는 제의를 받고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편집을 해 나가면서 주인공이 파리에서 떠나는 과정에서 이방인들을 만나죠. 먼저, 흑인들을 만나게 되고 흑인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의 어떤 환희 같은 느낌 같은 것 삶의 한 부분이겠죠. 어떤 분들은 그것을 국경을 넘어서서 환호를 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시더라고요. 그리고 유럽에서 화장(火葬)하는 장면의 경우 원래 유럽에는 바로 시신을 태우는 화장이 없는데 노부부가 엄숙하게 화장을 치른다던가 부유한 집시들과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등 세 가지 부류를 만나게 되면서 그 여정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주인공은 유령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찾아다니고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스스로를 망각해 버리는 어떤 존재가 되지 않았나. 그런 과정 속에서 비현실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끝내 마르세유까지 가서 부인을 찾는 것인지 안 찾는 것인지 연결이 되도록 설정을 했습니다.

   


 

<파리의 한국남자> 시네클럽 03

 

관객1 영화 속에 있는 내용이 궁금하다기 보다 감독님께서 주인공처럼 신혼여행을 갔는데 아내가 갑자기 사라진 경우가 생긴다면 주인공처럼 굉장히 아날로그적으로 종이 한 장만 가지고 계속 찾으러 다니실 건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실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전수일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몇 달 찾다가 돌아갈 것 같기도 합니다.(웃음) 이야기의 실제 소재는 파리에서 유학을 잠시 할 때 그때 실제 신혼부부가 와서 옷집에 들어갔다가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가 사라져버렸고, 1년이 지난 후 마르세유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때 가벼운 충격을 받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 그런 소재가 생각이 났고, 작품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잊어버렸을 때 그 남자는 어떻게 살아왔고, 그렇게 둘 다 타인이 되어버렸는데, 다시 만났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얘기치 않은 사건이고 그것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버리는, 그 바뀐 운명을 어떻게 본인이 맞닥뜨리고 극복해 나가는가를 주고 싶었습니다. 해답이 있다기보다 그렇게 오랫동안 찾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내가 누구를 찾는 것인지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자기 아내가 원해서 떠난 것일까 하는 의식도 들 수 있는 것이며, 왜 떠나갔을까 끊임없이 본인도 고민하고 생각하겠죠. 그러다 자기가 무엇을 찾는지 방향을 잃어버리는 한 남자, 그 사람의 여정을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을 공유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파리의 한국남자> 시네클럽 04 

 

관객2 감독님이 말씀하셨듯이 공간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요. 처음에 공간 배치가 기둥을 항상 가운데에 두시는 것과 지하철에서도 항상 갈림길에 두시잖아요. 일반 사람이 봤을 때는 어딘가 목적지가 있으면 둘 중에 한길이 맞는 길이다 하고 가는데 남자 주인공이 왼쪽으로 가는지 오른쪽으로 가는지가 정해지지 않고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 공간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독님만의 의미가 있으셨는지 궁금하고요.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이 강렬하게 눈빛을 보여주셨는데 그 부분의 의미는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이셨는지 궁금하고요. 마지막으로 왜 끝을 아내를 안 찾고 미결로 남겨두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전수일 공간의 분할을 참 좋아합니다. 거울 사용도 있고요. 한 공간의 양면적인 측면을 인물과 정서를 어느 정도 느낌으로 같이 간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좁은 공간을 촬영할 때는 거울을 이용해서 공간을 확장한다던지, 기둥을 두고 화면 밖에서 인물이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해서 다시 공간을 넓힌다는 개념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촬영할 때 한 공간을 두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인물이 들어갔다가 나갔다 다시 들어오는 것을 반복하며 공간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거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되 하나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그리고 지하철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것도 인물의 불확실성의 느낌과 공간에서 소외되거나 어떤 인물이 위치해 있을 때, 느낌과 정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어요. 아내를 찾았는데 스스로 거부할 수 있는 것, 분노, 그게 꿈이었었고 내가 여기에 왜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등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게 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결론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을 주게 되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상쇄될 것 같았습니다. 과연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는 상상 속에 남기고 주인공이 다시 거지로 돌아가는 것 자체에서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몇 가지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주고 싶었습니다.

 

김이석 공간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첫 장면에 굉장히 놀랬습니다. 화면이 반으로 나누어져 있고 인물은 한쪽 편에 있고 말은 반대쪽에서 흘러나오고 누군가가 있는데 일반적이라면 같이 보이거나 그다음 장면인 성당 장면에서부터 영화가 시작되어도 됐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첫 장면이 화면이 분할 구도로 된 자체가 독특했고, 거기서 특별한 정보를 주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수일 시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현재, 다음이 굴속이 지나가면서 살아가던 여정을 보여주고 아내를 잃어버리고 다시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 한국인 여성 매춘부 창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재 반과거-현재-대과거처럼 시제를 나눠봤습니다.